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나를 위한 공부다
파이잘 모스크에 다녀온지 석 달이 넘었다.
세계적 관광지 중 하나인데, 다녀온 방문기를 어떻게든 써야지 써야지 써야지 마음만 먹다가 드디어 어제 썼다. 100% 만족스러운 매끈한 느낌은 아니지만(졸필이라) 밀린 숙제 해치운 기분이다.
https://brunch.co.kr/@ragony/27
"저 파키스탄 사는데, 관광지 다녀왔어요. 사진 찍어왔는데 보세요."
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수준 있는 브런치인데.
나는 글 쓰는 방식이 일필휘지가 잘 안 되는 사람이다. 머릿속에 구상하고, 기승전결 스토리텔링 설계 후 맛깔난 문체로 다듬어 쓰면 좋겠지만, 그건 전문작가 영역이라고 미뤄두고(귀찮으니까...) 일단 닥치는 대로 화젯거리를 펼쳐본다. 그래 놓고 이 말 했다가 저 말 했다가 다 펼쳐 써놓고 다시 조립을 시작한다.(사실 그래서 이어지는 문맥이 매끄럽지 않은 글이 많은 이유다..... 그렇다고 다시 쓰려니 귀찮다...ㅋㅋㅋ)
어떤 날은 참 수월하게 글이 잘 써지는 날이 있는데, 보통 그런 날은 하루 종일 그 문제를 골똘히 생각했거나, 그 일을 겪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파이잘 모스크는 다녀온지 벌써 100일이 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는데 디테일한 묘사의 글이 가능하겠나. 안 된다.
반쯤 사라져버린 기억을 다시 호출하는 가장 편한 방법은 아무래도 사진 꺼내기. 모스크 방문 시점부터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사진을 찍어놔서 쓸만한 사진들이 꽤나 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살을 붙여가기.
파이잘 모스크는 유명한 곳이라 이미 인터넷에 정보가 넘치고 넘치는데. 나는 뭘 쓴담. 괜찮다. 내가 파이잘 모스크 조사서를 써서 제출하는 것도 아니고, 다녀와서 보고 겪고 느낀 점만 쓰면 되지. 그래도 뭔가 말 보따리를 꺼내려니, 파이잘 모스크가 뭐 하는 곳이고 언제 지었고 왜 이름이 파이잘인지 정도는 알아야 될 게 아닌가. 이제껏 막연히 궁금해하기만 하다가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아본다.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안내표지판을 찍어온 게 보인다. 외국에 살긴 하지만 여전히 영어는 직독직해가 어렵다. 사전 찾아가며 한참을 번역해야 알아먹는 실력인지라, 사실 방문하던 그날도 안내표지판에 적힌 세부 주의사항이 뭔지도 모르고 돌아댕겼다. 하지만 안내표지판을 브런치에 공개하려고 보니, 안내표지판에 적힌 의미 정도는 설명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글을 쓰면서 다시 하게 된다. 그리고 안내표지판 문구를 하나하나 번역을 하니, 이슬람 종교적 배경과 관련 용어들도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파이잘 모스크가 내가 사는 숙소랑 가까웠는데. 얼마나 가까웠더라? 이제서야 지도를 열어서 거리를 재어 본다. 얼마나 가까운지 글로 남기고 싶었으니까. 4km가 조금 안 된다. 글쓰기 전에는 굳이 지도를 열어서 거리를 재어 볼 이유가 없는것 뿐이다.
"강의하는 아이들"이라는 프랜차이즈 학원이 있다. 가 본 적은 없지만 나는 이 학원 이름이 참 마음에 든다.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려면 남을 가르쳐보라는 말이 있다. 아는 것 같지만 남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개념은 내가 아는 게 아니다.
"파이잘 모스크 방문기"는 누구 앞에서 강의하고자 만든 글이 아니지만, 남들에게 읽히기 위해 작성한 글이고, 이곳을 방문해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도움과 영감을 드리고자 작성한 글이다. 그런데 내가 모르면 쓸 말이 없지 않은가. 아무도 안 시켰는데 갑자기 이슬람 종교 공부를 하게 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글쓰기의 즐거움을 요새 조금씩 되찾고 있다. 잘 쓰던 못 쓰던 그날 글 한편을 완성하고 나면 그래도 뭔가 한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도 든다. 그리고 글을 쓰기 전보다 확실히 지식이 늘어간다. 막연했던 기억도 머리속 창고 안에서 정갈하게 잘 정리되는 기분은 덤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읽히는 글쓰기를 추천하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그냥 글쓰기의 순기능이 아니라 "브런치" 글쓰기의 순기능인 이유이다. "브런치" 글은 독자들에게 읽히라고 쓰는 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