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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Feb 18. 2023

지금, 파키스탄에선

2023년 2월 18일 현재상황

 한 번도 난리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요즘(=2023년 2월 18일 현재기준) 파키스탄, 난리다. 이 나라에서 1년 넘게 살면서 어지간한 뉴스에 둔감해지기도 했는데, 요즘 체감상 느끼는 불안감은 확실히 작년과는 많이 다르다.


1. 경제상황

 파키스탄 루피화는 국제사회의 신용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우리나라도 2018년 6월부터 파키스탄 루피화의 환전을 완전히 중단했다. 원화를 파키스탄 루피를 바꾸려면 달러로 바꾼 다음, 여기서 달러를 루피로 재환전하거나, 파키스탄 현지에 사는 한국인을 통해 알음알음 바꾸는 수밖에 없다.


 그럼, 세계 대부분의 은행들이 파키스탄 루피 환전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아래 그래프 보면 답 나온다. 루피에 환율변동 같은 이야기는 적용이 안 된다. 그래프 기울기의 차이일 뿐이지 끊임없는 우상향. 루피를 가지고만 있어도 가치가 실시간으로 녹아내리는데, 어느 은행이 이걸 환전용으로 비치해서 서비스해 주나.



 원래도 가치가 떨어지고 있었지만 연말까지 그나마 달러당 220~230선에서 유지되던 파키스탄 루피는 지난 2023년 1월 25일, 정부당국으로부터 억지로 유지되던 환율 상한선이 폐지되면서 가치가 일순간 폭락했다. 다만, 상한선 폐지에 따른 단기급등으로 암시장이 일시 소멸되고 달러가 유입되며 달러당 277루피까지 폭락했던 가치는 2월 18일 현재 260루피로 다소간 안정되는 모습이다.(근데 며칠이나 갈런지...)


 파키스탄 지사 파근근무자인 나는 루피로 급여를 받아 통장에 일부 제 때 환전하지 못한 루피가 쌓여있는데 1월 한 달 새 근 20%나 가치가 녹아내려버렸다. ㅠㅠ

 


 달러-파키스탄 루피 장기 그래프 되시겠다. 그래프의 시작점 2006년 6월에 1달러당 60루피, 초 스트롱 파키스탄 루피에서(지금 보면 그렇단 뜻) 2023년 2월 260루피! 17년 만에 4.33배가 올랐다. 반대로 얘기하면, 17년 전에 달러를 들고 들어와서 여기서 사업을 해서 투자비의 4배를 불려 이제 철수하려 한다면, 4배 불린 건 고사하고 33% 손해가 발생했다는 뜻.(이자나 할인율 같은 건 고려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니... 외국인 투자가 될 리가 있나. 이미 전년도부터 위험시그널을 감지한 상당수의 외국계 기업들의 탈출러시가 벌어지고 있다.


 달러-루피 환율은 경제상황의 반증이니, 환율이 올라서 경제가 안 좋다고 설명하면 안 된다. 이건 결과물이니까. 그럼 대체 왜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환율이 망해가느냐.


 답은 간단하다. 만성 무역적자국이라 그런 거지. 에너지, 원자재, 생필품 등 사 올 건 많은데 내다 팔 물건이 없다. 수출품의 65%는 의류, 섬유 제조업. 저렴한 노동력덕에 그나마 섬유산업이 주종이긴 한데, 화학섬유 원자재는 수입품이며 산업 특성상 부가가치가 큰 첨단산업이 아니라 큰돈을 벌어주진 못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나마 유럽 중동 등 잘 사는 나라에 인력수출이라도 많이 해서 산업역군들이 벌어다 역송금해주는 돈으로 경제가 유지되었다고 하던데 코로나 터지고 인력수출도 막히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수입 에너지 가격도 급등해서 견딜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거다. 참고로, 파키스탄은 석유 생산을 아예 못하지는 않지만 소비량에 비해 생산량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며 발전량의 상당분을 LNG에 의존하는데 이거 사 올 돈이 없어서 멀쩡한 발전소를 그냥 놀리고 강제 순환정전을 선택하는 정책을 택할 정도로 외환 사정이 나쁘다.


https://brunch.co.kr/@ragony/115


 상황이 이 지경인지라 에너지 물가 및 수입 물가는 미친 듯이 오른다. 식용유, 밀 등 식자재 상당분도 수입에 의존하고 가축 사료도 수입인지라 닭고기, 달걀 등 주요 먹거리는 이미 작년대비 두 배쯤 올랐다. 이 와중에 파키스탄 정부는 IMF로부터 구제금융 충족조건을 맞추느라 대규모 증세를 단행(판매세 17→18% 인상 등)하고 휘발유, LNG 등 주요 에너지 가격을 "또" 인상했다.


https://www.dawn.com/news/1734227


 외부 경제충격도 극심한데 내부적으로는 더 엉망이다. 유례없는 홍수가 나서 주요 농경지가 말 그대로 쓸려내려 갔다. 양파 가격은 10배가 더 올랐는데, 그나마 구하기도 힘들고 애써 사온것도 절반 이상 썩어있다.


http://www.ob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84466


https://brunch.co.kr/@ragony/151


 파키스탄의 2023년 1월 물가는 전년 동기대비 무려 27.55%나 올랐다고 한다. 치솟는 물가로 주민들 소요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무척이나 걱정이 된다. 문화생활은 고사하고 "먹고는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식료품 물가만 "공식적으로" 43%나 올랐다.(=즉, 비공식적으로 두세 배 오른 항목이 수두룩하다는 뜻.)


https://www.news1.kr/articles/4940785


 파키스탄은 IMF와 막바지 구제금융 협상을 벌이고 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089674?sid=104


 협상 와중에 며칠 전, 국제 신용평가사 Fitch는 지난 2월 14일 유동성 악화, 정치적 변동성 및 외환보유액 감소 등의 요인으로 파키스탄의 장기외화발행자 기본등급(IDR)을 'CCC+'에서 'CCC-'로 강등해 버렸다.

(※CCC- 등급은 매우 높은 수준의 불이행 위험을 의미)


 희망스러운 소식은 이러한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전문가들은 디폴트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사우디, 중국 등 우방국이 채무를 유예해 줄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으며, IMF와의 구제금융 지원에 대한 선결조건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으며, 지난해 발생한 대홍수의 구호기금을 선진국으로부터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2. 테러

 나라가 이 모양이면 전 국민들이 힘을 합쳐 일치단결하고 금 모으기 운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저게 끝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파키스탄 탈레반(TTP)은 정부와의 휴전 중단을 선언하고, 테러 공작활동을 부쩍 늘리고 있다. 휴전 전 국경지대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던 테러는 이제 국경과 대도시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경찰 본부를 직접 겨냥하고 있어 현지인 및 외국인들에게 충격과 경악을 안겨주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08381&ref=A


 카라치라면 파키스탄 최대의 항구도시. 이슬라마바드가 수도지만 행정도시로 비교적 규모가 작고, 경제최대도시는 항구도시인 카라치이다. 미국으로 따지면 이슬라마바드는 워싱턴 D.C 느낌이고, 카라치는 뉴욕 느낌. 그런데, 그 최대도시 경찰서를 직접 겨냥한 테러가 어젯밤(2023.2.17. 금) 발생했다.

 이건 선 넘었네... 테러가 아니라 내전 분위기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1223139100104?input=1195m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13038


https://n.news.naver.com/article/448/0000395792?cds=news_my




3. 탈출

 지난 주말, 한 현지직원이 내게 푸념 섞인 얘길 한다.


"지사장님, 저는 곧 영국에 가서 일자리를 얻을 생각이에요. 이 나라는 희망이 없어요."


"아니, Mr.OOO, 이 나라는 당신처럼 잘 배우고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일으켜야지, 당신처럼 공부한 사람들 죄다 다 탈출해 버리면 이 나라는 누가 발전시키나."


"저 혼자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이 나라는 참된 정치인도 없고 구심점도 없어요."


 뭐... 사실 내가 느끼는 감정도 비슷해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사실 한국도 비슷한 지경이니까. 똑똑한 학생들은 모두 의대 진학을 최우선하고 이공계에서 그나마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다 유학 가버리고 선진국에서 눌러앉고 안 들어오는 게 현실이잖아. 산업계에서는 브레인이 없다 그러고. 자국 인재들을 눌러 앉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부여해야 당장 암울한 현실을 견디고 국가를 발전시키는데, 그런 면에서는 파키스탄 하고 한국이 많이 닮아 보인다. 우리 지사 IT 엔지니어 한 명도 이번달에 사직서를 냈다. 영국에 가서 더 공부해서 더 나은 미래를 찾겠단다... 연봉이 10배 넘게 차이가 날 텐데, 기회만 있다면 가야지.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며칠 전에 지역주민 한 명이 자녀 3명과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어요. 집에 먹을 게 다 떨어져서 그랬대나 봐요."


 "아니, 그래도 파키스탄 사회는 씨족으로 촘촘하게 엮여있고 씨족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으면 주민공동체가 움직이지 않나요? 먹고는 살아야지."


 "기본적으로 그렇기는 한데, 케바케라서요. 그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아요. 어쩔 수 없어요."


 "신문기사에서 본 기억이 없는데....?"


 "경제난 비관 자살은 너무 비일비재한 일이라 신문기사감이 못 됩니다. 범위를 넓히면 하루에도 수십 건 벌어질걸요? 기자들은 이런 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너무 많아서..."


 국가로부터 탈출을 하거나... 현실세계로부터 탈출을 하거나... 탈출밖에 답이 없나.....? 허긴 나도 파견기간만 딱 채우고 내 나라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거다. 불안해서 못살겠다.




 너무 암울한 소리만 잔뜩 했나?

 음. 암울하지. 실제로 요샌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많이 긴장이 되고 불안하다. 사생활 침해인 줄 알지만 주말에 파견자 팀장님들한테 집 밖에 나가면 동선 보고하고 사건사고 있나 없나 점검하고 살자고 했다. 날마다 대도시에서 이렇게 빵빵 터지는데 어딘들 안전하겠냐고. 집콕이 상책이지.


 그렇지만 모든 전망이 다 암울하진 않다. 인구 2억 4천만 명이 넘는 파키스탄 같은 인구대국은 언젠가 세계 경제대국이 될 걸라고 골드만삭스가 희망적인 전망을 내놨다. 실제 이 나라는 인구만 많은 게 아니라, 인구 구성도 매우 젊은 나라다. 2020년도 기준해서 한국의 평균연령이 42.6세임에 반해, 파키스탄 평균연령은 22세밖에 안 된다. 젊은 데다 젊은 인구수도 많으니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https://news.imaeil.com/page/view/2022121208002478676


 땅도 넓고, 인구도 많고, 젊고, 미개발 천연자원도 많은 나라 파키스탄.

 분열된 민심을 잘 모으고 국가경영만 잘하면, 얼마든지 단기간에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부디 당장 불안불안한 경제 및 정치상황을 무사히 넘기고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는 모범국가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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