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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r 20. 2023

꽃다발에 대한 철학적 고찰

설득하고자 쓰는 글은 아녜요


"꽃다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축하, 위로, 사랑, 추모, 기념, 격려, 환영, 환송, 성공...


 모두 좋은 이미지만 가득인 형형색색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다발을 볼 때마다 나는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든다. 사실 보편타당한 이유와 감정이 아니기에 남들 앞에서 잘 얘길 꺼내질 않는 편인데 누군가 콕 꼬집어 물어보셔서 용기를 내서 써본다. 누군가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이건 다 기본성향이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내 철학관의 영향인 것 같다. 그렇게 타고난걸 뭐 어째.


 전 세계 화훼농가는 물론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으로 꽃다발을 주고받을 사람들께도 무척 미안한 표현이지만, "식물의 생식기만 잔인하게 똑 잘라다 묶어놨네..."라고 느끼는 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쓸데없는 상상을 잘하는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식물이 사람이고 사람이 식물이라면, 식물들은 꽃다발을 어떻게 만들까? 남자 여자의 성기를 잘라다가 묶어서 파려나?





 대학생 때였는지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 어둠의 경로로 "칼리굴라(Caligula, 1979년작)"라는 영화를 본 적 있다. 사실 고전 포르노인 줄 알고 호기심에 받아본 파일인데, 알고 보니 제작비만 무려 1,750만 달러(그것도 1979년에!)가 들어간 대작 역사 드라마 영화이다. 남녀 성기를 노골적으로 비추고 근친상간, 황실에 만든 매음굴 묘사 등 영화가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다수의 국가에서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는데, 금지하면 더 끌리는 심리적 현상을 일컫는 "칼리굴라 효과"도 이 영화에서 나왔다고 한다.


 나에겐 이 영화에 나온 황실 매음굴의 매우 독특한 석상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대형 성기 조각상. 혹여나 이 관련된 정보가 있을까 해서 네이버와 구글에 찾아봤지만 있을 리가 없지. 2023년이 된 현대에도 여전히 성에 관련된 것은 지극히 보수적이다.


 꽃다발 얘기를 하다가 왜 전혀 상관없는 영화 얘기까지 꺼내냐면, 결혼식장 벽면에 장식된 꽃장식이나 영화 매음굴 한복판에 있던 남녀 성기조각상이나 본질적으로 철학적으로 비슷하게 느껴져서다. 칼리굴라 영화의 장면은 사람의 생식기도 장식으로 쓰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는데 이게 실제 존재하는 조각상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내겐 문화적 충격이 컸다. 식물의 생식기를 보면 아름답게 느끼면서 왜 사람의 생식기는 감추기만 해야 할까.


 오늘 글의 주제가 성문화 개방이 아닌데 좀 다르게 흘렀다. 도로 꽃다발로 돌아가서... 어쨌든 나는 이런 연유로 꽃다발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좀 불편하다. 물론 꽃다발은 매혹적으로 아름답고 좋은 향기가 나지만, 식물의 꽃은 나무 또는 풀 그 몸체에 붙어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 아닐까.


 기본 가치관과 철학이 이런지라, 나는 꽃다발 선물에 인색한 편이다. 무언가 축하할 일이 있다면 꽃다발 대신 화분이나 다른 물건을 고르는 편이 잦다. 내 입장에선 식물의 꽃대만 달랑 자른 꽃다발 대신, 화분에서 피어난 꽃을 보고 있는 것이 훨씬 마음이 평온하다.




 나도 사회생활 할 만큼 해 본 사람으로 꽃다발이 주는 사회적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꽃다발로 주고받는 사랑과 축하, 격려와 응원의 의미를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식물의 입장에서 꽃다발이란 "생식기만 잘라다 엮어놓은 다발"인 것이니 그 본질에 측은지심을 가진 것이라 이해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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