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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Jan 05. 2023

스위스 전통요리 치즈 퐁뒤를 먹어보았다

여정의 마지막 만찬

 기차로 왕복 6시간 걸려 다녀온 마터호른.

 좀 멀긴 했지만 충분히 다녀온 가치는 있다고 느꼈고 기차가 안락해서 그래도 생각보단 덜 피곤했다. Happy in Lodge 호스텔로 복귀했을 땐 저녁 7시가 후딱 넘는 시간이었다.


 어제 룸메들은 싹 떠나고 옆 침대에 훤칠한 청년 한 명만 나를 반겨준다. 2층 침대 3개가 놓인 6인실에서 나와 그 청년 말고 나머지 침대는 아직 비어있었다.


"Hello, Where are you from? 반가워요~ 어디서 왔나요?"

"Nice to meet you, I'm from Korea...hmmmm no,no I'm from Pakistan. Anyway I'm Korean but I'm from Pakistan. 아, 한국이요. 아니지, 파키스탄인가? 저는 한국인이지만 파키스탄에서 왔어요."


 어째 이 청년 매우 살갑고 리액션이 과할 정도로 좋다. 아, 말 좀 통하겠다.

"괜찮으면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가서 먹어요~" 했더니, 이미 먹고 왔단다. 음... 스위스 마지막 밤 만찬을 혼자 쓸쓸히 먹긴 좀 그런데. "그럼 가서 맥주나 한잔 같이 해요. 안주는 제가 푸짐하게 살게요~"

 이번에는 흔쾌히 콜!


 이 밥친구는 네덜란드 그로닝겐에서 온 20대 젊은 청년이며 벌써 몇 달째 유럽 전역을 배낭여행 중이라고 한다. 그래... 여행도 다리 힘 넘치는 젊어서 하는 거지. 좋겠다~


 늦은 시간에 식당을 애써 따로 찾기도 귀찮고, Happy in Lodge 호스텔 1층에 있는 식당엘 갔다. 식당 이름은 Brasserie 17. 구글 지도의 평점을 보니 평가가 그리 나쁘지 않다.


https://goo.gl/maps/U6qsuSPDjhEgiPM4A


 이 집은 파라다이스 립(Ribs-소갈비)이 싸고 유명하다던데 이미 이탈리아에서 스테이크는 썰어보고 왔고 스위스에 왔으니 스위스 대표 메뉴 치즈 퐁뒤는 한 번 먹어보고 가야지. 퐁뒤는 녹은 치즈에 빵을 찍어먹는 스위스 전통요리.


https://namu.wiki/w/%ED%90%81%EB%92%A4


 다행히도 스위스에선 2인분에 최소 10만 원은 한다는 퐁뒤를 여기선 미니 사이즈 15프랑(=2만 1천 원)에 팔고 있었다. 안 싸지만 상대적으로 싸 보인다.



 둘이 왔는데 이 쪼꼬만 하나만 시킬 수 있나. 네덜란드 청년도 왔으니 네덜란드(홀랜드)에서 왔다는 홍합탕도 먹어보기로 했다. 일단 메뉴판 사진이 푸짐해 보인다.



 메뉴판 사진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풍성한 저녁차림. 여기에 각각 맥주 한 잔씩을 추가했으니 이미 가용예산은 일찌감치 초과했지만 스위스 물가치고는 싼 편이며 밥친구까지 초빙한 마당에 이 정도는 사줘야지.


 네이버에서 스위스 식 치즈퐁뒤를 검색해보면 태반의 의견이 "절대 사 먹지 마세요"다.

 기대보다 맛도 비주얼도 떨어지고 이해 불가할 만큼 비싸며 너무 짜서 반의 반도 못 먹고 남긴다는 의견들이 태반. 어... 그래 그래. 알겠으니 무슨 맛인지 내가 함 보자고.


 치즈 퐁뒤, 비주얼은 사실 별 게 없다. 녹여 나온 치즈에 깍둑썰기해서 나온 바게트가 끝.

 길다란 퐁뒤 전용 포크에 빵을 콕 찍어서 녹은 치즈에 담가서 뱅뱅 감아서 먹으면~

 그렇지. 역시 짜다. ㅠㅠ 왜 다수의 한국인들이 치즈 퐁뒤 먹지 말라는지 이해가 되는 맛. 미적감각, 냄새, 분위기, 맛 등 종합적으로 따져봐도 가성비는 현격히 떨어지는 메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농업 치즈의 나라 스위스 현지에서 먹는 퐁뒤니까, 깊은 치즈의 맛이 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스위스 맛이구나 경험했으니 저 빵 몇 조각과 치즈 약간에 2만 원을 넘게 받는 비용이 크게 아깝지는 않았다. 경험과 기억의 대가로 생각하면 합리적 비용이지. 그리고 이미 짜디 짠 이탈리아 피자에 길들여진 끝이라 그런지 못 먹을 정도의 심각한 짠맛도 아니라서 냠냠 끝까지 안 남기고 잘 먹었다.(다 먹고 난 후 냄비에 누룽지처럼 들러붙은 치즈가 진국이라던데 그것만 느끼+짜서 남김)


 이 날 만족한 의외의 성공 메뉴는 네덜란드 홍합탕. 홍합탕에는 화이트 와인과 양파, 마늘, 부추를 넣고 끓이는 뱃사람식(Seemannsart), 토마토소스와 허브를 넣고 끓이는 프로방스식(Provencale), 뱃사람식 조리법에 프렌치 감자를 조합해주는 혼합식(with Frites) 요렇게 세 가지 옵션이 있었는데, 네덜란드 청년의 조언을 받아서 첫 번째 뱃사람식으로 주문.


 맛은 오~ 그냥 한국에서 먹던 어시장 홍합탕하고 거의 똑같다. 와인 탓인지 냄새가 약간 다르기도 했지만 냄비에서 홍합 껍데기째 건져서 속살 파먹는 방식도 똑같고 대충 한국식 맞다. 사실 뭐 홍합탕 요리가 별 거 있나. 싱싱한 홍합 넣고 물만 넣어 팔팔 끓여도 무조건 맛있다. 오랫동안 해산물을 거의 못 먹고 살아서 바다 요리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네덜란드 청년도 맛있다며 맛집 인정!


그나저나 뒤에 흰 옷 아저씨... 목을 저렇게 꺾으면... 보통 죽지 않나요.....? 처음 사진 열고 유령인 줄......ㅠㅠ


 호스텔 룸메로 만나 밥친구가 되어준 이 청년 덕에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밤은 외롭지 않았다. 딱 둘이서만 6인실을 사용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맥주를 곁들인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니 다른 룸메이트 두 분이 더 들어와 있었다.


 외모가 이 분들 남아시아 분들이네? 어디서 오셨어요. 아, 저희는 인도에서 왔어요. 아 반갑습니다. 저는 이웃나라 파키스탄에서 왔어요.


 헛. 대화 급중단.


 나는 비슷한 지역에서 왔다고 반가움을 표한 건데 생각해보니 파키스탄-인도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적국이지. 아니, 나 그냥 거기서 왔을 뿐이고 한국인이라고요.... 어쨌든 분위기 냉랭한데 굳이 친해질 필요 없으니 대충 씻고 오늘도 무사히 마무리.


 역시 이불속이 젤 좋다.




(다음 이야기 : 여정의 마지막 날. 취리히 크리스마스 마켓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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