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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Oct 29. 2023

흰 옷 되살리기

젊음도 되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정부 행사 참석했다가 다시 복귀한 일상. 역시 조용한 지사 내 숙소가 가장 마음 편한 집이다.


 도시에 나갔다 왔더니 빨래거리가 늘었네.

 평생을 공장떼기로 살다 보니 옷 욕심은 전혀 없는 편인데(공장 특성상 작업복을 입고 살며, 일터에 여성 자체가 없음. 돈 들여 옷 잘 입을 이유가 전혀 없는 환경) 그래도 중요 행사에 참석하고 나니 좋은 옷은 아니더라도 옷을 깔끔하게는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외모, 옷차림만 먼저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이 잔인한 세상. 한국 못지않게 이 나라도 그게 무척 심하다.


 평상시에도 상대적으로 현지인 대비 피부가 뽀얀 동양인 우대문화가 조금 있는 파키스탄이긴 하지만, 그냥 평상복 차림으로 돌아다닐 때 하고 화이트 셔츠에 정장에 구두를 갖춰 입고 다닐 때 하고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자세가 확연히 달라짐을 여기서도 많이 느꼈다. "Hey, Man~" 하던 사람들도 "Sir~"라고 불러주는 경우가 더 많았고, 정장을 쫙 빼입고 공공장소에서 줄을 서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제일 앞자리로 양보해주기도 했다. 영국 복식인 양복은 이 나라에서도 비싼 옷이니 일단 양복만 입었다 하면 서민층보단 위로 쳐 주는 문화가 여기도 확실히 존재한다.


 자자, 어쨌든 중요한 건, 비싼 옷을 입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격식에 맞는 옷을 깔끔하게 입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


 어쨌건 빨래하고 관리하기 귀찮아서 평소에는 흰 옷을 거의 안 입는 편인데(속옷만 빼고) 오랜만에 화이트 셔츠를 입고 출동했더니 하루만 입어도 목과 소매 끝에 때가 탄다. 흰 옷은 이염이 되기 십상이니 이 참에 오래된 다른 흰옷들하고 왕창 표백을 좀 해야겠다. 반팔 화이트셔츠는 분명 세탁해서 걸어놨는데도 시간이 좀 지나니 목 주변 컬러가 누렇게 변색이 진행되는 게 보인다. 화이트셔츠는 새하얘야 제 멋이지. 이 참에 속옷들하고 반팔 라운드셔츠들도 몽땅 표백해야겠다.


 흰 옷 표백에는 여러 방법들이 있지만 만사 귀찮은 나는 마트 기성제품 쓰는 걸로 선택했다. 독일 직수입 맥시멈 화이트닝 어쩌고 하는 흰 옷 표백전용 세제 한 통과 소용량 락스 한 병을 샀다. 둘 다 수입품이네. 가격이 한국보다 비싸다. 락스는 한국에서 브랜드 없는 제품을 사면 1천 원이면 리터급 병을 살 수 있는데 저 작은 병이 여기선 2,500원. 이 나라는 기초 생필품도 자국산이 없는 게 너무 많다. 급여생활자의 수입은 1/10도 채 안 되는데, 생필품과 전력가격은 우리나라보다 더 비싸면 대체 어떻게 다들 살아간단 말인가. 툭하면 시민들이 시위를 일으키는 사정도 충분히 나는 납득이 된다. 문제는 시위해 본 들,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거지만.


제품 직접광고는 할 마음이 없으니 모자이크 처리. 어쨌든 내돈 내산.


 이왕이면 빨래솥을 사서 이것저것 다 때려 넣고 보글보글 끓였다가 세탁해서 헹구면 더 깔끔하겠지만 빨래솥도 없고 귀찮으니 일단 기본만 해 보고 안 되면 다시 생각하자고. 설명서에는 30분만 잘 재우면 된다고 해놨지만 급할 것도 없으니 세탁기에 물 채우고 전용 세제랑 락스 두어 컵을 붓고 밤 새 불려놨다가 아침에 다시 돌려서 따스한 햇살에 탈탈 털어 말렸다.


 효과는?

 오.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 효과가 있다.

 적용 전 / 후 사진을 보여주면 직관적이겠으나 누런 빨랫감은 남기고 싶은 기억은 아니기에 안 찍었다.

 이염된 러닝셔츠도 흰색으로 조금 돌아왔고, 목 주변이 누래지던 화이트셔츠도 다시 신상처럼 하얗게 돌아왔다.


 요샌 옷값이 워낙에 싸서 한국에선 다이소 등에선 인건비, 소재비, 물류비 포함하면 저 가격이 가능한가 싶을 만큼 저렴한 5천 원짜리 저가 셔츠도 팔던데 표백 세제 가격에만 근 1만 원을 지출한 소비가 합리적인지 아닌지 좀 의심이 들기도 하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나는 쓰던 물건에 애착을 강하게 느끼는 맥시멀리스트라 잘 입어오던 옷을 버리고 신상을 사고픈 마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광고처럼 광채가 반짝반짝 나는 정도의 표백은 아녔지만, 이번 표백작업은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다음에 저 화이트셔츠를 입을 일이 있으면 자존감이 조금 더 올라가지 싶다.


 셔츠는 화이트닝을 완료했으니, 이제 얼굴피부 해봐야지.

 넘 걱정마시라. 저 세제로 하겠다는 소리가 아니고 이번 행사 때 받아온 마스크팩 써 보겠단 소리니까요.


 ㅠㅠ 한국보다 많이 남쪽나라 파키스탄. 햇살이 강하고 강한 햇살만큼 자외선도 강렬한 곳이라 여기 온 지 2년여 만에 피부가 많이 상했다. 중년이지만 그렇다고 늙었다고 생각하는 나이는 아닌데 벌써 여기저기 기미 검버섯이 보이면 되냐고. 밝아지면 좋을법한 피부는 점점 칙칙해져 가고 밝아지면 서글퍼지는 머리는 여기저기 흰머리가 많이 는다. 어쩌면 우리 생애 안에 과학자들이 노화를 관장하는 텔로미어(telomere) 길이를 연장하는 신기술을 발견할지 모른다는 썰도 있던데, 영생은 영생대로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지. 수명이 다 해 죽을 때 죽더라도 늙지 않고 곱게, 쌩쌩하게 잘 살다가 갔으면 좋겠다. 어쨌든 그러고 싶어 오늘은 챙겨서 헬스장 가서 운동도 하고 옴.


 흰 옷을 되살리는 것처럼 젊음도 되살릴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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