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좋은 이미지만 가득인 형형색색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다발을 볼 때마다 나는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든다. 사실 보편타당한 이유와 감정이 아니기에 남들 앞에서 잘 얘길 꺼내질 않는 편인데 누군가 콕 꼬집어 물어보셔서 용기를 내서 써본다. 누군가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이건 다 기본성향이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내 철학관의 영향인 것 같다. 그렇게 타고난걸 뭐 어째.
전 세계 화훼농가는 물론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으로 꽃다발을 주고받을 사람들께도 무척 미안한 표현이지만, "식물의 생식기만 잔인하게 똑 잘라다 묶어놨네..."라고 느끼는 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쓸데없는 상상을 잘하는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식물이 사람이고 사람이 식물이라면, 식물들은 꽃다발을 어떻게 만들까? 남자 여자의 성기를 잘라다가 묶어서 파려나?
대학생 때였는지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 어둠의 경로로 "칼리굴라(Caligula, 1979년작)"라는 영화를 본 적 있다. 사실 고전 포르노인 줄 알고 호기심에 받아본 파일인데, 알고 보니 제작비만 무려 1,750만 달러(그것도 1979년에!)가 들어간 대작 역사 드라마 영화이다. 남녀 성기를 노골적으로 비추고 근친상간, 황실에 만든 매음굴 묘사 등 영화가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다수의 국가에서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는데, 금지하면 더 끌리는 심리적 현상을 일컫는 "칼리굴라 효과"도 이 영화에서 나왔다고 한다.
나에겐 이 영화에 나온 황실 매음굴의 매우 독특한 석상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대형 성기 조각상. 혹여나 이 관련된 정보가 있을까 해서 네이버와 구글에 찾아봤지만 있을 리가 없지. 2023년이 된 현대에도 여전히 성에 관련된 것은 지극히 보수적이다.
꽃다발 얘기를 하다가 왜 전혀 상관없는 영화 얘기까지 꺼내냐면, 결혼식장 벽면에 장식된 꽃장식이나 영화 매음굴 한복판에 있던 남녀 성기조각상이나 본질적으로 철학적으로 비슷하게 느껴져서다. 칼리굴라 영화의 장면은 사람의 생식기도 장식으로 쓰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는데 이게 실제 존재하는 조각상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내겐 문화적 충격이 컸다. 식물의 생식기를 보면 아름답게 느끼면서 왜 사람의 생식기는 감추기만 해야 할까.
오늘 글의 주제가 성문화 개방이 아닌데 좀 다르게 흘렀다. 도로 꽃다발로 돌아가서... 어쨌든 나는 이런 연유로 꽃다발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좀 불편하다. 물론 꽃다발은 매혹적으로 아름답고 좋은 향기가 나지만, 식물의 꽃은 나무 또는 풀 그 몸체에 붙어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 아닐까.
기본 가치관과 철학이 이런지라, 나는 꽃다발 선물에 인색한 편이다. 무언가 축하할 일이 있다면 꽃다발 대신 화분이나 다른 물건을 고르는 편이 잦다. 내 입장에선 식물의 꽃대만 달랑 자른 꽃다발 대신, 화분에서 피어난 꽃을 보고 있는 것이 훨씬 마음이 평온하다.
나도 사회생활 할 만큼 해 본 사람으로 꽃다발이 주는 사회적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꽃다발로 주고받는 사랑과 축하, 격려와 응원의 의미를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식물의 입장에서 꽃다발이란 "생식기만 잘라다 엮어놓은 다발"인 것이니 그 본질에 측은지심을 가진 것이라 이해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