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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Dec 08. 2022

피렌체에서 티본 스테이크를 썰어보자

먹는 게 남는거다(2022.11.22.화.저녁)

(이전 이야기에서 계속)

https://brunch.co.kr/@ragony/192




 우피치 미술관과 야경 투어를 끝내니 거의 오후 7시. 배가 살살 고파온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원지로도 유명하지만, 가죽공예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 쇠고기도 덩달아 유명하다. 쇠고기를 많이 먹다 보니 가죽이 남아서 가죽공예 산지가 된 건지, 가죽을 가공하려다 보니 쇠고기가 부산물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둘 다 유명하다.


 로마 남부 투어에서 만난 일행들하고 용케 연락이 닿아 피렌체에서 같이 유명 맛집에서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혼자 여행지 관람은 괜찮지만 혼밥은 참 쓸쓸한 법인데, 이렇게 저렇게 맛집 투어단에 낄 수 있어 무척 다행히다. 매 끼를 다 잘 먹을 수는 없지만, 여행지에서 한 곳쯤은 유명 맛집도 가봐야지 생각했던 차라 겸사겸사 이 날을 D-day로 잡았다.



 이 날 가본 식당은 피렌체 현지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부카 마리오(Buca Mario)"라는 식당.


https://goo.gl/maps/NCxvEpvduEhSBRsA8


 저녁시간에만 영업하며, 딱 19시부터 문을 여는 콧대 높은 집이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 예약 없이 가면 오래 줄을 서야 하는 맛집이다. 야경투어 마치자마자 총총총 이동하니 시간이 거의 딱 맞다. 미리 예약해둬서 줄 서지 않고 무사히 입장. 벌써 입구에는 줄이 길다.



 식당 인테리어는 매우 고풍스럽고, 마치 오래된 유명 미술관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일단, "나 뼈대있는 레스토랑" 하는 것 같다. 나중에 찾아보니 1886년부터 문을 연 뼈대있는 레스토랑 맞다. 이만하면 박물관 맞네.


 주문을 해보자. 나 포함해서 만찬 멤버는 총 5인.


Bistecca(비스테카. 이탈리아식 스테이크, 2인분), 50유로 * 2인분

Invetro(인베트로, 레드와인), 45유로

Caprese Bufala(카프레세 부팔라, 모짜렐라 치즈+토마토+바질 요리), 18유로

Lasagna Della Cas(라자냐 델라 카사, 델라 카사 소스의 라자냐 요리), 18유로

Taglierini Tartuf(타글리오리니 타르투포, 트러플(송로버섯) 크림 파스타), 33유로

Pure' di Patate(푸어 디 파타트, 으깬감자), 8유로

Acqua Panna(생수), 4유로



라자냐 / 티본 스테이크(2인분)
트러플 크림 파스타
치즈  토마토 / 와인


 다 나왔으니 맛있게 드시지요. 쨘~


1인 1메뉴 아닌 뷔페식으로 시켰으니 앞접시에 조금씩 플레이팅.


 벌써 내 몸을 거쳐간 지 보름이 후딱 지난 녀석들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기억을 잘 더듬어보자. 무슨 맛이었더라?


1. 티본(T-bone) 스테이크

 부카 마리오는 스테이크 명가로 유명하다.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스테이크는 기본으로 시킨다. 사진으로 보다시피, 2인분을 주문한 스테이크가 무척 푸짐하다.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흑백으로 잘 차려입은 웨이터가 즉석에서 티본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조각조각 해체해서 접시에 올려준다. 스테이크는 미디엄 레어에 가깝다. 겉만 살짝 익고 속은 거의 생고기. 딱 이렇게만 나오며 미디엄, 웰던 등의 주문은 받지 않는다. 남성이라면 1인분에 2명, 여성이라면 1인분에 3명이서 갈라 먹어도 양이 적다고 느끼지 않을 정도의 분량이다.

 육질은 매우 야들야들 부드럽고, 쇠고기 자체의 묵직하고 감칠맛나는 풍미가 일품이다. 사실 한국에서 쇠고기 먹을 땐 핏빛이 가실 때까지 잘 익혀먹는 게 일반적이라 미디엄 레어가 일반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또 아예 생고기인 육회도 잘 먹는 민족 아니던가. 나도 처음 외국생활할 때는 웰던으로 먹었는데, 요즘에는 미디엄 레어가 내 입맛에도 제일 맛있는 조리법이 되었다. 고기는 살짝만 익혀 육즙 그대로 먹어야지. 같이 시킨 와인과 완전 찰떡궁합이라 먹는 내내 무척 행복했다. 아, 나 스스로 고기는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냥 비싸서 싫었던 거구나... ㅠㅠ


2. Invetro(인베트로) 와인

 정통 이탈리아 와인. 여기(토스카나)가 주산지인 와인이다. 비싼 와인을 먹어본 적이 없어 와인맛은 잘 모르지만, 드라이 보단 스위트에 더 가까운 맛이며 향도 목넘김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마트에선 14유로쯤 하는 중저가 와인이지만 너무 비싸게 받네... 어쨌든 맛있게 먹고 왔으니 된 거다. 스테이크는 와인과 같이 먹어야 제 맛이다.


3. Taglierini Tartuf(타글리오리니 타르투포, 트러플(송로버섯) 크림 파스타)

 사실 이게 오늘의 주인공. 본토에서 먹는 트러플 크림 파스타.

 솔직히 트러플 파스타 자체를 태어나서 이 날 처음 먹어본 날이라 비교하고 말고 할 게 없지만, "와~ 어쩜 이런 고급진 향기가 나지?" 하며 감탄하며 먹었다. 트러플(송로버섯)은 우리나라 송이버섯만큼이나 비싼 대접을 받는 진귀한 식재료로, 기본이 kg에 수십만 원부터 간간이 억대가 넘어가는 경매가가 형성되기도 하는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011241632041&mode=view

 당연히 트러플 파스타에도 송로버섯이 충분히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살짝만 섞어도 그 고급진 풍미가 충분히 살아난다. 맛보다는 향기로 먹는 요리. 트러플 파스타를 먹어본 적이 있었던 일행 분도 이 날 트러플 파스타는 차원이 다른 향이 난다며 극찬하셨다.


4. Lasagna Della Cas(라자냐 델라 카사)

 파스타 사이사이에 쇠고기와 소스가 켜켜이 올라가 있는 전통 이탈리아 요리. 물컹한 피자같은 맛?


5. Caprese Bufala(카프레세 부팔라, 모짜렐라 치즈+토마토+바질 요리)

 요리라기보다 그냥 심플한 사이드 메뉴? 그냥 익숙한 토마토와 치즈맛. 치즈는 짜지 않아 좋았다.


6. Pure' di Patate(푸어 디 파타트)

 말 그대로 으깬 감자. 매우 익숙한 촉촉한 감자 맛.


 먹어본 결론. 역시 비싸고 유명한 음식이 맛있다. 비싸고 유명한 요리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복도에 보관된 와인들. 와인셀러도 고풍스럽다.


두유 원 디저트?

아, 이스 잇 프리?

노노, 낫 프리.

오- 노 땡큐.


예쁜 디저트 서빙 테이블이 꼬리를 살랑살랑 치며 대시해왔지만 이미 배는 충분히 부르니까 여기서 자제자제.

이제 계산할 시간.


 249유로, 5명이니까 인당 50유로 되시겠습니다 쿠쿵....

 아, 역시 비싸구나 ㅠㅠ


 COPERTO? 이건 안 시켰는데요? 이건 뭔가요?

 아. 자릿세란다. 아무것도 안 먹고 앉기만 해도 인당 7천원을 내야 하는 얄궂은 이탈리아 문화.

음식값도 비싸고, 자릿세도 내는데 팁 란까지 당당하게 있는데 팁은 안 드림. 자릿세에 다 포함되어 있는거라면서.


 한 끼 식사로 최고로 비싼 식비를 지출한 날이지만, 맛있게 즐기고 눈도 코도 입도 호강하고 왔으니 별 후회는 없다. 살다보면 가끔 이런 선물같은 날도 있어야지. 그래야 평생 회상하며 즐길 수 있는 기억이라도 있지. 사실 비싼 식비에 매우 아픈 가슴을 이렇게 이렇게 달래가며, 보석이 드리워진 피렌체 밤거리를 추가로 더 즐기며 숙소로 돌아갔다.



 피렌체 도착 첫날 이야기 끝.





(다음 날 이야기 : 시에나 및 키안티 와이너리 방문기)

https://brunch.co.kr/@ragony/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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