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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pr 24. 2022

검수완박? 언어의 프레임에 대하여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게임 끝.

날마다 한국 뉴스가 시끄럽다.

이곳 파키스탄, 내가 살고있는 숙소안에는 유일하게 YTN 위성방송만이 한국어 TV신호로 송출된다. 날마다 나오는 소식이 검수완박 아니면 지방선거 공천, 그리고 살인범 용의자 이은해 이야기밖에 없다. 심지어 코로나 소식도 점점 잠잠해진다.


 검수완박? 이건 또 뭐지? 이 또 무슨 신기한 단어인가?

 사권 탈 머릿글자란다.


TV는 YTN밖에 안 나오지만, 느낌 전달을 위해 KBS홈페이지에서 캡쳐했다.


 사실 검찰 수사권이 검찰에 있든 경찰에 있든 청와대에 있든 선량한 시민들에게는 뭔 상관이랴. 내 일 아니다. 어차피 어디 있든 완벽한 행정은 있을 수 없는 거고 운영하는 사람에 달린 거 아닐까. 사실 나는 검찰이든 경찰이든 둘 다 못 믿겠다. 둘 다 못 믿겠으니 중립적 입장인데, 검수완박 관련한 재미난 기사거리가 있어 링크해둔다. 검찰이 검수완박 시 부작용을 문서로 홍보했는데 소시민의 따박따박 잔소리. 무척 공감되고 재밌다. 그니까 말 나오기전에 좀 잘하지 이것들아.


http://www.impet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0625


 어쨌든, 오늘의 주제는 검수완박이 맞냐 아니냐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검수완박"이라는 말을 듣고 뜻을 이해하자마자,


 "아, 이거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마음먹은 대로 안 되겠네."


 라는 내 나름의 판단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언어에는 프레임이란 게 있다.


 한 번 그 의미가 특정 프레임에 갇혀 버리면 그 밖으로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논리다.

 코로나19를 우한폐렴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WHO는 금기한다. 해당 지역에 대한 혐오가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태풍 이름을 붙일 때, 국가나 지명을 이름으로 쓰지 않는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사상 초유의 유조선 누유사고가 났을 때, 많은 언론이 처음에 "태안 누유사고"라고 쓰다가, 지자체의 강력한 항의에 힘입어 "허베이스피리트호 누유사고"로 정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태안 누유사고"로만 사건을 기억한다. 정작 사고는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쳐놓고 이미지는 "태안"이 망가졌다.


 무언가 복잡한 개념을 대중에게 관철시키려면 명확하고 긍정적인 언어 프레임을 형성해야 한다. "기본소득"이라고 하면 보편적 신경향 복지정책처럼 들리는데 "소득배급제" 그러면 어쩐지 공산주의 강제분배 이미지가 덮어씌워져 부정적으로 보인다. 당신이 해당 정책 도입을 바라는 정치인이라면 "기본소득제"라고 쓸 것이고, 반대하는 입장이라면 "소득배급제"라고 칭해버리면 된다. 다만, 이 프레임은 대중에게 한 번 형성되면 되돌리기 매우 어려운 것이므로 초기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언론은 해당 정책에 대해 항상 "검수완박"으로 이슈를 설명하는데, 나는 이 "검수완박"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쪽은 이 정책을 반대하는 야당이거나 검찰에서 만들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국민 입장에서야 수사권이 미국이나 일본에 가는 것도 아니고 위치 이동일 뿐인데 박탈당하는 건 오로지 검찰 입장에서인거다. 정책 이름이 "박탈"이라니. 시작도 하기 전부터 졌다.


 내가 이 정책을 관철하고자 하는 여당 입장이라면, "수사권 독립" 같이 중성적 또는 긍정적 어감을 살려 정책 이름을 지었을 것 같다.(물론 당장 좋은 생각은 안 난다.)


 해당 정책의 결론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끝까지 지켜봐야겠지만, 집권 여당이 저런 작명까지 뺏긴 걸 보면 이제 힘이 다 빠진 모양이다. 달도 차면 기울지만 이번 달은 너무 빨리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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