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설비를 안전하게 운전하는 데에는 몇 가지 기본 철칙이 있다. 속도, 온도, 압력을 너무 급하게 바꿔서는 안 된다. 자동차를 몰면서 급출발, 급제동을 하지 말라는 말과 똑같다.
내가 일했던 기계설비는 아파트 몇 동의 부피보다 클 만큼 엄청난 크기와 위용을 자랑하던 설비였는데, 냉간 상태에서 정상온도까지 설비출력을 높이려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당 온도 상승률과 압력 상승률이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던 탓이었다. 정지 상태에서 정격 출력까지 다 올리려면 최소 8시간 이상이 필요해서, 회사에서 밤을 새우던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그곳은 지금도 기동 정지 때 그러고 있다.
만일 규정된 온도 상승률을 초과하여 운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내부 부품과 외부 부품의 열변형도가 달라져서 설비에 변형이 온다. 설비 자체가 집채보다 커서, 이 편차가 수십 mm에 달하기도 하고, 종국에는 내부 부품끼리 간섭이 생겨서 대형사고가 터진다.
압력 상승률도 마찬가지다. 대형 파이프에 물이나 증기를 기준속도 이상으로 채워가면 워터 해머링 또는 스팀 해머링이라고 하는 엄청난 충격파가 생기는데, 이게 또 기준 이상이면 파이프가 파열될 정도로 충격량이 매우 극심해진다.
속도 상승률도 마찬가진데, 모든 물체는 관성이란 게 있고 속도를 바꾼다는 건 관성의 상태를 바꾼다는 건데, 기준 이상의 속도 상승률을 조작하면 관성력이 허용응력을 초과해서 설비가 터져나가 버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위에서는 빨리 하라고 닦달대지, 설비 운영기준은 있지, 사고 나면 다 내 책임이지, 아우, 지금 생각해도 스트레스 아주 그냥 만빵이다. 누가 급한 거 모르나. 사고 나면 책임질껴? 응?
음식 이야기로 제목 풀어놓고 상관도 없는 일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몸은 매우 정밀한 생체나노기계이다. 분자생물학적 관점에서 나노세계를 관찰하면 생체와 인공구조물의 구분이 애매모호해진다. 기계적으로는 뼈와 힘줄로 구성이 되어있고 에너지의 보급과 관리에는 수많은 화학물질과 전기에너지가 사용된다. 매우 정교하고 민감한 기계장치이므로 이 기계장치를 운전(사용)하려면 매우 장시간의 전문교육과 실습을 거쳐야 하겠구만 어느 누구도 믿을만한 매뉴얼을 제공해주지도 않고 그냥 감으로 알아서 운전하고 다닌다.
나이가 들고, 몸이 예전같지 않아서 요즘 건강에 관심이 많다. 건강도서는 물론이거니와 건강 유튜브 채널도 많이 보면서 설득력이 있는 정보들만 취사선택하려고 노력 중이다. 훌륭한 분들도 많지만, 의사 중에서도 장사속 돈벌이에만 관심있고 환자 건강과 진짜 지식에는 관심없는 돌팔이도 있고, 일반인 중에서도 의사 못지않은 건강지식과 경험이 있고 이를 쉬운 말로 풀어내 주시는 분들도 있다. 돈과 권력의 힘으로 잘못되고 검증되지 않은 의학지식을 마치 진실인 양 알리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는 대부분 이권이나 돈이 개입된다. 널리고 널린 정보의 바다 중 어떤 정보를 취사 선택할지는 철저히 독자의 영역이다. 주식투자만 하더라도 정보를 뒤져보면 특정 종목이 올라갈 이유 100가지에 내려갈 이유 100가지가 넘지 않느냔 말이지.
서두가 길고 길었다. 어쨌든, 오늘 이야기는 왜 가루로 만든 음식은 대부분 안 좋다고 하는 건지에 대한 나 스스로의 통찰을 적어보고자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건 의학적 영양학적 학위가 전혀 없는 공대 나온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풀어낸 이야기이니 공감할지 한 귀로 흘리고 말 지는 이 역시 독자님들 몫.
가루음식 및 가루로 만든 음식에는 뭐가 있나.
▷ 대표적인 게 밀가루 및 설탕으로 만든 음식 : 빵, 케이크, 과자, 쿠키, 도너츠, 국수, 파스타, 라면 등
▷ 쌀가루 및 설탕으로 만든 음식 : 떡(떡국,떡볶이 등 다 포함), 약과, 한과 등
▷ 고기가루로 만든 음식 : 소시지, 햄버거(패티), 기타 분쇄육을 활용한 요리 등
▷ 가루 그 자체인 음식 : 프로틴파우더, 미숫가루, 콩국 등
▷ 설탕 가루로 만든 그냥 설탕물 : 콜라, 환타, 사이다, 스포츠음료, 에너지드링크 등
온갖 방부제, 착색제, 감미료 등 과연 먹어도 괜찮은 것인지 정말 의문인 공장식 가공식품으로 제조된 제품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손수 만든 가루음식도 마찬가지로 좋을 게 없다.
이유는, 서두를 꼼꼼히 읽으신 분들이라면 짐작하시겠지만, 가루음식은 몸속 혈당치를 너무 급하게 올리기 때문이다.
혈당이란 뭔가? 피 속에 포함된 당 수치이다. 피 속에 영양분이 있어야 온몸에 골고루 나눠주기도 하고, 영양분을 다 배달하고 남으면 몸속 여기저기 저장하기도 한다. 혈당은 너무 높아도, 낮아도 좋지 못한데 그렇다고 하루종일 조금씩 조금씩 먹기만 할 수는 없으므로 식후 혈당치가 올랐다가 공복에 내려다가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혈당치가 너무 급하게 솟구치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면 몸이라는 초정밀 기계화학공장이 급발진 급제동의 반복으로 고장이 나서 퍼지는 게 당뇨병 고혈압 등 각종 현대병이다.
어쩌다 한 두 번은 괜찮다. 그 정도는 견딘다. 내가 운전하던 저 거대한 덩치의 기계장치도 몇 번의 스팀 해머링으로 파이프가 폭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기간 해머링이 계속되면 전문용어로 "피로 파괴"란 게 한계를 넘어서 이전에는 손상되지 않던 약한 충격에도 급기야 터지고 말 날이 온다. 사람 신체도 마찬가지. 젊고 쌩쌩할 때는 장기들의 기능도 좋아서 혈당치가 급하게 올라가도 몸 안에 이상한 이물질이 다량으로 들어와도 비상 장치가 잘 작동해서 건강에 이상이 없다가, 어느 순간 "아, 이제는 못하겠어~"하고 퍼지면 그게 병이 되는거다.
가루음식 또는 가루로 다시 만든 음식은 이미 자연재료가 매우 잘게 분쇄되어 있다. 대충 씹어 삼켜도 소화기관 안에서 분해흡수가 빠를 수밖에 없으니 자연 그대로의 덩어리 음식에 비해 소화흡수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빠르다. 혈당치가 천천히 올라야 간이고 췌장이고 인슐린 등의 혈당을 관리하는 호르몬을 적절하게 분배할 텐데 규정된 용량을 초과하는 양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또 갑자기 뚝 떨어졌다 반복해 버리면 이걸 관리하는 장기들이 피곤해질 수밖에.
영양학자들이나 소화기관에 정통한 의사들이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건강식은 "가공을 많이 거치지 않은 자연식"이다. 그러한 식사방법은 원 재료가 무엇이든 소화가 더디고 혈당치를 급격하게 올리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비단, 가루음식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아주 농축해서 만든 것이라면 어김없이 부작용이 있다. 원래 사람은 농축된 무언가를 먹게 설계된 생체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농축된 무언가를 먹게되면 신체의 항상성으로 적절한 농도를 되찾기 위해 신체가 무진장 고생할 수밖에 없다. 몸에 좋자고 먹은 농축식품이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다. 농축된 무언가는 통상 XX영양제, XX엑기스 등 고급진 이름으로 잘 포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