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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y 11. 2023

2023년 5월 - 파키스탄은 내전 분위기

그저 무사히 넘어가기를...

 2023년 5월 10일 현재. 파키스탄 전국이 난리다.


 대부분의 학교는 임시휴교령이 내렸고, 대부분의 도심지 회사는 긴급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주요 도로는 이미 폐쇄된 곳이 많고 어떤 곳은 불시에 시위대에 점령되기도 했다. 특정 도시에 국한된 상황이 아니다. 전국이 이렇다...


 사건의 발단은 2023년 5월 9일, 어제 오후에 시작되었다. 임란 칸 전 총리가 어제 오후 법원에 출석하였다가 무장한 보안부대에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파키스탄은 의회 민주주의 국가로, 대통령이 상징적인 국가원수이긴 하지만 총리가 실질적인 통수권력을 가지는 정치구조의 나라이다. 임란 칸은 2018년 파키스탄 군부의 지원으로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되었지만, 2022년 4월, 경제난 대응에 실패했다는 이유 등으로 의회에서 불신임 투표가 진행되어 탄핵당했다. 이후 파키스탄 무슬림연맹(PML-N) 총재이자 전 펀자브 주(州) 총리였던 셰바즈 샤리프가 후임 총리로 선출되어 현재까지 정국을 운영 중에 있으나, 여전히 국민들은 여당 야당 갈라져 민심 통합을 못 이루고 있으며 특히 젊은 층에서 임란 칸을 지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다.


 현 여당은 야당의 구심점인 임란 칸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고, 그걸 아는 임란 칸 지지층은 이번 임란 칸의 체포가 합법적인 것이 아닌, 정부와 여당이 만든 공작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https://www.fnnews.com/news/202305100704120086


 그리고, 그 즉시 전국적인 반발시위가 일어났다. 당연히 합법 평화시위가 될 리가 없다. 타이어를 태우고 곤봉과 최루탄이 난무하고 피가 튀는 유혈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졌고 오늘 하루에만 최소 47명 사망(PTI 추산)에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아니, 하루에 시민 사망자가 47명???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위하다 시민 1명만 죽어도 난리가 날 텐데???



https://newsis.com/view/?id=NISX20230510_0002296824&cID=10101&pID=10100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주요 도로도 즉시 통제 또는 차단되고 있다. 도심지로 대규모 시위대가 모일 것을 우려해서 정부에서 미리 손을 쓰는 것이다. 어제 이슬라마바드 출장을 갔다 복귀하던 회사 직원은 주요 교통로가 통제당해서 오던 길을 되돌아간 후 우회도로로 한참을 둘러왔다고 보고한다. 주요 도심 여기저기 산발적 시위로 오도 가도 못한 사람들이 길바닥에 그대로 갇혀 있기 일쑤라고 한다.


 수장을 예고도 없이 잡아가둔 것에 단단히 화가 난 제1야당 PTI(Pakistan Tehreek-e-Insaf, 파키스탄 정의운동)는 국민들에게 전국적 파업의 동참과 시위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선전포고만 없는 거지 내전이랑 별 다를 바가 없다.


https://www.dawn.com/news/1751929


 

파키스탄 주재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연락망을 통해 각종 경고문이 속속 전달된다.


[플라잉닥터스 긴급 보안사항 경고문 일부 발췌(2023.05.10. 이메일)]

(전략)~당국은 전국적으로 보안 배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대중 집회를 억제하고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습니다. 현지 언론은 이슬라마바드와 라호르와 같은 일부 도시에서도 소셜 미디어 및 메시징 플랫폼에 대한 액세스가 제한된다고 합니다. 보안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 물대포를 사용했으며, 주로 방화, 파괴 행위 또는 군사 지역을 대상으로 한 출입을 방지하거나 통제했습니다. PTI는 수십 명이 부상을 입거나 구금에 직면한 가운데 적어도 네 명의 조직원이 경찰의 행동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합니다. 운동가들은 보안 제한을 무시하고 대규모 체포와 보안 요원들과의 언쟁을 유발하며 추가 시위를 벌일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앞으로 광범위한 폭력 사태가 발생할 경우 비즈니스 운영 및 출장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습니다. ~(후략)


 도로 통제, 인터넷 서비스 중단, PTI 집결지 전력서비스 차단 등 정부는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써서 시위 억제에 힘쓰는 모양이다. 어제 오후부터 원래 늦던 인터넷이 지독히 늦고 갑자기 유튜브가 전혀 안 된다 싶더니만 정부가 손을 쓴 모양이다. 시위대 선동용 개인 방송 플랫폼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리라. 도심지 시위 집결지에는 인터넷뿐만 아니라 무선통신망 자체를 차단하는 일도 잦다.


 오늘 밤에 재) 파키스탄 한인회 단톡방에 공도에서 시위대를 맞닥뜨린 어느 학부모의 후일담이 올라왔다. 딸아이의 중요한 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해서 시험을 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예고 없이 시위대를 만나 평소 30분 거리의 길 위에 5시간이나 공포와 함께 갇혀있었는데, 다급한 마음에 영사콜센터로 전화를 해도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뿐, 한국 대사관으로부터는 신변 보호에 관한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해 너무나 무서웠고 한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서운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시위대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니 당장 구해달라는 전화가 아닌, "이러이러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위험한 복판에 있다. 위험에 처한 한국인들을 최소 관리대상자 지정을 하고 안전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지속적인 모니터링이라도 해 달라"는 요구였는데, 그게 바람대로 잘 안 된 모양이다. 단톡방에서는 평상시 대사관의 미흡한 태도를 성토하는 답글들이 꽤나 오래 이어졌다.


 대사관이 한정된 소수의 인력으로 수백 수천 명이 되는 교민들에게 개별 서비스를 일일이 제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평상시 비상콜센터를 잘 가동하고 안내 및 예약시스템을 교민들이 납득가능한 수준으로 운영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교민들이 분노하고 있지 않을 텐데 나도 교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쨌든 살기 척박한 나라 파키스탄에선 가급적 문제가 되는 곳엔 가까이 가지 말고 최대한 집콕하며 안전하게 살아야겠다.


 글을 쓰는 중 이제 막 올라온 따끈한 속보.


5월 10일 수요일, 파키스탄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악화되고 있는 법과 질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이슬라마바드, 펀자브, 카이버 파크툰크와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하기 기사 부분 발췌 번역)


https://www.dawn.com/news/1752059/army-to-be-deployed-in-punjab-to-restore-law-and-order


 아니, 무슨 계엄령도 선포 안 하고 군대부터 끌고 와???


 왜 군대가 시민들하고 대치하는 건데.....? 갑자기 한국의 과거 광주사태 파키스탄 판이 재현될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정치가 이렇게 불안한 이 와중에... 4월 파키스탄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6.4%, 식료품 물가는 무려 48.1%나 상승했다는 뉴스가 있다. 루피 가치는 여전히 날마다 떨어지고 있고 물가는 미친 듯이 오르고 있고 정부 보유 달러는 채 한 달 분도 남지 않았는데 IMF 협상은 더디고 좋은 뉴스는 단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https://www.reuters.com/markets/asia/pakistan-inflation-hits-record-364-april-highest-region-2023-05-02/


 직원들은 생활고를 호소하며 제발 급여 좀 올려달라며 불쑥불쑥 나를 찾아와서 읍소하는데, 내가 급여 올려 줄 권한이 있었으면 내 급여부터 올렸겠다. 안 되는 거 알면서 마음만 무겁게 자꾸 왜 그래...


 정치가 안정되고, 외국의 투자가 활성화되어 투자의 성과가 경제력으로 연결이 되고 그래서 경제가 또 성장하고, 그 경제성과의 과실을 또 재투자하면서 국내 경제가 커 갈 텐데, 내전을 방불케 하는 정치 불안정에 미친 듯이 오르는 물가, 고갈되는 외화. 여기에 잦은 빈도의 테러 및 외국인 특정 범죄까지.


 나 원래 집돌이이지만 더더욱 집돌이가 되어가는 이유다. 당분간 꼼짝도 하지 말고 나가지 말아야지.


 어서 현 정치상황과 경제상황이 좀 안정되길 바라본다.


 인샬라. 부디 이 나라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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