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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Sep 03. 2023

벌레들의 침공


 본 글의 사이사이에는 다수의 벌레들이 나옵니다.
 벌레를 극도로 혐오하시는 분들은 스크롤하지 마셔요.




"아얏"




 새벽 어스름 시간즈음에 아직 자고 있는데 장딴지 안쪽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진다. 뭐지, 바늘에 찔렸나? 그럴 리가 없지. 침대에 무슨 바늘이 있어. 더듬더듬 통증 부위를 만져보려는데 콩알같이 딱딱한 게 만져진다. 으악... 벌레다. 냅다 집어 침대밖으로 던졌는데 이불을 들춰 여기저기 찾아보니 비슷한 애들이 몇 마리 더 있다. 개미도 풍뎅이도 아닌 것이 어디서 들어와서 내 새벽잠을 깨운 걸까. 방충망에 모기장까지 이중으로 치고 사는데 대체 너 어디로 들어온 거니. 그리고 대체 나는 왜 깨문거니.



 방바닥을 봤더니 똑같이 생긴 애들이 수십 마리가 널브러져 있다. 험한 꼴 많이 당하고 살아서 내 어지간하면 그러려니 하는 성격인데 오늘만큼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유독 이맘때(6월말)에만 출몰하는 큰 벌레들이다.



 내 방은 유독 벌레가 많이 꼬인다. 깡시골 건물의 제일 끝방이기도 하고 창도 가장 크고 강가 쪽에 가장 가까운 방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다가도 가끔은 견디기 힘들 만큼 벌레들이 침공한다. 어이, 얘들아. 여긴 내 방이라고. 그냥 밖에 살지 먹을 것도 없는 내 방에 왜 이렇게 많이들 왔니.


 벌레들의 습격은 4~6월이 가장 심하다. 몬순이 시작되면 폭우가 내려서 벌레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인지 몬순기 이후부턴 조금 잠잠해진다. 침공하는 벌레는 시기별로 매우 다양한데, 날개 달린 개미, 하늘소, 하루살이, 풍뎅이, 모기, 파리 등 아주 버라이어티 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벌레는 파리.

 모기보다 파리가 더 싫다. 아니 대체 이 녀석은 용감함이 너무 지나쳐서 허구한 날 나를 툭툭치고 다니고 내 주변에 윙윙대며 성가시게 만든다. 벌레 중 작은 사이즈가 아니기에 부딪히는 충격량도 상당하고 소리도 커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닌데 팔을 휘저어 쫓아도 전혀 겁먹지도 않는다. 파리채를 잡고 일어서서 쫓고 쫓기는 혈전 끝에 끝장을 봐야지만 사태가 끝난다. 조용한 곳에 가서 조용히 놀면 나도 상관하지 않을 텐데 대체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모기는 상대적으로 소심해서 불을 꺼야 출몰하며 낮에는 휴전 선언하고 공격하지 않지만 파리는 그런 거 없다. 으, 성가셔.



 어느 날 아침 화장실에서 발견한 정말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 무슨 일이 있었나 모르겠지만 배를 뒤집고 승천하셨다. 아니 여긴 미국도 아니구만 사이즈가 어찌 이리 크다냐. 바닥에 기어만 다니면 양반인데 이 녀석 가끔 날아다닌다. 소리도 요란해서 처음엔 새가 들어왔나 싶을 정도였다.


 실내 방역을 종종 하긴 한다. 소독약을 구석구석 뿌리면 여기저기 숨어있던 벌레들이 촤라락 낙하해서 시체가 무덤을 이룬다. 그만큼 독하다는 소리겠지. 벌레군단의 전사를 확인하고 쓸고 닦고 난 후 한참을 환기한 다음에 다시 방에 들어오지만 아쉽게도 효과는 그때뿐이다. 모기훈증기를 켜 두면 좀 낫긴 하는데, 그 화학약품이 내 몸에 좋을 리가 없을 테니 견디기 힘들 정도가 아니면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차선책은 모기장인데, 모기장도 뚫고 들어오는 벌레들이 종종 있다는 게 또 문제다.




 어느 날부터 방에 유독 벌들이 많이 들어와서 웬일인가 봤더니 세상에... 화장실 쪽 창문 위쪽에 벌들이 집을 짓고 있다. 처음엔 몇 마리만 보이는가 싶더니 이제 수십 마리가 모이고 알집을 만들고 바로 그 옆에 분가까지 했다. 쟤들을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창을 열어도 연장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 괜히 무리하다 사고 나겠다 싶어 그냥 경계선 만들고 서로 침범하지 않는 걸로 불가침 협정을 맺었다. 벌집을 짓는 곳은 물리적으로 엄연히 "내 집 밖"이니까 집안에 들어오지만 않으면 건드리지 않겠다 얘기했는데 내 말을 잘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다양한 벌레들의 습격은 내가 여기서 살기 힘들어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나는 본디 벌레의 생명 하나까지 소중하게 여기는 자연주의자인데, 그건 내 공간을 침범하지 않았을 때 얘기고 나 괴롭히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제발 내 사생활 생각해서 내 허락 없이는 내 공간에 불쑥 들어오지 말아줬음 좋겠다.(그렇다고 허락하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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