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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Oct 30. 2022

압사사고 회상

나도 그때 죽을 뻔했다...

 어제(2022.10.29. 토) 한국 이태원 거리에서 초대형 압사사고가 났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234511?sid=102


 아침에 YTN 위성방송을 켜서 한국 뉴스를 보고 있는데, 수많은 희생자들을 시민들이 CPR 하고 있던 장면에서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아... 뉴스만 봐도 이리 가슴이 아픈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그리고 비보를 접하게 될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까.....ㅠ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4/0004920619?sid=102


 불과 한 달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축구 관중 100여 명이 사망하는 초대형 사고가 났었는데, 더 큰 압사사고가 2022년도 대한민국에서 다시 날 줄이야...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540515?sid=102


 뉴스 포털을 열어보아도 온통 압사사고 소식이다. 정부는 용산구를 특별 재난구역으로 지정하고 11월 5일까지를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했다. 축제나 모임은 취소 또는 중단되고 공공기관과 관공서에는 조기가 게양된다.


 이번 사고는 세월호 사고 이후 단일 사고로는 최다 사망자라고 한다. 최근 몇 년간 정부와 정치권 주도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신설하는 등 안전사고 방지에 대해 많은 대책을 세웠고 사회 분위기도 많이 바뀌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공공영역에서의 안전에 대해서는 관리사각지대가 많다... 인도네시아 압사사고를 보며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저런 압사사고가 생기나 했었는데 한국에서 더 큰 사고가 발생하다니 할 말이 없다...


 핼러윈 행사가 어느 특정 주최의 행사가 아니다 보니 이 날 사고를 누구의 잘잘못이라고 따지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다만, 사전에 10여만 명 군중 밀집을 예상했었다고 하니 어느 누군가는 이에 대한 대비를 했어야 했고, 공공안전을 책임진 정부가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수의 댓글에서 같은 행정구역 용산구 안에 있는 대통령실 경호하느라 경찰인력 빼 가는 바람에 통제인력을 배치 못해 사고가 난 거라며 벌써 정부를 향한 빗발의 화살이 날아가고 있는데, 국가 애도기간에 무조건적인 비난은 좀 후순위로 두고 수습에 먼저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다. 사실, 사고가 나니 못 잡아먹어 안달인거지 누가 이런 참사가 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다수의 희생자들이 아직 채 피어보지도 못한 10대 20대라는 사실이 그저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이다.




 벌써 30여 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압사사고 뉴스가 나오면 그때 그날의 기억이 또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 때 일이다. 당시에는 매주 운동장에서 전교 조회를 했고 교내방송이 울리면 일사불란 운동장에 나가 줄 맞춰서 서서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으로 시작하는 조회에 참여를 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신세뇌, 군국주의, 군사훈련 같은 이미지가 겹치는데 당시에는 그게 너무나 당연한 거라서 원래 다 그런 줄 알았다. 해 쨍쨍 내려쬐는 무더운 날에는 부동자세로 서 있다가 픽픽 쓰러지는 애들도 나오고 그랬는데, 그 어린애들을 꼭 그렇게 줄 맞춰 세워놔야 했을까. 어렸던 시절 내가 살짝 불쌍해진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규모가 상당히 컸다. 한 반에 60여 명의 학우가 한 교실에 배정받았는데 정말 교실 끝까지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겨우 앉을 수 있었고 쉬는 시간에는 책상을 접어줘야 교실 내에서 이동이 가능했던 장면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런 교실이 학년마다 10개~11개나 되었다.


 대충 계산해도 딸랑 건물 하나에 3,600여 명의 엄청난 애들이 있었던 건데 그 시절엔 학교는 부족하고 애들은 많고 어쩔 수가 없었다. 전교 조회하니까 운동장 모이세요~ 방송이 나왔고, 말 잘 듣는 착한 애들이 순식간에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현관은 항상 인산인해. 빨리 가서 줄 서지 않으면 혼나니까 모두 바쁘게 움직인다. 그날은 평소보다 현관이 좀 더 붐볐다.


 아이들이 너무 촘촘촘해서 내가 내 발도 볼 수 없고 감으로 움직였는데, 현관 근처에서 문턱을 잘못 밟은 아이가 넘어졌다. 엄청나게 빽빽하게 이동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 넘어지면 그냥 인간 도미노가 된다. 외력에 저항해서 안 넘어지려면 발을 턱 디뎌서 무게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내가 딛어야 할 그 공간엔 이미 다른 아이가 서 있다. 밀면, 그냥 넘어간다. 압사사고가 안 나려면 밀려서 넘어진 순간, 뒤쪽의 인원이 싹 빠져줘야 하는데, 제일 뒤에선 이 상황을 전혀 모른다. 조회시간은 다가오고 늦게 가면 혼나니까 뒤에선 자꾸 밀어대는데 앞에는 이미 넘어져서 이중삼중사중으로 깔려있는 상태니까 그 위에 또 넘어지고 넘어지고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당시에 나는 앞도 뒤도 아닌 중간쯤에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히 난다. 이미 선두는 넘어져서 깔리기 시작하고 내 앞 열도 넘어가기 시작한다. 선두가 아닌 중위 열은 한 번에 넘어지지 않는다. 발은 이미 꽁꽁 묶여버렸고, 점점 뒤에서 밀면 몸이 앞사람 등에 포개지며 10도 20도 천천히 넘어지면서 결국 앞 열을 올라타게 되는데 이 과정이 3~5분 지나며 천천히 일어난다. 안 넘어지려고 아무리 발악을 해봐도 아무리 밀지마 밀지마 외쳐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외쳐도 제일 뒤에는 안 들린다. 빠져나갈 공간도 잡을 공간도 없고 유일하게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인데, 나랑 다 같이 같은 각도로 넘어가고 있다. 정말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넘어가는 순간에는 다 같이 "어~~~ 어~~~ 어~~~~" 만 외친다.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고, 선생님이 뛰어오고, 다 달려들어 앞에서 뒤에서 아이들을 꺼내면서 도미노 붕괴가 서서히 풀렸다. 나도 완전히 넘어져서 떡이 된 상태에서 누군가 팔을 뻗어 나를 빼 내줬었다. 제일 선두에서 깔렸던 아이 몇몇은 기절을 했고 구급차가 와서 애들이 병원에 실려 가고 했었지만 정말 천만다행히 심각하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밀집전도사고가 발생한 시점부터 완전 해소된 시점까지 약 10분쯤 걸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초기에 잘 수습해서 망정이지, 학교에서 수백 명 죽어나가는 초대형 사고가 날 뻔한 상황에 나도 깔려있었던 거다....... 아..... 다시 생각해도 정말 끔찍하다.




 내가 대학 시절 일이다.

 포근한 봄날, 여의도에 벚꽃이 피었다. 여의도 벚꽃이 그렇게 예쁘다고 누군가 얘기한다. 주말에 가보기로 했다. 이미 가장 접근하기 좋은 전철역은 폐쇄되어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사고 날 수 있으니 예방 차원에서 접근을 통제하는 거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멀리서 내려서 걷고 또 걸어 벚꽃거리로 갔는데... 사람이 많아도 많아도 너무 많다. 나는 그날 인파(人波)라는 단어를 정말 몸으로 느꼈다. 아, 이래서 사람 파도라고 하는구나. 인파에 휩쓸리면 주도적인 보행이 불가능하다. 그저 인파가 가는 방향대로 몸을 맡기는 게 최선이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보행도로 하나를 건널 수가 없다. 인파가 끝나고 흩어지는 점 까지 가야 보행의 자유가 생기는 거다. 나는 그날도 봄날의 상춘보다는 여기서 걷다가 넘어지면 죽겠구나 하는 공포감을 느끼고 집에 왔다. 그리고 다시는 여의도 벚꽃축제에 가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와 유사하게, 꽃다운 청춘이 너무 많이 스러졌다.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누구는 놀러 갔다 죽은 건데 왜 국가 전체가 애도해야 하냐고 불평하는 부류도 있는데,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소중한 목숨이 151명이나 사그라든 국가적 참사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안타깝고 안타깝고 또 슬프다. 시키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슬퍼해야 할 일에, 비평은 잠시만 내려놓으면 좋겠다.


 이유 없는 사고는 없다. 당연히 이번 일도 적절한 계획과 통제가 있었으면 막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잘잘못을 따지고 비난하는 일은, 사고가 수습되고 다 같이 슬퍼한 다음에 하자. 이거, 오늘 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날아가는 일도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일도 아니지 않나....


 삼가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 분들께 조의를 표하며, 국민적 아픔이 조속히 치유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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