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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ug 14. 2023

"과학적으로"라는 말의 함정

오염수 방류를 마주하며 : 과학은 모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학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출 문제에 정부가 찬성하나 보다. 국민 눈치를 봐야 하니 대 놓고 찬성은 아닌데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오염수 해양방출에 반대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인가 보다.


https://www.youtube.com/shorts/ZvCyWLQtuE0


https://www.youtube.com/watch?v=aJhiD-ex0As


 언제부터 우리 정부가 이렇게나 "과학적"이었는지 모르겠네. 최고위 관료들이 짠 듯이 모두 "과학적"을 외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최첨단 선진국"이 된 것 같다. 저 짧은 답변 안에 "과학적으로"가 대체 몇 번이나 사용되었는지 과학의 ㄱ자만 들어도 귀에서 피가 나려는 것 같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얼마나 안전한지 위험한지, 정부가 주장하는 "과학적으로"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저 답변에 매우 아주 몹시 대단히 불쾌한 이유는 "과학적"인 것이 완전무결하고 절대적이라는 뜻이 전혀 아닌데 마치 그렇다는 투로 써먹는 나랏님들의 "과학적인" 태도이다.




 인간이 자연 질서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순수 과학자는 아니지만 학생 때 과학분야 교과목을 비교적 잘 했었고 공과대학을 졸업한 덕에 보통 수준보다는 과학적 상식이나 과학의 본질에 대해 조금 더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과학 이론을 공부해 보면 우리 인류는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제안하고 그것이 검증되기까지 불과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인류는 시공간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다. 지동설이 천동설을 이기고 주류 "과학"으로 인정받은 것도 1600년도 이후에 벌어진 불과 얼마 안 된 역사이다. 그 전까지는 천동설이 "과학"이었다.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전 세계 몇 사람 안 된다는 어렵디 어려운 양자역학. 물질을 양자 수준으로 세밀하게 관찰하고 지켜보면(사실, 불확정성의 원리로 지켜볼 수조차 없지만) 물질은 입자성 파동성의 이중성을 나타내며, 미시세계의 에너지는 아날로그의 연속성이 아닌 양자도약으로 단속적 단위로 표현되는 등 거시세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 현상이 왜 그런 건지 정확히 아는 사람도 없으며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통합하는 이론도 없으며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정확한 경계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분명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한 세상인데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이란 별도의 두가지 역학을 동시에 배우며 사용하고 있는 것이 21세기의 현실이다.


 현대 과학기술의 중심이 되는 전자기학도 마찬가지. 인류는 여전히 전기장이 있는 곳에 자기장이 왜 항상 세트로 발생하는지 이론적 배경을 정확히 설명하고 검증하지 못하며, (극초저온에서 발생하는 초전도 현상의 원리는 설명하는 이론이 있지만) 고온 초전도체에서 발생하는 초전도 현상의 원리를 설명하지 못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상이 발생하는 건 알겠고 그 현상을 실생활에 써먹는 것이 현대과학기술의 한계인 것이다. 그러니까, 과학은 "모른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접근해야만 한다.


과학의 사전적 정의를 다시 확인해 보자.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그러니까, 과학은 "보편적 진리 또는 법칙" 그 자체가 아니란 말이다. 그걸 찾기 위한 노력이 과학이다.




 인류가 얼마나 무지한 지 오래되지 않은 예를 더 들고 싶다.

 1900년대 초반, 퀴리 부인이 라듐 원소를 분리해 내며 인류는 방사성 원소가 뭔지 드디어 알아가기 시작했다. 충분한 연구도 없이 "자체 발광하는 신비의 물질" 라듐이 몸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급기야 이 치명적인 물질이 화장품, 치약, 연고 등에 무분별하게 사용되다 1931년이 되어서야 사용이 중지된다.


https://www.mk.co.kr/news/it/7677598


 인체에 치명적인 납증기를 대기 중 대량으로 발산시키던 납휘발유는 무려 우리나라에 1993년까지 판매되었다. 휘발유에 납을 첨가하면 엔진의 치명적인 오동작인 노킹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납휘발유가 시장에 팔릴 수 있었다. 건강에 미치는 해악을 깨닫고 판매금지를 시키기까지 무려 70년이 넘게 걸렸다.


https://www.motoy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881


 탈리도마이드 사태를 아시는가?

 1957년 독일 그뤼넨탈사에서 개발된 이 임산부용 입덧완화제는 수많은 팔다리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되었다. 신약으로 개발되었고 생쥐에게 임상시험을 충분히 거친 제품이었다. 문제는 당시에는 동물과 사람의 임상결과 차이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며 정부당국은 그 실험결과만 믿고 이 약을 안전하다고 승인해 버렸다. 그 결과 전 세계 48개 국가에서 1만 2천여 명 이상의 팔다리 기형아가 태어나고야 말았다.

탈리도마이드의 경우, 생쥐를 대상으로 한 독성 실험 결과로만 보면 대단히 안전해 보였다. 생쥐에게 체중 1kg당 5,000 mg을 먹여도 죽지 않을 정도이니, 소금의 치사량과 비교하면 1,600배를 투여해도 될 정도로 안전한 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동물 실험을 통하여 약의 부작용이 작다는 것이 확인되더라도 인간에게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훈을 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탈리도마이드 [thalidomide] (화학백과)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6485


 자, 여기서 잠깐 끊고 질문.

 저 당시 살던 사람들은 "과학적"이지 않아서 저랬나? 미신을 숭배하고 제물을 바치던 시대 이야긴가? 저 당시에도 사람들은 이미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었다. 다만, 그 당시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식의 수준이 낮았던 것뿐이다.


 무지에 의한 인류의 한계와 실수의 예는 너무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다. 2023년 8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다시 질문. 우리는 "과학적"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아나? 아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아졌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진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지식이 많은 사람은 알면 알수록 겸손해진다. 지식을 알면 알수록 질문하는 힘이 커지며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를 더 많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지식이 없는 사람은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른다.






 오염수 방류를 두고 과학계에서도 두 파로 나뉜다.

 찬성하는 쪽은 자연 방사선보다 낮은 강도를 가진 안전한 물질이니 과학적으로 방류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반대하는 쪽은 자연 방사선과 인위적 방류물을 직접 비교해선 안 되며 알프스(ALPS, 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의 약자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있는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다핵종제거설비)에서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의 해악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된 바도 알려진 바도 없으니 지금 당장 이것이 위험하다 아니다를 판단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Fgh-fdgx2M


 안전 수준까지 걸러졌다고 하는 수치도 나는 못 믿겠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직후 일본 당국은 일반 작업자의 방사선 노출 허용한도를 어느 날 갑자기 2배 올려버렸다. 아니, 모든 일본인이 어느 날 갑자기 한날 한시를 기해서 몸이 2배 튼튼해진 건가? 그런 거 아니다. 기존 허용한도를 유지하자니 합법적으로 일을 시킬 수 없으니 아무 근거도 없이 방사선 피폭일을 시킬 수 있도록 법적허용 안전한도를 그냥 올려버린 거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968406596184304&mediaCodeNo=257&OutLnkChk=Y


 방사선 허용한도가 얼마 이하면 안전하다?

 그럼 왜 누구는 땅콩을 봉지 째 다 먹어도 이상 없고 누구는 땅콩 냄새만 맡아도 호흡 곤란이 오는 건데. 안전 허용한도란 것도 "일반적인 평균치"를 대충 짐작해서 말하는 거고 그 이하의 수치에 내가 희생양이 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다. 과학적이다?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아니 제발 좀. 그게 안전하지 않다는 말이잖아.


 말이 한쪽으로 좀 새어 버렸는데 오늘 글의 핵심은 시사 키워드에서 살짝 잠잠해져 버린 일본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과연 저 정부 고관들이 "과학적으로"라는 말의 위험성에 대해 인지하고 계실까 꼬집어보려고 말을 꺼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과학"이란 보편타당한 진리 또는 법칙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란 말이다. 좀 더 쉽게 얘기하면 "나는 아직 모른다. 그래서 연구한다"가 진정한 과학이란 말이다.


 그런데 제발 좀 "과학적으로"란 말을 저런 답변에 아무렇게나 붙이지 마시라.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자료가 그렇게 말을 합니다"라고 하는 게 "절대적인 진리"란 말이 아니란 말이다. "현재 기술로 현재까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이 정도입니다"라는 뜻인 건데 왜 자꾸 "과학적이니까 무조건 믿어라 시비 걸지 마라" 그런 투로 써먹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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