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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Jul 26. 2023

교권 추락 배경에 대한 개인적 견해

 초임교사 사망사건으로 그간 참아왔던 교직단체의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대중의 공감을 얻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할 정도면, 문제가 심각해도 많이 심각하다는 뜻이겠지.


https://www.yna.co.kr/view/AKR20230724150300004?input=1195m


https://newsis.com/view/?id=NISX20230725_0002390319&cID=10301&pID=10300


 나 역시 교직에 종사하는 다수의 친척을 둔 교육자 집안의 사람으로서, 해당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교육부, 교육청의 정책은 교사의 애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인권신장에 보다 신경을 써왔고 학생은 학생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자신들의 권리가 높아진 걸 자각한 순간부터 제왕적 갑질을 "선생님"께 해도 되는 당연한 권리가 있는 걸로 착각하는 양 행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이번 초임교사 사망사건이 이렇게 주목을 받는 이유는, 비록 그들이 교직에 직접 종사하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주변에서 전해 듣거나 학부모로서 간접체험하는 경험들을 비추어 볼 때 충분히 현직교사의 애로와 아픔에 대해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직 영양교사가 쓴, 일반교사보다 더 낮은 곳에서 온갖 민원을 받아내고 있는 글이 무척 공감이 되어 소개한다. 이번 초임교사 사망사건 이전부터 급식민원을 견디지 못한 학교 영양교사의 자살은 지난 6년간 알려진 사건만 4건에 달한다고 한다. 교직단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직원 숫자가 적고 담임교사들보다 더 교사로서의 사회적 권위가 없는 분들이기에 이들에게 가해지는 민원이라는 이름의 폭언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악성 민원에 의한 교사의 자살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https://brunch.co.kr/@dudnwl/367


 다수의 언론과 사회비평가들이 이번 사건의 배경에 추락한 교권과 학부모의 악성민원, 통제되지 않는 학생들의 현실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보건교사가 배가 아파하는 학생에게 "혹시 생리하니?"라고 물었다고 그 학부모가 성적수치심을 유발했다며 민원을 넣고, 학생에게 폭행당한 교사에게 "당신이 아이를 차별하고 혼내서" 그런 거라며 교육청을 민원을 넣겠다는 학부모가 있다는 등의 갖가지 뉴스를 접하며, 얼마나 학교가 만만하고 교사를 우습게 보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려진 몇 예가 저럴지언대, 보도되지 않는 소소한 예를 다 찾는다면 끝도 한도 없을게다. 초등교사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교권침해" 경험이 무려 99.2%. 예상했다시피 요인 1위는 "학부모 악성 민원".


https://newsis.com/view/?id=NISX20230725_0002389207&cID=10201&pID=10200


 여기까진 내가 말 안 해도 대부분의 일반인이 어렴풋이나마 인지하고 알고 있는 내용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교권이 이렇게 바닥으로, 아니 저 지하층으로 추락해 버렸나.




 19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서슬 시퍼랬던 교권과 교사의 권위를 똑똑히 기억하는 사람. 적어도 그 당시에는 교사라면 절대권력에 학생과 학부모는 절대복종해야 하는 존재였다.


 세상이 보다 투명해지고 민주적으로 바뀌면서, 짓밟히고 억눌린 학생의 인권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 공감하고 동조하면서 학생인권을 강화하는 정책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렇게 학생인권교육도 하고, "학생인권조례" 등도 만들고 홍보하며 "학생도 한 명의 사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와 사상이 실현되는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졌.... 졌...나?


 애석하게도 아니다.... 그 결과가 요즘의 현실이니까.


 물론 당시의 정책이 잘못된 건 아니다. 기본 명제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다만, 간과했던 것이 학생인권만 강조하면 교사인권이 어떻게 될지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던 것뿐이다. 어차피 저 정책을 처음 들고 나올 땐 교권은 하늘을 찌를 당시였고 학생의 인권은 없다시피 했으니 그걸 고려할 필요도 없었던 걸 모르지도 않는다.


 자자.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왜 그 당시 학생인권신장국민적 공감을 얻고 정책화되어 시행되었을까 하는 배경이다.


 나이 지긋하신 중장년층 이상에선 기억하고 공감하실 거다. 교권이 시퍼랬던 시절, 정말 학교에선 말도 안 되는 불합리가 많이 벌어졌지만 어느 누구도 그걸 시정해 주거나 교직사회 내부에서 자정하지 않았다. 톡 꺼내기 불편한 단어지만, 교직사회 역시 커다란 인간사회 중 하나이며, 그 사회 구성원 전체가 다 정상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당연히 아니다. 비리검찰, 비리경찰, 비리공무원이 있듯이 당연히 비리교사, 인성부적격 교사 등 교사상에 못 미치는 교직사회의 불량구성원이 여기저기 "적지 않은 비율"로 있었단 말이다. 학생 인권이 높은 지금도 툭하면 일부 교사가 학생을 성추행하다 걸린 일들이 기사화되는 세상인데, 그 당시 교사에 의한 성추행이 정말 없어서 우리가 기억하는 사건이 없는 걸까? 그 당시 촌지 안 줬다고 갈굼 받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나? 학생들의 잘잘못을 떠나서 그냥 개인적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으로 아이들을 "활용"하는 폭력교사는 또 얼마나 많았나? 약자를 갈구던 "더 글로리" 불량교사의 모습이 왜 나는 익숙해 보였던 걸까.


드라마 "더 글로리" 중 문동은 담임교사 부분 발췌


 그것 말고도 지극히 개인적 경험 몇 개를 떠올리면 초등시절 수업시간에 "전도활동"을 펼치며 주말에 "교회출석"을 강제하던 분도 계셨고(교회 안 간 아이들 일일이 호명하며 면박 줌), 훈육을 목적으로 싸운 아이들을 세워놓고 "서로 뺨때리기"를 시킨 빌런도 있었다(어린 내 눈으로 봐도 그건 좀 이상했었다.). 아, 그렇지. 학급위원들의 학부모들에겐 당연한 의무도 부여되었는데 각종 학교행사에 반강제로 찬조금을 내야 했고 학교 체육대회나 소풍이 있게 되면 학부모들끼리 당번을 정해가며 의무적으로 선생님 도시락을 싸 가야 했다. 어디 그뿐이랴. 내가 국민학교 다닐 당시 작은누나는 히키코모리 성향인 나와는 다르게 요즘말로 학교의 "인싸"였는데, 어느 날 학급위원 선거에 나가 똑 떨어지고 울고불고하며 집에 왔다. 학생들이 투표를 했는데, 담임선생님 혼자 "비밀개표"를 하더니 누가 봐도 인싸인 작은누나는 똑 떨어지고 부잣집 학생을 콕 집어 당선되었다고 발표를 했더랬다. 아무리 80년대라지만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부정개표라니 진짜. "미친개" 별명이 있던 학교에선 오늘이 누가 희생양이 되지 않을지 모두 벌벌 떨며 학교를 다녀야 했고, 생활지도가 있는 날 미처 머리를 깎고 오지 못한 아이는 정문에서 바리깡으로 한쪽 머리를 밀려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시절이었다. 교정 내에서 교사가 피는 담배는 당연한 시절이었고 간이 큰 일부 교사는 교실에서 담배를 펴도 아이들은 할 말이 없었다. 스승의 날에는 당연히 정성 들여 선물을 준비해야 했고, 본인의 기대치보다 선물이 적게 들어왔을 때 노골적으로 불편해하는 티를 내는 "일부" 교사가 있었다.


 지어낸 거 아니라 진짜 경험이니, 적어도 그 당시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닌 사람은 당연히 내 기억과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거고 내 또래 사람에게라면 이게 나만 가진 그리 유별난 기억이 아닐 거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언제나 존경받아야 할 존재이며,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은 거고 절대복종 절대존경할 것을 강요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그건 말이지, "참된 스승님"께만 해당되는 말이지 "교사 딱지를 단 빌런"들에겐 그러면 안 되는 거란걸 그땐 몰랐을 뿐이다.


 학생인권신장에 대한 목소리가 힘을 싣게 된 건 주어를 "학생"에 국한하면 "학생"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다는 자각에서 그런 건데, 이걸 주어를 바꿔보면 누가 학생을 비인간적으로 대했단 말인가.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그게 "학교"이며, 더 정확히는 "교사 흉내를 내던 빌런"이었던 거잖아.


 불편하지만 이런 얘기를 꺼낸 건,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 당시에는 "불량교사"를 솎아내기 위한 어떠한 장치도 없었다. 학부모가 정말 큰 마음먹고 정치인과 언론을 동원해 가며 크게 싸울 각오를 하지 않으면 학교에 민원을 넣는 일조차 금기시되던 시절이었고, 학교는 학교대로 "교실 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선 담당교사에게 절대적 권한을 실어주고 교사 편을 들었다. 정말 말 그대로 "교사"는 "교실" 내에서 절대자였다. 그 당시, 교직사회 내부에서 "불량교사"를 솎아내는 자정 일에 보다 더 신경을 썼더라면, 애당초 처음부터 "학생인권신장"에 대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자,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교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교사를 괴롭히는 건 학부모 악성민원. 나도 아이 둘을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이긴 한데... 나 또래의 학부모들이 학교를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는 게 또 문제란 말이지. 어려서 겪어 본 불합리한 학교의 관행도 알고 있고 모든 교사가 다 참된 교사가 아니란 것도 아는, 알 거 다 아는 어른들이란 말이다. 학교와 공교육 시스템을 100% 신뢰하지 못하니 사사건건 학교를 들여다보고 조금이라도 내 아이가 불합리한 대접을 받는다 싶으면 "문제가 커지기 전에" 민원카드를 내밀어서 내 아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이 가장 앞설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가 이제 너무 나가버리니 문제가 되는 거다. 어디까지가 신뢰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적정선의 영역일까.


 "학생인권"과 "교권"은 어느 한쪽이 너무 강하면 문제가 생긴다. 이미 양쪽 다 겪어보질 않았냐고.

 이상적인 방안도 있다. 양쪽 인권을 모두 강하게 만들되, 양쪽 다 빌런을 제거해리면 된다. 선을 넘는 민원을 넣는 학부모에겐 행정권 교육권 침해로 검찰에 고발해 버리고 교권의 달콤함에 취해 빌런짓하는 교사는 자정작용을 통해 잘라버리면 된다. 그런데 교직사회의 자정기능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건 참 어려운 문제다. 최소 3단 결재와 감사를 통해 일상이 감시와 견제인 행정영역, 회사영역과는 다르게 학교의 교실은 선생님과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완벽한 격리구역 아닌가. 교사의 자질을 학생평가에 맡기면 학생갑질이 나오고, 모니터링을 하지 않으면 교사인 척 하는 빌런이 탄생해 버린다. 그렇다고 CCTV를 달아 모니터링할 수도 없고 나도 뭐가 좋은 해결책일지 모르겠다.


  권력과 권한에는 그만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각종 히어로물에 단골처럼 나오는 멘트 아닌가? "위대한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주어진다"고. 말하기 불편한 소리인 줄 알지만, 교권 추락의 배경에는 교권이 강했던 시절 그 교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던 일부 부적격자들의 잘못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게 단지 일부 부적격자만의 잘못만이 아닌 것이, 그 조직내에서 그들의 부정을 덮기만 하고 스스로 자정하려는 노력이 충분하지 못했다. 교권이 추락했다고 무작정 교권만 다시 강화한다면 우리 사회는 또다시 1980년대의 절대교권사회로 회귀할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절대존경 절대복종의 미명하에 불량교사들에게 희생될 지도 모른다.


 사회구성원의 대다수는 선량하다.

 학부모 악성 민원인도 소수이고, 불량교사도 소수일 뿐이라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그 숫자가, 사회에서 감당하지 못할 비율이 되면 여기저기서 심각한 문제가 불거진다.

 교사라는 직업은 우리 사회의 미래 구성원을 육성하며 바람직한 사회로 만들어가는 중책을 맡는 직업인데, 어떤 자리보다 선망하며 존경받는 직업이 되어야 한다. 나 때만 하더라도 교대 입시 경쟁률이 엄청 높아서 반에서 공부깨나 한다는 애들이 지원했었는데 요즘 갈수록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니 이 또한 정말 큰일이다. 훌륭한 스승이 없다면 훌륭한 제자도 있을 수가 없다. 이 참에 교사 연봉이라도 더 올려서 직업적 매력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건 또 어떨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하고 좀 더 합리적이며 아이들과 교사 모두 존중받으며 행복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상호 이해로 이루어진 중용의 묘가 필요한데, 누가 좋은 아이디어 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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