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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r 25. 2023

내가 다신 비디오 게임을 하나 봐라

(며칠이나 갈런지 모르지만...)

 주말이 왔다.

 메타버스가 뭐 별 거 있나. 최신 비디오게임이 메타버스지.

 골치 아픈 현실세계 잠시 내려놓고, 나 어디 좀 갔다 올게.

 게임 속 딴 세상 잠시 여행.


 내가 즐기고 있는 게임은 "God of War"라는 대작이다.

 북유럽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인데, 이게 실사인지 게임화면인지 구분하기 힘들 만큼 정교한 게임배경과 장엄하고 장대한 스토리가 매우 일품인 영화이다. 길 찾기, 퍼즐, 전투액션 등이 조합된 게임인데, 스토리도 매우 방대하고 등장인물도 많다. 처음에는 이왕 게임하며 영어공부도 같이 해야지 마음먹고 언어설정을 "영어"로 해서 플레이했는데 조금만 진행되니까 스토리도 복잡해지고 퍼즐 풀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스트레스 해소 좀 하자고 게임하는 건데 게임하면서까지 스트레스받아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더니 자연스럽게 "한글 자막"을 켜놓고 하고 있다. 중학생 때 처음 접한 "원숭이섬의 비밀"이란 게임은 한글판 지원 자체가 없던 게임이라 어렵게 입수한 게임공략집 복사하고 공략집에 나오지 않는 문장은 영어사전 찾아가며 플레이어했던 기억이 있는데 높아진 한국시장의 위상 덕분에 "God of War"는 한글 자막이 지원되니 이거 좋은 건가 안 좋은 건가.



 이 게임을 시작한 지 벌써 근 6개월이 넘은 것 같은데 전체 진도율이 절반도 못 왔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속전속결로 한다면 총 클리어시간이 약 28시간으로 나오는데, 그건 길도 다 알고 퍼즐 답도 알고 중간보스전도 쉽게 이긴다는 전제하에 그렇다는 거고, 아이템 있나없나 출구는 어딘가 왔던 길 열 번씩 두드려보고 퍼즐 문제 헤매고, 중간보스전 격파 못해서 몇 날 며칠 수백 번 결투 재신청하는 나로서는 200시간쯤은 할애해야 이 게임을 클리어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든다. 대충 계산하면... 하루 2시간씩 플레이한다면 100일, 주말마다 하루 2시간씩, 일주일에 4시간씩 한다고 하면 50주가 걸리니까 부지런히 꾸준히 게임을 해도 클리어까지 1년이 걸리겠다.


 날마다 황홀한 그래픽과 특수효과, 사운드 기술에 감탄하며 꾸역꾸역 진도가 나가긴 했다. "이거 만든 사람도 대단하지만, 이런 트릭과 퍼즐을 공략집 안 보고 풀어나가는 나도 대단해~" 칭찬하면서 여전히 소년감성으로 꾸준히 게임을 즐기던 중에...


 난공불락의 중간보스 발키리 Eir를 만났다.



 들어가면 죽고 죽고 또 죽고 발키리 중간 보스전만 100번은 넘게 한 것 같다.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서 게임 공략 유튜브를 봤는데, 세상에, 한 대도 안 맞고 가뿐히 격파한다. 이상하다. 같은 게임 맞나? 나는 아무리 따라 해도 어쩌다 뽀록으로 한 두 번은 되는데 게임공략자가 알려준 패턴대로 대응이 안 된다.


 뭐가 문제지? 내가 프로게이머가 아니니까 똑같이 할 수는 없고... 여타 다른 유튜브 클립도 다 봐가며 분석했는데 내가 내린 결론.


 아, 내 게임 캐릭터는 너무 약하구나.


 어드벤처 게임답게 매우 다양한 가지치기 미션이 등장하는 게임인데, 그거 전부 다 했다간 도저히 끝을 못 볼 것 같아서 메인 스토리를 중심으로만 게임을 진행시켰다. 그러다 보니, 적정 진도에 걸맞은 적정 경험치를 올리지 못했고 중간보스 격에 맞는 무기나 기술, 방어력이 업그레이드가 되지 못한 것이 이번 중간보스인 발키리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캐릭터가 아무리 약해도 내가 게임의 신동이라면 AI가 조종하는 발키리의 패턴을 완벽히 읽고 가뿐하게 두들겨 팰 수 있겠지만 나는 이미 눈도 침침하고 손가락 반응도 더딘 중년 아저씨. 사실 그건 핑계고 어릴 때도 게임을 좋아하기만 했을 뿐 게임에 소질이 높은 아이인 것도 아녔다.


 전략을 다시 짜야했다.


 첫째, 이왕 이렇게 된 거 100판쯤 재결투해서 발키리 AI의 공격패턴을 완벽히 암기해서 저질체력의 캐릭터이지만 얍삽한 손기술로 이기든가


 둘째, 처음부터 게임을 착실하게 해서 모든 업그레이드 아이템을 꼼꼼하게 모아 체력 공격력 방어력 킹왕짱 캐릭터를 만들어서 힘으로 밀어붙이든가.


 그런데,

 결투판 100판 더 하기엔 이미 너무 힘들고 지겹다. 그리고 100판을 채운다고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게임을 하기엔 그 간 투자한 시간이 너무 아깝고 이미 지나온 여정이라 지겹다.


 나는 시작도 포기도 모두 잘하는 인간형. 그렇지. 재밌자고 하는 게임이 언젠가부터 스트레스가 되고 있네.


나 이제 게임 안 해.


 조금 서글픈 감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닌데,

 포기하면 편하다.


 그런데... 며칠이나 갈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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