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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pr 13. 2023

에스코트 차량이 난폭한 이유

지켜보는 나는 매번 불안하다...

 나는 별도의 허가증이 없으면 출입자체가 안 되는 파키스탄 분쟁지역에 살고 있는 해외 파견 직장인이다.


 분쟁지역에서 이동하게 되는 경우 반드시 경찰관이 별도의 차량으로 외국인을 호송해야 하는 규정이 정부 훈령으로 존재한다. 분쟁지역에 거주하거나 분쟁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모든 외국인은 이 훈령을 준수해야 하며, 훈령 위반 시 이동 자체가 허가되지 않는다. 주와 주의 경계에는 무장경찰들이 지키는 체크포스트가 있으며 이 경우 이동허가증을 소지하고 있어야 하며, 에스코트 차량 지원유무를 체크한다.


 나갈 일이 많지는 않지만 때때로 이슬라마바드 도심에 나갈 일이 가끔 있다. 이동시마다 미리 협약된 에스코트 차량을 예약을 하고 소총과 실탄을 보유한 무장경찰 호위를 받는다. 에스코트 차량에는 운전자 1명, 무장경찰 2명이 탑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에스코트 차량이 너무 난폭하다. 중앙선 침범은 예사이고 왕복 편도차선에서도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앞지르기를 자주 해서, "저는 급한일도 없는데 제발 좀 천천히 안전하게 갑시다. 호송받는 차가 따라가기도 급급하고 너무 위험해 보입니다~." 했더니, 그게 다 이유가 있단다.


 나는 한국에서 에스코트 차량이라고 하면 축제 퍼레이드에서 길을 여는 1호차 또는 대통령 등 VIP 이동시 비추어지는 엄숙한 TV화면 등으로만 보고 와서, 실전 에스코트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에스코트 차량 운행 시 적용되는 대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서행운전은 피한다.
 - 천천히 이동하면 스나이퍼(저격수)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쉬운 표적이 되지 않도록 가급적 신속하게 이동한다. 교통혼잡 구역에서도 에스코트 차량은 최대한 길을 열고 호송받는 차량의 동선을 확보한다. 서행트럭이 앞을 막으면 추월한다.

 원칙은 이해하겠으나... 내가 저격수에 저격당하는 확률이 높을까 저렇게 무리한 추월로 교통사고 당하는 확률이 높을까 늘 걱정을 하게 만든다. 원칙이 저렇다는데 앞지르기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긴 산악지형 첩첩시골이라 태반이 위험한 곡선 도로라는 것. 내가 안 불안하겠냐고......


2. 중간정차를 금하며, 휴게장소는 사전에 지정된 장소에 한한다.
 - 경호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장소에서의 임의 휴식을 지양한다. 다수의 경호인력이 확보된 곳에서만 정차와 휴식을 허용한다.

 먼 길을 떠나기 전에 곳곳에 배치된 연락망을 통해 도로사정을 사전에 살피고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가끔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파키스탄은 정치와 경제가 동시에 불안한 나라라서 국민들의 소요사태가 빈번한데 언젠가 하루는 이동을 하다 말고 시위대를 만나서 꼼짝없이 길 한가운데 갇히는 일이 발생했다. 무장경찰관이 탑승한 에스코트 차량이라 할지라도 시위대를 뚫어주진 못했다. 시위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거니 했었는데, 에스코트 차량이 중앙선을 넘더니 왔던 길을 도로 돌아간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안 됩니다."가 그 이유. 별 수 있나. 나는 가이드해주는 대로 무장경찰들이 더 있는 체크포스트까지 이동한 후에 시위대가 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렸다.



 지사에 처음 부임한 직후에는 이런 차량 에스코트 서비스에 내가 무슨 대단한 VIP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매우 황송하기도 하고, 또 한편 "나 경찰 에스코트 받는 사람이야~"하는 우쭐대는 맘도 살짝 들고 했었는데, 좀 적응이 되고 나니 이거 귀찮아 죽겠다. 에스코트 차량 예약 없이는 지사 밖으로 한 발도 못 나간다. 가끔 내가 호위받는 건가 감시당하는 건가 헷갈리기도 한다.


 요즘에는 요구하는 정도가 한 발 더 나아가서 외국인들은 이동시 "방탄차량"을 준비하라고 수 차례 공문을 내리고 압박하고 있는데, 그건 내 직무권한을 한참 더 초과한 일이지... 여기서 누가 방탄차량을 타...? 나는 각 국가 대사관의 최고 책임자인 대사용 차량 말고 일반 기업인이 방탄차를 탄다는 얘기는 단 한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자꾸 강화된 보안규정을 적용하라고 압박하는 게 설마 혹시 뒷돈을 안 줘서 일부러 괴롭히는 건가 의심도 살짝 하긴 했었는데 나 말고 인근 외국회사도 같은 공문을 모두 받았다고 하니 우리만 괴롭히려고 그런 건 아닌 것 같긴 하다. 정말 우리 안위를 걱정해주는 거라면 고마운일이긴 하지. 그런데... 진짜 저격총을 맞기 전에 진지하게 본사에 건의해서 방탄차량을 준비해야 하나 싶다가도, 방탄차량까지 갖추고 사업할 외국기업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이 미치니 감히 건의할 엄두가 안 난다. 나 같아도 방탄차를 사느니 차라리 돈 좀 더 보태서 전용 헬리콥터를 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드는데, 아, 그만. 여기까지만.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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