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안 그런가? "더 난무하는 시절"이 맞나?
성금 : 誠金 : 정성으로 내는 돈.
참 아름답고 고귀한 말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세상을 조금 살아온 내겐 "어리숙한 사람들 꼬드겨 갈취받아 내는 돈"이라고 읽힌다.
1986년 어느 날. 정부는 대국민 공포마케팅을 시전한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지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려 한다며, 이를 대비하기 위해 평화의 댐을 강 상류에 만들어 대비해야 한다고 하루 종일 노래를 불렀다. 조금이라도 자극적으로 보이도록 서울시 전체를 미니어처로 만들고 수조에 물을 들이부어 서울시 주요 랜드마크 건물들이 물에 잠기고 쓸려 내려가는 특수효과도 정성들여 만들어 뉴스시간에 방영하였다.
지금 보면, 조금만 생각하고 검토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란 게 바로 보이는데, 그 당시는 전두환 제5공화국 시절. 정부 정책에 조금이라도 딴지를 걸었다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려 쥐도 새도 몰래 잡혀가서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던 시절이었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녔다. 뉴스만 틀었다 하면 1면 기사는 전두환 홍보기사로부터 시작해서 "땡전뉴스"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언론과 행정을 동시에 장악하면 국민들 눈과 귀를 가리고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 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했던 시절이었던 거다.
전 국민에게 공포감을 잔뜩 주입한 후 수몰 방지 대책이라며 들고 나온 게 수공을 막는 방어댐 건설 계획. 그리고 정부는 이 계획의 실현을 위한 자발적 "국민성금"이라는 미명으로 전 국민 쥐어짜기를 시전했다.
잘 나가던 대기업들은 매출규모에 비례하는 건설기금을 내놓아야 했고,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도 코 묻은 돈을 내놓아야 했다. 말이 자발적 성금이지, 조직별 수준에 맞추어 "얼마 이상" 가이드라인이 확실히 존재했고, 가이드라인에 못 미치는 성금을 내면 공개적인 압박과 수모를 당해야 했다.
※ 당시 성금 납부 캠페인 방송기록
https://www.youtube.com/watch?v=YFK8qO76d54
아버지 박봉으로 어렵게 살림 꾸려 사시던 어머니 절규가 나는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아니 무슨, 성금을 이렇게 이중 삼중 사중으로 걷어가나? 애들 학급마다 걷어가고, 반상회 하면 반상회에서 걷어가고, 직장에서 걷어가고, 길 걷다 말고 또 걷어가고,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쥐꼬리만 한 월급 받아 우린 뭐 먹고살라고?"
몇 년 후 정권이 바뀌고 1993년 국정감사가 이루어져서야 이 대국민 사기극이 드러나게 된다.
수공설의 강력한 근거였던 금강산댐 200억 톤 저수설은 조사해 보니 최대 저수량은 26억 톤에 불과했고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조직적 사기행각이었던 것이었다. 불안감과 전쟁위협을 최대한 높여서 국민들로부터 돈을 삥땅치고 직선제 및 민주화 요구를 지연시키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을 것이다.
평화의 댐 건설에는 약 1,700여 억원이 투입되었고 그중 절반 정도의 재원이 성금으로 충당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 국민들에게 삥땅 친 총 성금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서 떼먹고 저기서 떼먹고 저 위로 정치자금과 비자금으로 세탁되어 전해졌으리라. 어떻게 정부한테 사기를 당하냐...
지금은 없어진(또는 여전히 존재하긴 하지만 듣기 어려워진) 방위성금.
이거, 내가 어릴 땐 매월 고정으로 뜯어간 돈이다. 소득이 0원인 국민학생들을 상대로 한 반강제 성금 모금이라니. 돈 벌어오는 사람은 우리 다섯 식구 중 아버지가 유일한데 돈 뜯기는 사람은 머릿수대로다. 말이 좋아 성금이지, 성금을 내지 않으면 "성금 안 낸 사람" 이름이 적히고 불려 나가 "느그 아버지 머하시노?"를 들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과연 내가 낸 방위성금은 국가방위를 위해 쓰인 것 맞을까?
아니면 자국민을 쏴 죽인 "화려한 휴가" 작전을 위해 사용되었을까?
높으신 고관님들의 정치자금과 비자금을 위해 차곡차곡 적립되었을까?
성금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너무 많다 보니, 나는 수혜자가 특정되지 못하는 성금에 대해선 매우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비단, 정부뿐만 아니라 NGO에서 성금을 걷어 NGO 운영자금으로 90%를 넘게 쓰고 정작 목적성 비용으론 10%도 안 썼다는 고발기사를 본 것도 한두 번 이래야지.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01121/32753396/1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20427000964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 사회.
나도 그걸 믿을 수 없는 사회 일원이 되어버린 건 내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학습의 결과다.
그래서 참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