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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Oct 29. 2023

개천절 & 국군의 날 기념행사 참석 후기

재)파키스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님, 대사관에서 초청장이 왔습니다. 가실 건가요?"


 금박 정부마크가 찍힌 봉투에 내 이름과 직함이 선명하게 찍힌 초청장이 배달되었다. 그것도 재)파키스탄 대한민국 대사관 대사님 명의의 무게감 있는 초청장이다.

 한 나라의 대사라면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 대통령 대행 격인데, 대사님으로부터 직접 초대를 받다니 이런 가문의 영광이. 가고 말고가 어딨어. 당연히 가야지.



 잠깐잠깐, 근데, The Armed Forces Day는 국군의 날인줄 알겠는데, The National Foundation Day는 뭔가요?

 아. 이거, 개천절이구나. 순간 광복절하고 헷갈렸네. 글자 그대로 하면 The Opening Sky Day 일 텐데 그럼 외국인들이 더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개천절이 영어로 The National Foundation Day구나. 처음 알았네. 어쨌든 이 행사는 10월의 중요 국경일인 개천절과 국군의 날을 맞아 재)파키스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개최하는 연중 최대의 행사라고 한다.


 시골 구석에 콕 박혀 살다가 정말 모처럼 도시(이슬라마바드)로 나왔다.

 서양식 정장(양복) 입는 걸 무척 싫어하는 편이지만 오늘만큼은 사회적 위치와 타인들 눈이 있으니 기본은 하자는 마음으로 화이트 셔츠에 정장을 걸쳤다. 타이는 멜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연단에 올라가거나 VIP 사진을 찍힐 위치도 아닌데 기본만 하자 싶어 생략했다. 정말 이 서양식 정장엔 왜 타이까지 메야 격식을 갖추었다고 인정받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밥 먹을 때 손 씻을 때 걸리적거리기만 하고 목도 갑갑하고, 그렇다고 겨울에 타이 메었다고 딱히 더 목이 포근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복이 있었다면 오늘 같은 날 당연히 한복을 입었을 것 같은데 한복이 없으니 별 대안이 없다. 그런데 제대로 갖추어 입으려면 한국에서도 양복보다 한복이 훨씬 비싼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파키스탄에서 대사관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지만(모든 대사관은 외교단지 안에 모여있다.), 같은 이슬라마바드 안에서도 외교단지로 들어가려면 철저한 보안검색을 거쳐야 한다. 평상시엔 대사관 창구를 통해서 미리 예약을 하고 출입자 성명과 운전자 성명, 차량번호까지 등록해야 통과허가가 나는데, 오늘은 출입등록 필요 없이 초청장을 들고 오면 통과가 가능하다고 했다.



 외교단지 검문소 앞. 초청장을 보여주며 "I'm Korean."하고 외치니 무사통과 시켜준다.


 검문은 대사관 철문 앞에서 한 번 더 이루어진다. 역시 초청장을 확인하더니 무사통과. 오늘은 대사관 건물 여기저기에 청사초롱이 달렸다. 파키스탄이지만 그냥 한국 같아 반갑다.



 가끔씩 드나들던 대한민국 대사관이지만 오늘처럼 레드카펫이 깔린 날은 처음 본다. 대사관 경비요원들도 오늘만큼은 빨간 띠를 둘러 행사 분위기를 내고 있다.



 입구에서 대사님과 대사부인, 기타 관계자들이 입장을 반겨준다. 대사님은 웰컴 포토존에서 접객을 하시며 일일이 사진 모델이 되어주고 계셨는데 나는 마침 혼자 뻘쭘하게 입장하던 차라 "저랑도 같이~" 소릴 못했다.



 와우. 대사관 안뜰이 이렇게나 넓었나? 이 정도 규모의 대형 가든파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역시 예상대로 초청받은 사람들은 정장 아니면 한복 아니면 각 국가의 전통의상을 입고 참석을 했다. 편한 마음으로 캐주얼로 왔다면 결례가 될 뻔했다.



 조금 일찍 왔더니 태권도 시범 리허설을 하고 있다. 한국 국기원에서 왔나 했더니만 다 파키스탄 사람들이다. 나는 잘 모르지만, 여기에도 태권도가 많이 보급되고 있나 보다.



 대사관저에 붙어있는 게스트 라운지인데 여기에도 청사초롱이 붙었다. 파키스탄은 짙은 녹색, 스위스는 빨간색, 우리나라는 빨강 파랑. 국가 컬러코드는 멀리서 딱 봐도 이미지를 결정지어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며 오늘 같은 국격 있는 행사자리에 대한민국 고유색상을 보여주는 저런 청사초롱 장식은 참 잘한 선택이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게스트 라운지 앞으로 각종 주류를 서빙해 주는 테이블이 있다. 내가 오늘 자주 가야 할 곳. 소주, 막걸리는 안 보이지만 그거 말고는 대충 종류별로 다 있는 것 같다.



 연회 공지시각이 임박하니 넓은 잔디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꽉꽉 찬다.

 대사님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태권도 시범공연, 춤공연 등 개회행사가 이루어지고 드디어 본 행사. 야외 가든 뷔페 시작.



 뷔페 배식대는 한쪽은 한식요리 / 반대편은 현지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반대편의 바비큐 그릴 냄새도 좋았지만 한국인은 한식이지. 이것저것 많았지만 김밥, 떡볶이, 백김치가 제일 맛있었다. 배식대에 비해 참석자가 매우 많아 배식줄이 한참 길었다. 이 정도 참석자 규모라면 배식 테이블 한 줄 정도가 더 필요해 보였다.


 이 날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긴팔에 정장을 입고도 약간 쌀쌀하다고 느낄 정도의 기온이었지만 춥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고 와인, 샴페인과 함께 음식을 먹기 딱 좋을 정도의 가을 날씨였다.


 대규모 공간에서의 칵테일 파티는 처음이라 분위기 적응이 좀 필요했는데 끼리끼리 모이는 한국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연스레 스탠딩 테이블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건네는 외국인들이 많아 역시 저런 건 어려서부터 문화체험을 해 봐야 하는 거구나 느꼈다. 그 들 중 일부는 매우 적극적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언젠가 따로 식사를 하자며 명함을 교환하는 기업 대표자분들도 있었는데 아마도 이런 자리를 통해 비즈니스 영업을 하는 분들 같았다. 뭐... 나도 영업직함이 주어지면 저분들처럼 해야겠지. 지금은 아니지만.


 모처럼 동종업계 한국 기업인 분들도 많이 만나고 즐겁게 대화하고 이 나라에서 구하기 힘든 와인도 몇 잔 마시고 적당히 알딸딸 취한 채 행사 마치고 집에 왔다.



 대사관에서 준비해 준 참석자 기념 선물. 태극문양이 찍힌 포장지까지 아마도 한국에서 공수한 물건이겠지. 포장부터 정성이 느껴진다. 뭐냐고 살짝 여쭤보니, "한국산 마스크팩"이라고 한다. 마침 건조해지고 피부도 푸석해지는 것 같았는데 잘 되었다. 주말에 이거나 뒤집어쓰고 푹 자야겠다.


 이번만큼은 선물 재활용 돌려 막기 안 하고 꼭 내가 쓰고 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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