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병원인간 지니 Oct 30. 2022

어떤 사랑도, 어떤 사람도 나의 아픔을 감당할 수 없다

여전히 나는 내가 애틋해서

아침이 왔다. 눈을 다시 감는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본다. 그다음 왼팔을 들었다 내려놓고 접었다 펴본다. 아주 느릿하게. 다리를 들어 본다. 무릎을 접었다 폈다. 오케이. 오늘은 무사통과. 왼쪽으로 굴렀다가 오른쪽으로 굴렀다가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켜본다. 침대에 걸터앉아 다시 무릎을 접었다 편다. 좋아. 이제 힘을 줘서 일어나 볼까? 땅에 다리를 디뎌 본다. 한 발을 떼는 순간 욱신- 무릎에 통증이 몰려온다.

2022년 10월 **일 병원인간 오늘의 운세, 움직임을 최소화하세요.


하루의 시작은 내 몸의 가용범위를 체크하며 시작된다. 어떤 날은 손가락 마디가 부어오르고, 어떤 날은 발가락이 뻐드러진다. 골괴사가 시작되고부터는 다리를 어느 정도까지 움직이면 통증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날의 가용범위가 나의 모든 기준이 된다.  



네가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잘 안돼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병원인간으로 살아오니 자연스럽게 나의 주변 친구와 동료들은 ‘병을 가진 사람의 생활’을 보게 된다. 우리들의 대화가 보통의 대화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회사에서 있던 일,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 사이에 병원과 의사에 대한 일들이 포함된다는 것. 그리고 몸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숨기고 숨겨놓았던 이야기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에게도 때때로 곤혹스러움을 불러오곤 한다. 공감의 영역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말 힘들었겠다.’라는 이해의 영역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다. 아침에 다리가 불편해 이미 잡아놓은 약속을 미안함과 아쉬움을 담아 취소하는 일을, 손가락 관절이 부어올라 손가락이 뻐드러진 채로 세 손가락만 써 자판을 쳐야 하는 일을, 이뇨제로 오줌싸개가 되어 30분에 한 번씩 화장실에 가야 하는 일을 경험해본 사람보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인간으로 갖게 되는 고민을 나누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나의 약점을 온전히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경험. 고민의 해결보다 고민을 밖으로 꺼내놓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싶기 때문이다.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나도, 의사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고민을 털어놓고 가장 위로가 되는 순간은 ‘네가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잘 안돼. 하지만, 네 덕분에 아픈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불편함을 조금 더 알 수 있게 되었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쉿, 엄마에게는 비밀이야!  

수유동 감나무집 2층(병원인간의 집)은 오늘도 고소한 냄새가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의 차를 가늠해본다. 음 오늘은 작두콩차를 끓이셨군. 20여 년 전 고혈압을 비롯한 몇 가지 질환을 진단받은 아버지는 그 길로 건강전도사가 되셨다. 돼지고기보다는 소고기. 육류보다는 어류. 야채는 언제나 항상 함께. 라면은 국물보다는 비빔으로, 이왕이면 건면으로. 아, 참고로 수유동 감나무집 2층은 외부음식 반입불가다. 집에 그 흔한 과자봉지가 하나 없다.


건강을 챙기는 것에 진심인 부모님은 생수 대신 다양한 약재들로 물을 끓여 먹는다. 어떤 날은 작두콩차 또 어떤 날은 우엉차, 도라지, 감잎, 뽕잎… 한국에는 뭐 이렇게 우려먹어도 되는 게 많은 건지.

몇 년 전, 루푸스의 신장 침범으로 단백뇨가 나와 약물 치료를 시작한 뒤로 나는 집에서 물을 마시지 않는다. 우린 물과 농축액들이 소화 과정에서 신장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없다면 우유를 마시면 되지! (하하)


굳이 부모님께 말하지 않은 이유는 첫 번째로 건강에 좋다며 딸을 위해 굳이 물을 끓이는 수고를 하는 마음이 사실을 저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잠만 자고 밖으로 나오는 하숙생의 생활 패턴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아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목이 마를 때 우유를 꺼내 마시며 답답한 감정이 울컥 솟구쳐 오르는 건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병에 대해 부모님도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닐까. 지나는 말로 달인 물은 좋지 않다고 말해도 이게 더 건강한 거라며 매일 새로운 약재를 찾고, 집에서 밥을 안 먹고 밖에서 조미료 범벅인 것들을 먹어서 몸이 안 좋아진 거라고 말하는 말들 속에서.


딸을 안타까워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병의 원인은 나의 행동에 있고, 병을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 ‘더’ 노력해야 한다는 병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나를 오늘도 숨 막히게 한다. 내가 생활을 잘 꾸리지 못해서, 병이 나를 찾아온 게 아닌데 말이다.     


오늘도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는 달인 물을 먹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한번 더 삼킨다. 사랑의 모양은 여러 형태니까. 다른 모양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병원인간이 된다는 것, 나에게 더 사려 깊어진다는 것

몸의 가용범위가 하루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예정되어 있던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석하자면, 나의 삶의 주체가 의지보다는 가능한 영역에 맞춰진다는 뜻이다. 이미 잡아놓은 약속을 미안함과 아쉬움을 담아 취소하는 것에, 일을 도무지 할 수 없어 일정이 미뤄지는 것에 자책을 느껴야 하는 날들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1년 6개월 전, 고관절 괴사를 진단받고 힘들었던 이유는 몸의 통증보다 하고 싶은 것들을 내가 하고 싶은 순간이 아니라 몸이 허락해주는 순간에 해야 했기 때문이다. 병원인간의 사전에서 ‘주체성’의 의미가 재정의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연습하기 시작한 것이 있는데 바로 ‘주변 사람에게 부탁하기’다. ‘싫은 소리 하느니 그냥 내가 하고 말지.’ ‘설명하는 것도 번거로워, 내가 하는 게 제일 빠르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오던 사람.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던 사람. 경험하는 게 가장 빠르게 배우는 것이라 믿는 사람. 그런 내가 부탁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혼자서 할 수 없는 영역들이 생겨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에게 부탁은 너무 어렵다. 예전이 몸이었다면 충분히 들 수 있는 것들인데 ‘이것 좀 들어줄 수 있어?’라는 말을 뱉는 것도. 동선 중에 계단이 있다면 부러 평지로 돌아가자고 말을 하는 것도. 오래 서있어야 하거나 서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나 잠깐 앉아있어도 될까? 혹은 나는 못 기다릴 것 같은데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말을 해야 하는 것 모두. 배려하던 사람에서 배려받는 사람이 되는 경험은 큰 박탈감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탁하기 연습’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내가 나를 더 열심히 아껴야만 다른 일들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있었지만 지금은 나에게 없는 것들을 아쉬워하는데 머물지 않고 지금 있는 것들을 더 잘 지켜내기 위해서.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들여다보기를 멈추지 않는 일은 내가 나에게 더 사려 깊어지는 과정이다. 내가 나에게 더 다정해지기 위해 나는 오늘도 용기를 내본다. 나 다리가 조금 아픈데 우리 조금 천천히 걸어도 될까?



어떤 사랑도, 어떤 사람도 나의 아픔을 감당할 수 없다

약을 챙겨 먹는 것, 매일 아침 몸의 가용범위를 확인하는 것, 부탁을 하는 것. 그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아프지 않았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매번 내 기분을 지옥으로 몰아넣는다.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나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감정의 외로움도 불러일으킨다. 사회 구성원으로, 친구로, 연인으로 나는 제 몫을 해내고 있나. 걱정은 때로는 자책감이 되었다가, 우울이 되었다가, 분노가 되기도 한다.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거나, 약을 정기적으로 먹어야 하는 친구들에게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꼭,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도 받아야 해. 지금 당장 우울하거나 힘들지 않더라도 말이야.


일상이 몸에게 통제되는 삶에서 마음 상태는 단순히 우울함으로 정의 내릴 수 없다.  당장에 우울감이 없더라도 나의 약점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의사 앞에서 요즘의 몸의 상태는 어떤지, 내가 어떻게 병원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때의 마음은 어땠는지 한바탕 말하고 진료실을 나오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 힘들어도 살아내고 있구나.


내가 1인분의 몫을 못해내더라도, 약이 먹기 싫다고 말하며 의사 앞에서 엉엉 울어도, 다 때려치워버리고 싶다고 말해도 병원인간으로 삶의 무게를 어떻게든 짊어지고 있겠다고. 어떤 사랑도, 어떤 사람도 나의 아픔을 감당할 수 없지만, 나는 감당해내야 하니까.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스스로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여전히 나는 내가 애틋하니까.


-


세상의 많은 병원인간들이

스스로에게 조금 더 친절해져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끔은 노약자석에 앉고, 아주 가끔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서른한 살.

대학교 입학, 졸업, 취업 그리고 퇴사까지 나의 의지만큼 의사의 소견도 중요한 몸을 가졌지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사람. 커리어와 함께 병명도 쌓여가는 삶을 살고 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한 사람이라 스스로를 '병원인간'이라 부른다.

늙음은 아픔이 용인되지만 젊음에게는 아픔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에서 병원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천천히, 꾸준히 이야기하고 싶다.
이전 08화 우정 테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