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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r 17. 2023

큰일났다. 살이 찐다.

나한테는 안 일어날 일일 줄 알았는데.

 짧은 겨울이 금방 지나가고 벌써 초여름이 왔다.

 (여기는 한국 아니고 덥디 더운나라 파키스탄)


 겨울옷은 도로 옷장 행. 작년에 가져왔던 여름 바지를 꺼내입는데...


오 마이 갓


 허리가 안 잠긴다. 그리고 바지통이 너무 꽉 낀다.

 아, 살이 쪘구나. 그것도 많이.


 겨우내 스스로 살이 찐 걸 자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겨울 바지는 두툼한 데다 처음부터 여유가 있어서, 이렇게나 심각한 줄 몰랐던 것뿐이다. 여름바지는 얇고 상대적으로 스키니 핏이라 단박에 느낌부터가 다르다.


 샤워를 하고 나와 내 몸을 유심히 거울에 비춰본다.


 아, 역시. 배만 나오네. ㅠㅠ



 나는 평생을 마른 작대기 같은 몸매로 살아왔다.

 옷을 입으면 너무 옷태가 안 살고(마네킹이 아니라 철사로 옷을 고정한 느낌?) 늘 한결같은 몸매라 체형 따라 옷을 바꿀 필요도 없어 옷을 한 번 샀다 하면 마르고 닳을 때까지 입어서 요즘 같은 시대에 구멍 난 옷이 한 두 개가 아닌 사람인데 내 나이 중년에 옷이 작아서 못 입을 지경이라니. 이건 충격이다. 성장이 멈춰버린 고등학교 이후로 옷이 작아져서 못 입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단 말이다.


 허.. 참... 왜 살은 폼 안나게 배부터 찌는 걸까. 얼굴이 좀 포동동해 지면 잔주름도 없어질 것 같고, 어깨가 좀 두툼해지면 튼튼해 보일 것 같고, 이두박이라도 좀 굵어지면 옷태도 살고 좋겠구만 다른덴 여전히 빼빼 마른 작대기 아저씬데 왜 배만 찌냐고 ㅠㅠ


 다른데는 안 찌는데 배만 찌는 이유를 좀 찾아봤다.

 일단, 몸의 다른 부위 대비 에너지로 쉽게 바꿀 수 있는 "지방"을 저장하기 가장 적당한 공간이 배 쪽이며, 폐나 심장 등 중요한 장기는 갈비뼈의 보호를 받지만 대부분의 소화기관은 뼈 없이 배 쪽에 몰려 있는데, 이 중요 장기들을 보호하기 위한 몸의 자동 안전장치가 잉여 지방을 배로 보내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런데 나는 왜 지난 1년간 이리도 급격하게 살이 쪄 버렸나? 분석 들어간다.


 첫째. 더 이상 젊은 나이가 아니다.

 신체가 나이가 들면 신진대사가 줄어들고 그에 비례해서 몸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줄어든다고 한다. 먹는 양은 똑같은데 덜 쓰니까 차곡차곡 쌓일 수밖에.


 둘째. 진급했구나.

 회사에서 진급하기 직전에는 실무자로서 많은 일들을 떠맡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서 쓰는 에너지도, 받는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했다. 진급 후 조직장이 되고 나선 업무의 중요도와 스트레스의 수준은 올라갔지만 본사에서 진급주자로 달릴 때만큼의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은 아니다.

 조직장 신분에 맞는 의전도 무시할 수 없는데 의전은 물론 안전과 보안을 고려해서 모든 이동에 항상 차량이 제공되며 상대적으로 걷는 거리가 확 줄어버렸다. 그러니까, 일상생활 중의 운동요인이 사라져 버렸다. 왜 "사장뱃살"이란 단어가 있는 건지 몸으로 이해했다.


 셋째.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평생을 한국에서만 살다가 갑자기 머나먼 파키스탄에서 살게 되었다. 기후도 사람도 먹거리도 물도 모든 게 생소하다. 몸 세포도 하나하나 이 사실을 아나보다. 안 겪어본 비상사태니까 일단 온몸에 에너지를 저장해 두자고 작정하는 것 같다. 사실 이 나라 오자마자 물갈이 신나게 하고 한바탕 신고를 하긴 했다. 어떻게든 몸에 워닝 시그널이 갔겠지.


 넷째. 식단도 바뀌었다.

 생각해보니 그 간 나 스스로 "나는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인 줄 착각하고 살았다. 내가 그 간 고기를 별로 안 좋아했던 이유는 "비싸서" 였다. 상대적으로 이 곳 지사에서 제공하는 식단에는 한국에서보다 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한국대비 먹거리 물가가 저렴한 이유도 있고, 이 나라의 기본식단도 빵(짜파티 및 로티) 및 고기(닭고기, 양고기, 염소고기)가 주력인 이유도 있다. 해 주는대로 양껏 먹다보니 역시 고기가 맛있다. "나 고기 안 좋아한다는 말" 취소.




 그간 나는 "아무리 먹어도 절대 살찌지 않는 축복받은 마법 같은 체질"이라고 너무너무 좋아했었는데(사실 나는 이것저것 안 가리고 많이 먹는 식도락가였다. 돈이 없어 못 먹어서 그렇지 남기는 법이 없었음.) 이제 그게 아니라서 늘 가지고 있던 마법능력 하나를 박탈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ㅠㅠ


여기서 자꾸 찌면 입고 다닐 옷도 없으니까(아무리 쪄도 무방한 허리 40인치에 고무줄 들어간 현지복 샬와르 까미즈가 있긴 하다) 평생에 해본 적이라곤 없는 다이어트를 해 보기로 한다.


아침은 쥬스 한잔만 마시고 패쓰.

점심은 잘 먹되, 쌀밥은 평소의 절반만 먹기.

퇴근땐 숙소까지 걸어서 퇴근하기.

저녁엔 쌀밥 금지. 가급적 샐러드 위주로 포만감만 갖추기.

숙소 체련단련장에서 틈 나는 대로 운동하기.


 아흑. 인생의 모토가 "무계획 상팔자"인데 욕구를 제한하고 신체에 고통을 주어야 할 시기가 와버렸구나...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본, "먹고 싶은데 참는" 일이란 게 생각보다 힘들다. 식욕이란 건 생물의 가장 기본 욕구 중 하나인데 말이지.


 어쨌든, 먹는 것 줄이고, 운동은 늘려가면서 체형이 원 상태로 돌아오나 신경 쓰고 살아보련다.

 사실 보기 좋게 골고루 살찌는 건 괜찮지만, 바른 비만에 올챙이배는 용납할 수 없다.


 차라리 그냥 작대기 아저씨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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