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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ug 24. 2023

이불 밖은 위험하다

어딜 가도 불안한 파키스탄...

 몬순과 여름이 끝나가는 8월. 올해 8월에는 유달리 파키스탄에 이런저런 안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린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지나면 다 역사와 기록이 될 테니 이번 달에 발생한 최근 일련의 사건들 몇 개를 엮어본다.




 어제(2023년 8월 22일) 파키스탄 북서부 케이베르 파크툰크와 주 바타그람시에서 학생 6명 교사 2명을 태운 케이블카가 지상에서 274m 상공에서 운행 중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다. 케이블카를 이어주던 두 강제 케이블 중 하나가 끊어져버려 케이블카는 공중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있다가 16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특전사들이 투입되어 탑승객들을 구조하였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0823023700009?input=1195m


 지난 6일에는 파키스탄 남부 신드주 카라치에서 펀자브주 라왈핀디로 향하던 하자라 급행열차가 신드주 사르하리 기차역 인근에서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최소 30여 명이 사망하고 60여 명이 다쳤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30806_0002404091&cID=10101&pID=10100


 한편, 지난 14일에는 카라치 인근에서 중국인을 겨냥한 표적테러가 발생했다. 중국인 23명을 태우고 이동하던 차량에 폭탄과 총격이 가해졌는데, 천만 다행히 방탄차량이라 중국인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0814148600074?input=1195m


 그게 다가 아니다... 

 지난주(8월 16일)에는 흥분한 다수의 파키스탄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 가옥 80여 곳과 교회 19곳을 불태웠다.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23081789277




 원래 침대와 물아일체를 즐기는 사람이라 이불밖에 나가는 거 싫어하긴 한데, 요즘엔 좀 이것저것 정도가 좀 심한 것 같다. 원래 안 나가지만 집 밖에 나가기가 정말 불안하다.


 아주 그냥 복합적으로 불안불안하다.


1. 사회 인프라에 유지보수정비 개념이란 게 없다.

 설비 만지는 곳에서 일하는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기계덩어리란 건 관리하지 않으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조금만 방심하면 다 녹아내리고 "여기 있었던 거 다 어디갔어?"란 말이 자주 나온다. 특히 화학공정을 담당하는 설비일수록 이 경향이 점점 더 심하다.  설비의 주인이 있는 기업이 보유하고 운영하는 설비는 관리가 잘 된다. 그것만 전문적으로 하는 조직이 있고 적정한 유지정비 금액이 책정되어 적기에 관리된다.

 하지만, 공공 SOC는 좀 심각해 보인다. 한정된 국고 예산 및 지자체 예산 탓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여긴 좀 심하다. 정식 조사결과 보고서가 아직 발표되진 않았지만 이번 파키스탄 열차 탈선사고도 유지보수 불량 때문이라는 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내가 아는 파키스탄 사람들 태반이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이다. 내가 사는 곳 인근에도 한국 기업이 지어준 트롤리(소규모 케이블카)가 있는데, 지역주민들을 위해 지어주고 소유권을 지자체에 기부채납을 하고 끝냈는데, 몇 년 지나지 않고 퍼져버렸다. 트롤리를 고장 없이 쓰려면 주기적으로 기름칠도 하고 마모되는 풀리도 교체하고 작동부위는 끊임없이 유지보수를 해줘야 하는데 준공인계 이후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서 쓰는데 까지 쓰다가 지금은 방치되어 흉물이 되고 있다고. 아마, 어제 사고 난 저 케이블카 역시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파키스탄 북부 지방은 카라코람, 히말라야 산맥 자락을 끼고 있는 곳이라 북부로 갈수록 산세가 험해진다. 평지가 부족하니 산허리를 깎아 길을 낼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많은 지역이 사방공사 같은 기초안전시설이 없다. 그래서 비가 내리면 어디서 산사태가 날 지 모르며 도로에 굴러다니는 바위를 보는 것이 매우 일상이다.


 갑갑한 마음에 현실을 좀 적어보긴 했는데,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냥 욕할 수 있는 입장도 못 되긴 하다. 당장 지나다닐 도로 낼 돈도 없는데 저 넓은 구역을 어떻게 일일이 다 사방공사를 해 가며 길을 낼 수 있나. 적당히 안전은 포기하고 최소한의 기능부터 먼저 챙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트롤리를 애써 건설해서 기부채납해도 유지정비 보수비용까지 덤으로 기부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가난한 지자체 살림에 그걸 보수할 비용이 없을 거란 게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공공재는 주인이 없으며, 주인이 없으니 관리가 안 되고, 쓸 만큼 쓰다가 고장 나면 방치되는 악순환이다. 모든 건 돈이 드는데 정부는 정말 돈이 없다. 그나마 조금 있는 돈도 부정부패가 심해서 여기저기 줄줄 다 샌다고. ㅡ_ㅡ


 어쨌거나 파키스탄의 SOC는 어딜 가도 유지정비 관리상태가 대부분 열악한 것이 현실이니 사회 인프라를 너무 신뢰하지 말고 내 몸 내가 요령껏 잘 건사해야 한다.


2. 무슬림 국가 중 인구 킹, 무슬림의 나라 파키스탄

 파키스탄은  국민 중 96% 이상이 무슬림인 이 나라이며, 무슬림 국가 중에서도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다. 표면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긴 하지만 기독교 등 소수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 아니라 대 놓고 차별을 당한다. 무슬림이 아니라면 이 나라에서 평범한 직업을 구해서 평범하게 살기 쉽지 않으며, 본인의 종교와 무관하게 절대로 실수라도 무슬림이 신성시하는 것을 무시하거나 모독하면 안 된다. 이번 교회 방화사건도 누군가가 쿠란을 모독하는 행위를 했는데 그에 대한 앙갚음으로 애매한 기독교인들이 타깃이 되어 보복범죄가 벌어졌다. 나는 종교 자체가 없는 사람이긴 한데 저런 뉴스 볼 때마다 무슬림으로 임시 개종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을 하곤 한다.(다행히 아직까진 내 주변에서 무리하게 개종을 강요하는 사람이 없긴 하다.)


3. 중국인을 특정하는 테러가 잦다

 같은 무슬림이라도 시아파-수니파끼리 테러를 하기도 하고, 발루치스탄 해방군처럼 해방운동의 일환으로 테러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번 중국인 겨냥 테러는 발루치스탄 해방군의 소행으로 알려져 있는데, 테러 조직은 중국인을 파키스탄 민족자원을 수탈하는 대표적인 제국주의 집단으로 정의하고 그들을 표적으로 테러를 모의한다. 테러의 목적은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어 자국 내 외국자본이 투자되어 반출되는 자국 자원의 수탈을 막는 일.

 정말 심각한 문제는 나는 중국인과 외모로 명확하게 구별이 불가능한 한국인이라는 점이며, 나는 방탄차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사는 곳은 발루치스탄과는 거리가 좀 떨어진 편이라 조금 나은 상황이지만 애석하게도 인도 분쟁지역과는 또 매우 가까운 곳이라 이래저래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파키스탄 루피/달러 환율이 오늘(8.23) 장중 처음으로 300 PKR/USD를 돌파했다.

 내가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2021년 12월) 178 PKR/USD였으니 지금 거의 1.7배가 올랐다.

 그나마 공식 발표 환율이 저렇고, 실제 환전상에 가 보면 달러가 없댄다. 암시장에서 달러를 구하려면 340~350PKR/USD 정도가 실제 시세라고. 환율 방어가 안 되고 태반의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다 보니 물가가 정말 미친 듯이 오르고 있다. 이러다 정말 서민들 폭동이라도 일으키는 게 아닐까 불안불안하다. 원래는 SOC가 불안하다는 얘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것도 불안하고 저것도 불안하고 다 불안하다.


 여기만 불안한 것이 아니고 일본은 오염수 방류한다고 해서 불안하고, 북한은 미사일 쏜다해서 불안하다.

 아니, 좀 다들 착하게 좀 살고, 사고 나기 전에 대책 좀 세우고 유지정비 좀 잘하고, 종교는 뭘 믿던 서로 존중하며 인정해 주고, 무기개발보다는 국가경제 국민복지에 좀 신경 쓰고 살면 좋을 텐데 왜 다들 불안불안하게 살 수밖에 없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어디 가서 살면 안전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려나.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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