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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pr 25. 2022

골프 유튜브 방송에 마음이 불편한 이유

골프도 언어 순화가 필요하다

 나는 파키스탄에서 처음 골프장이란 곳을 방문해 본 골프초보 골린이다.


 이리 쳐봐도 안되고 저리 쳐봐도 안 되면 다양한 유튜브 골프 강의를 찾아보는 편이다. 전문 강사가 친절하게 강의료도 받지 않고 공짜 강의를 풀어주는 세상이 참 풍요롭게 느껴지고 프로강사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런데 강의를 보다 보면 채 절반을 보기도 전에 마음이 무척 불편해진다.

 분명 한국인 골프강사 채널을 열었는데, 들리는 말은 조사만 빼고 모두 영어다. 예를 들면 이런 식.


 "먼저 어드레스를 할 때는 본인이 편한 스탠스를 찾으셔야 해요. 그립은 이렇게 잡으시고요, 웨깅을 해서 긴장을 푸세요. 테이크 어웨이 시 숄더트라이앵글로 유지하시고 백스윙 톱 위치에 가까이 오면 코킹힌징을 적절히 써서 써클을 크게 만드세요. 다운스윙 시 바디웨이트를 적절히 이동하시고 임팩트 순간에도 시선을 놓치지 마세요. 피니시에서 밸런스를 잃지 말고 오른 다리를 돌려주세요."


 하아. 뭔 말이야 대체.


 전문 용어가 있으니 골프초보는 당연히 경기 규칙도 배워야 하고 골프에 관련된 용어도 배워야 함에는 이견이 없다. 아니, 그런데 저렇게 과도하게 영어 떡칠을 해서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홀인원"을 "한 번에 넣기"로 바꿔 부르자고 떼쓰는 건 아니다. "버디"도 "버디" 용어로 살려 불러야 그 맛이 나는 게 골프인 줄 나도 안다. 그런데, 골프 용어는 그 정도가 모든 스포츠 통틀어 언어 사대주의가 가장 심한 스포츠인 것 같다.


 한때 일본어로 떡칠된 당구용어를 순화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꽤나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문화적 관성력 때문에 적어도 완전히 대체되지는 못했지만, "맛세이"와 "찍어치기"를 부르는 비중이 비슷해지고, "제각돌리기", "대회전" 같은 기술들은 되려 한글 순화 표현을 더 많이 쓰고 더 잘 와닿는다.


 그런데, 골프 용어는 이런 시도를 해 보자는 움직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내가 초보라서 모르는 걸 수도 있다.)


 "보그병신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일일이 다시 적기 힘드니 나무위키 백과의 힘을 잠시 빌리자. 백과에는 단순히 "보그체"라고 소개되어있지만, 대중들 사이에는 "보그병신체"로 잘 알려져 있다.

한자어를 가능한 한 배제하고 그 자리를 영어나 프랑스어, 때로는 이탈리아어 등의 외국어 단어로 대체하며 문장 구조를 수동형 문장으로 바꾼, 허세를 부추기는 무의미한 만연체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보그체만의 특징이다. 쉽게 말해 똥폼, 허세, 있어 보이는 척의 집합형 문체. 거기에 잡지 내에 등장하는 모든 인터뷰는 90년대 외화 더빙에서나 나올 법한 손발이 오그라드는 문체로 편집된 뒤 기사 사이사이에 삽입된다. 이 문체는 패션산업 종사자들 외에 신문기사 및 TV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많이 모방되기도 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7147774


보그병신체. 정말 저렇게 써야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걸까?


 골프방송은 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받는 느낌은 충분히 보그병신체스럽다. 이미 업계에 표준으로 쓰이는 용어니 골프 프로강사 한 분이 바꿀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무료로 강의를 공개해주신 그분들 노고에도 충분히 감사드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불편한 감정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나 역시 기존 문화에 순응하고 적응해서 저런 보그병신체스러운 골프 용어를 자연스레 받아들인다면, 그럼 누가 이의를 제기하려나.


 불편하거나, 불합리한 것에 스스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라 믿기 때문에 오늘 이야기를 적는다.


 "먼저 어드레스를 할 때는 본인이 편한 스탠스를 찾으셔야 해요. 그립은 이렇게 잡으시고요, 웨깅을 해서 긴장을 푸세요. 테이크 어웨이 시 숄더트라이앵글로 유지하시고 백스윙 톱 위치에 가까이 오면 코킹힌징을 적절히 써서 써클을 크게 만드세요. 다운스윙 시 바디웨이트를 적절히 이동하시고 임팩트 순간에도 시선을 놓치지 마세요. 피니시에서 밸런스를 잃지 말고 오른 다리를 돌려주세요."


 다시 알아듣기 쉽게 바꿔보자.


 "먼저 준비자세를 잡을 때는 본인이 편한 발 너비를 찾으셔야 해요. 손잡이는 이렇게 잡으시고요, 가볍게 흔들며 긴장을 푸세요. 골프채를 살짝 빼는 첫 자세는 어깨와 팔을 삼각형으로 유지하시고, 채가 완전히 최상단에 위치하게 되면 손목을 적절히 꺾어서 채의 회전반경이 최대가 되도록 만드세요. 채를 내려칠 때 몸의 무게중심을 적절히 이동하시고, 공을 치는 순간에도 시선을 놓치지 마세요. 완료 동작시에는 균형감을 잃지 마시고 오른 다리를 돌려주세요."


 이상한가? 너무 북한말스럽나? 나는 이게 좋은데.


 하나만 더.


 골프 용어를 공부하면서 잘못 친 공을 주변 사람들한테 경고할 때 "포어~"라고 해야지 "볼~"이라고 하면 잘 못쓰는 말이라고 친절히 일러주는 블로그 글이 있더라. 물론, 골프장에는 어느 나라 국적의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국제 골프대회 시 등에서 국제룰, 표준용어를 따라야 하는 것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그런데, 한국인만 있는 한국 골프장에서 꼭 "포어~"라고 외칠 필요가 있을까? 그냥 "공~" 하고 외치면 결례일까?


 어쨌든, 골프 용어는 순화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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