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소개합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결혼하고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보통은 그 주에 있었던 좋은 기억부터 꺼내본다. 그리고 좋은 점을 설명하려다 보면, 결국 아내의 모습을 이야기하게 된다. 결혼 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은 배우자는 어떤 사람인지 묻는 질문과 거의 같다.
아내는 섬세하고 예민하게 자신의 몸의 상태를 관찰한다. 내가 지금 좀 더부룩한지, 무리했는지, 졸린지 등. 그리고 관찰의 결과를 바탕으로 컨디션을 유지한다. 그래서 점심에 튀김을 먹으면 저녁에는 지방이 좀 없는 음식을 먹는다.
아내는 스스로를 소중히 돌보는 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다. 갖은 방법으로 스스로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기분 좋게 만든다. 수면으로 치면, 자기 전 일정 시간 동안 공복을 유지하고, 좋은 잠옷을 입고, 편안한 향을 뿌리고, 인테리어를 바꾸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면뿐만이 아니다. 음식, 피부, 수면,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한 활동 자체를 즐긴다. 아내의 삶은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로 넘친다. 명상과 요가, 그림, 음악, 책, 옷, 양말, 주방용품, 올리브유, 야채, 인테리어, 책상에 있는 소품들, 향, 천, 문구, 돌멩이, 식물, 과자. 집에 있는 크고 작은 것들 전부 저마다의 의미와 스토리가 있다. 세어보려면 끝이 없다. 오랜 세월 쌓아온 아내의 애정 어린 주제들이다.
이런 아내의 모습은 나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결혼을 하고 건강해져서 가장 좋다고 대답했다. 내 몸 상태에 대해 종종 아내가 나보다 더 빠르게 파악하고 '무리한 것 같다'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컨디션이 크게 내려가지 않고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계속 유지된다. 이에 대한 증거로, 결혼 전엔 보통 1년에 1번 정도 감기에 걸렸는데, 결혼하고는 감기에 걸린 적이 없다.
휴식과 수면의 질도 많이 올라갔다. 함께 좋은 노래를 들으며 대화하기도 하고, 서점의 향을 맡으며 책을 보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더 생산성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은 나를 멈춘다. 아내는 '지금 너에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알려준다. 최적의 숙면을 위해 침대와 주변 가구의 배치를 한 달에 한 번씩 바꿔가며 지금의 위치를 찾았고, 규칙적인 시간에 잠에 든다. 베개와 침구류, 계절별 잠옷까지 모두 아내의 추천을 받았다.
정서적으로도 건강해졌다. 가끔 혼자 있을 때 한없이 우울한 때가 있었다. 자괴감이 들고, 뭔가 해낼 수 없는 것 같은 마음이 찾아오곤 했다. 결혼 후 이런 순간이 많이 줄었다. 또 스스로를 못살게 굴 때도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주로 과식을 했다.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밥을 먹고, 잠을 자지 않거나 굳이 하고 싶지 않고 재미도 없는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이것도 줄었다. 충분히 먹은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서, 적정 수준으로 나를 지킬 수 있게 됐다. '괜찮아, 충분해' 같은 아내가 해주는 말의 힘이다.
결혼은 어떤 하나의 강렬한 경험이 아니라, 매일을 살아가는 순간이다. 그래서 소소한 에피소드나 그녀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게 결혼 생활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다. 결혼하고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그 시기에 따라 매번 새로운 답을 하게 될 것 같다.
아, 그리고 아내는 감정도 풍부하게 느낀다. 이것도 좋은 장점이다. 아내는 목요일이 되면 엄청 신이 난다. 내일이 금요일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좋아하는 걸 보면서, 감정의 폭이 적고 무딘 나는 '이게 그렇게 좋나?' 갸웃거리지만 어느새 함께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 그녀의 브런치: https://brunch.co.kr/@jungye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