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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Jul 15. 2023

실업급여 받아서 해외여행 가면 안 되나?

뭐가 문제지???

 한동안 바빠서 국내 문제에 눈 닫고 귀 막고 살았는데 요즘 핫한 키워드 중 하나가 시럽급여(시럽처럼 달콤한 급여라는 의미가 내포된 "실업급여"의 언어유희)다.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가 “장기간 근무하고 갑자기 실업당한 남자분들의 경우 어두운 표정으로 (노동청에) 오는데 여자분들과 계약기간이 만료된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해외여행을 간다.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지 옷을 사며 즐기고 있다”며 일부 수급자를 비판했고, 빨간당 모 의원께서 이에 동조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며 편이 갈라졌다.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307122218001


 노동청은 "수급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한 편으로는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실업급여란 것이 비자발적 실업 후 재취업까지의 경제적 어려움을 지원하고 구직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한 배경을 놓고 보면 실업급여는 생계유지 및 구직활동에만 써야 맞는 것 같기도 한데, 가만가만 또 생각하면 실업급여 받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가난 코스프레를 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단, 팩트 체크.

 실업급여란 뭔가? 고용보험 가입 근로자가 비자발적 사유로 이직하여 재취업활동을 하는 기간에 받는 보험금 성격의 돈이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보험금. 내(보험가입자)가 낸 돈 내(보험가입자)가 받는 돈이다. 내가 내 돈 내고 받는 보험금에 왜 자꾸 내 돈 주인이 아닌 사람들이 감놔라 배놔라지? 수령보험금을 어떻게 썼는지 영수증 붙여서 정산하는 제도라도 있나? 없다. 보험금 받으면 내 돈이니까, 여행을 가든, 폰을 바꾸든, 대출금 갚는데 쓰든 아무 제약이 없다. 단,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 동안에 구직활동을 증빙하고 고용센터에 출석하여 신고해야 하는 수급자격을 스스로 증빙해야 하는 절차는 있다.


[고용보험 홈페이지 부분 발췌]
수급자는 매 1~4주마다(최초 실업인정은 실업신고일로부터 2주 후) 고용센터에 출석하여 실업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재취업활동을 한 사실을 신고하고, 실업인정을 받아야 구직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http://magazine.bizforms.co.kr/view.asp?number=7947


 그러니까, 고용센터 출석 증빙에 지장이 없다면 단기간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아무 문제없다는 소리. 샤넬 선글라스를 사도 되는지 옷을 사도 되는지 안 되는지는 검증할 가치조차 없으니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제도를 합리적으로 손보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럼, 현 제도가 무엇이 문제인지 합리적으로 진단하고 설명해서 이해와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현 제도의 문제 진단은 쏙 빠지고 "여성"과 "청년"을 콕 꼬집으며 자기돈도 아닌걸 보험금으로 "해외여행"과 "명품소비"에 쓴다며 공청회에서 비판을 가했다. 에그, 참... 그러니까 욕 처먹지.


 나는 고용된 직장인이다.

 직장인은 해외여행 가기 힘들다.

 돈도 돈이지만, 해외여행 갈 시간이 없다. 정기휴가가 길게 주어지는 일부 기업도 있지만, 이 때는 대부분 공장 예방정비 기간에 문 닫고 하절기에 1주일 집중해서 쉬는 기간이라 최성수기, 공항이 미어터지는 시기다. 널럴하게 비수기 때 여유있게 하는 여행은 직장인에게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다.


 작년에 해외파견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중 하나인 전지휴가를 이용해서 유럽에 1주일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여행 중 많은 한국인 배낭여행객을 만났는데, 그중 많은 수가 전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을 찾거나 합격한 상태에서 중간의 공백기에 자기에게 주는 선물 겸 재충전 시간으로 최소 경비로 여행하는 젊은 친구들이었다. 안 물어봤지만 그러고 보니 이 친구들, 실업급여를 받으며 해외여행을 왔던 거네. 그런데, 그게 왜 문제인건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실업급여는 정부가 세금으로 그냥 퍼 주는 돈이 아니다. 고용보험기금이 고갈되면 정부지원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확인하진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수급자가 낸 돈으로 수급자가 받는 돈이다. 그러니까, 내 돈 아닌 거에 제발 참견 좀 하지 마시라. 나는 이게 불편할 뿐이다.


 상반기에 한전 및 에너지공기업들이 모두 임직원 급여를 반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시라. "급여삭감"이 아니고, "급여반납"이다. 아니, 이미 준 급여가 회사 돈? 이미 지급된 급여는 이미 "개인 돈"이다. 그런데, 그걸 개인동의를 받지도 않고 왜 회사가 반납하겠다는 건데? (정책 발표 당시, 임직원 개인들의 급여반납동의서가 징구된 적이 없었다. 물론 발표 이후에 동의서 징구를 하겠지만. 적어도 법적으론 "자발적"인 반납 모양새를 갖추긴 할 거다.) 심지어 에너지 공기업들의 경영상태가 어려워진 건 공기업들이 경영을 개판으로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수입 에너지 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엄청나게 올라버렸는데 정부가 물가인상 억제를 빌미로 공공에너지가격을 꽁꽁 묶어버려 필연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어서 그런 거다. 그런데, 왜 에너지공기업 임직원 급여를 반납해서 "경영정상화"를 해야 하는 건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그럼, 같은 논리로 철광석 원자재 금액이 올라 철강재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데 물가가 오르니 철강재 가격은 묶어놓고, 회사는 망하면 안 되니 철강회사 임직원들 급여를 "반납"해야 하나? 툭하면 시장경제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조금만 국민들에게 욕먹을 상황이 생기면 힘으로 공기업들 눌러놓고 공기업 임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초보 수준의 정치꾼들을 보면 정말 환멸이 난다.


 이번 사달이 난 자리는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

 공청회란 무엇인가. 영어로 말하면 Public Hearing. 공개적인 자리에서 의견을 듣는 자리다. 술 마시며 감정적으로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여성"과 "청년"을 지칭하며 갈라치기를 시전하고 자기 돈도 아닌것에 이렇다 저렇다 훈수두며 남의 집 제사상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하나만 더 물어보자.

 공무원 급여는 100% 국민세금으로 지급되니, 공적인 업무에만 써야 되나? 공무원은 해외여행 가면 안 되나? 너무 비약이 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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