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은 참 고달프다. 비행기 타는 경험이 그리워 도착지 목적지가 똑같은 여행상품도 코로나 창궐시절 유행했다고 하는데 만 24시간 일정이 넘는 연결 비행편은 아무리 많이 해도 잘 적응되지 않는다. 역시 잠은 편한 침대에서 자야 하는 거다.
어떻게 집에 왔나 살살 복기해 보자.
인천발 방콕행 비행기는 오전 10시 20분 이륙한다. 쫓기지 않고 안전하게 이동하려면 최소 3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밟아야 하니 오전 7시 20분까지는 공항에 가야 하지만 공항은 너무 멀다. 미리 인천에 가서 하루를 숙박하고 갈까 심야로 이동할까 고민을 좀 하다가 몸이 좀 고달파도 심야이동을 택했다. 한국산 식자재로 먹거리 꽉꽉 눌러 담은 짐도 부담스럽고 이동에 숙박비에 추가 경비를 쓰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지방에서 심야버스는 새벽 한 시 반 즈음 출발한다. 아무리 "리무진"이라는 이름을 달고 뒤로 편하게 젖혀지는 넓은 좌석을 제공하는 버스이긴 하지만, 버스에서 숙면을 취하기는 어렵다.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 보니 아침해가 뜰 때쯤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너무 일찍 왔네. 내가 보딩체크 해야 할 타이항공 카운터는 아직 열리지도 않았다. 카운터 근처 벤치에서 퍼져있다 보니 드디어 카운터가 열린다. 통상 공항 카운터는 긴 줄을 서야 하는데, 의도치 않은 얼리버드가 된 까닭에 1순위로 줄 안 서고 수화물을 접수하고 보딩티켓을 받아왔다.
새벽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출국수속줄은 길었다. 특히 출국하려는 중국인들이 많았다. 코로나가 좀 풀리고 나니 관광객들이 확실히 늘어난 모양이다. 줄은 길었지만 효율적인 공항 운영으로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역시 빨리빨리 대한민국. 세계 많은 나라를 돌아다녀 봤지만 공공서비스는 우리나라 따라 올 나라가 없는 것 같다.
인천공항 아침 풍경과 내가 타고 갈 타이항공 비행기. 한국의 가을날은 청명하다. 하늘 색깔이 저래야지.
기내식을 맛있게 먹는 가장 확실한 방법.
비행기 타기 전에 아무것도 안 먹으면 된다. 그럼, 뭘 줘도 맛있다.
정말 하나도 안 남기도 다 싹싹 긁어먹었다. 나는 주로 기내음료로는 늘 레드와인을 선택하는 편. 달고 시고 알싸한 그 느낌이 참 좋다. 그것도 비행하며 먹는 술이라니. 언젠가 비즈니스석을 탈 기회가 된다면 한 병 째로 달라고 해서 다 마셔버릴 거다. 그런데 그런 날이 이번 생에 오긴 올래나.
타이항공은 기내 어매니티에 참 인색하다.
그래도 코로나 시절에는 귀마개, 안대, 수면양말에 손소독제까지 꼼꼼하게 파우치로 제공하더니만 이젠 비디오 감상용 이어폰 말고는 아무것도 안 준다. 기내 담요도 요청하는 사람에게만 준다. 대한항공은 칫솔 치약에 1회용 기내 슬리퍼까지도 제공하더니만.
안 줘도 사실 괜찮다. 나는 늘 기내 슬리퍼를 가지고 다닌다. 다년간 항공편 이용으로 쌓인 나만의 노하우! 다이소에서 3천원 주고 산 EVA(에틸렌 비닐 아세테이트) 소재 욕실화인데 매우 가볍고 폭신하며 통기 구멍이 많아서 평상시에도 애용하는 물건이다. 기내석에도 발받침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비행기 탑승 전에 신던 구두를 비닐봉지에 넣어 기내가방에 넣어버리고 슬리퍼를 이용하는 게 훨씬 발이 편하다.
욕실화 슬리퍼에 대한 다른 일화 하나.
한 번 슬리퍼를 착용하면 비행을 완전히 종료하고 도심으로 이동하기 전까지는 공항내에서 슬리퍼만 이용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수완나품 공항은 환승 여행객들에게도 철저한 보안검색을 하는 공항으로, 환승 검색대에서 신발까지 X-ray 검사를 해야한다. 나도 다른 승객들처럼 내 신발(슬리퍼)을 벗고 검색대에 올리려는데, 보안요원이 피식 웃으며 "당신 껀 됐어요" 하면서 그냥 신고 오랜다. 허긴. 여기 어떻게 마약을 숨기겠나. 아무 틈도 없는데. 이 다음에는 그냥 당당하게 신고 보안검색대 통과해야겠다. 나름 장점이 하나 더 늘었네.
인천에서 방콕까지는 대충 여섯 시간쯤 걸린다. 방콕 하늘에는 구름이 좀 많긴 했지만 무사히 착륙 성공.
방콕 수완나품 공항. 인천공항 못지않게 규모가 큰 허브 공항이다. 연결편 탑승구 찾아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통상 연결공항의 탑승구 배정은 손님이 항상 많은 인기 항공편이 출입국센터 가까이 배정되는 편이다. 나처럼 제3국가로 분류되는 항공편은 거의 언제나 공항의 가장 구석탱이 탑승구에 배정되기 때문에 공항 내어서도 한참을 걸어야 한다. 도착 터미널 끝에서 착륙해서 이륙 터미널 끝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부지기수. 별 걸 다 차별을 하네 싶다가도 공항 이용객 숫자와 효율성을 고려해 보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사회 행정이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합리적일 수 있는 거니까.
이슬라마바드 연결편은 같은 날 19시 이륙이다. 대충 5시간 여유가 있는데 어쩐다.
라운지 가기엔 너무 비싸고, 방콕 나가려니 기내수하물이 부담되고 에라 귀찮다. 그냥 공항에서 쉬자.
다행히 수완나품 공항은 무료 인터넷이 제공되는 공항이라 대기하는 시간이 그리 지겹지는 않았다.
요번에 고른 기내식은 쌀밥에 새우요리. 정확히 묘사하기가 좀 어렵지만 단짠 소스로 요리된,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요리여서 만족스러웠다. 역시 곁들인 음료는 레드와인. 아, 이걸 끝으로 당분간 또 못 마시겠군. 아쉽다.
방콕에서 대충 다섯 시간 날아오면 최종 목적지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다.
공항이 그리 붐비지도 않았는데, 짐 찾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의 입국을 환영하는 수많은 인파들.
이슬라마바드 공항은 공항을 직접 이용하는 여행객이 아니라면 환영인파든 환송인파든 공항건물에 들어올 수는 없고 저렇게 공항건물 밖 안전펜스 넘어서 기다려야 한다. 아마도 다 테러방지 목적이려니 싶다.
집에서 당일 00시 40분 즈음에 나와서 그다음 날 (한국시간) 새벽 4시 정도에 이슬라마바드 숙소에 도착했다. 27시간쯤 걸렸으니 이번에는 비교적 짧게 온 거다.
다음날.
뒤바뀐 시차 탓에 비몽사몽 일어나서 집에 갈 준비를 한다. 이제 진짜 집으로 가야지.
내가 사는 곳은 이슬라마바드 수도가 아니라, 첩첩산중 시골마을.
도시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마중길 정도는 상태가 괜찮다. 아, 뭐, 이 정도라면 차에서 잘 수 있겠어 싶었다. 처음에는.
하지만 조금만 도심에서 멀어지면 길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 여긴 그나마 공사진행 중이라 풍경은 황량하지만 도로도 직선이고 표면상 태도 괜찮지만...
도시와 거리가 멀어지면 그냥 시골 이면도로만도 못한 상태의 도로가 된다. 강조하고 싶은 건, 이게 뒷골목 아니고 주와 수도를 이어주는 메인 도로라는 말씀.
도로에는 저렇게 차에 매달려가거나 차 지붕에 올라타서 이동하는 사람들을 매우 자주 볼 수 있다. 하도 많이 봐서 이제 그러려니 한다.
중간중간 포장상태가 너무 안 좋은 구간이 상당히 길게 존재한다. 대체 몇 년이나 저런 상태로 방치한 건지 모르겠다. 한국이라면 포트홀 하나만 생겨도 민원폭탄맞고 밤새 보수처리가 될 텐데.
주 경계에 가까워지면 다시 도로 상태가 좋아지고 풍광이 예뻐진다. 하지만 도로가 꼬불꼬불 좁은 탓에 자면서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은 못 된다.
타임랩스로 찍어 본 이동 중 일부구간의 풍광들. 언젠가 그리운 날이 올까 봐 기록으로 남겨본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세 시간 반 정도 열심히 달리면 드디어 현지 숙소에 도착한다.
아무렴. 집이 최고지. 홈 스위트 홈.
중간 휴가를 받아 한국집에 잠시 가면 어쩐지 잠시 홈스테이 하는 것 같고 여기 지사 내 숙소에 도착하면 진짜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한국 집에는 내 공간도 내 흔적도 많이 사라진 것 같지만 여기 내 방은 정말 내 방같은 느낌을 주니까.
역시 정 붙이고 살면 거기가 고향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