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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Nov 04. 2023

이슬라마바드 도심 출타 기록

이게 몇 년 만의 외출이냐

 나는 그 정도가 좀 심한 집돌이.


 휴일에는 아예 집 밖에 한 발자국도 안 나가는 날이 많을 정도로 갑갑한 것 잘 못 느끼고 혼자만의 시간을 잘 즐기는 부류의 사람이다. 총과 실탄을 휴대한 경호원과 경호차량 없이는 지사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사 내 사택에 감금되다시피 지내는 파견생활이지만 그게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은 이유는 이런 내 태생적 성향이 매우 크다 하겠다.


 오늘은 백만 년 만의 이슬라마바드 출타. 대사관 행사가 있어 초대받은 전날이다. 이유 없이 나가는 날은 없다.

 여기서 이슬라마바드 까지는 거리가 꽤 되니까 서둘러 가야 한다. 내가 사는 곳의 보안 규정은 일몰 이후에는 원칙적으로 외국인은 외출 자체가 허가되지 않는다. 여러모로 참 살기 까다로운 곳이다. 어쨌든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지사 문을 나섰다.



 마침 중고등학교가 마치는 시간인지 곳곳에 스쿨버스가 보인다. 스쿨버스 어딨냐고? 저 왼쪽에 저거. 한국으로 치면 옛날에 단종된 라보 같은 미니트럭을 개조해서 좌석 몇 개를 만들고 차량 외부에는 발판과 손잡이를 만들어서 저렇게 매달려 학생들을 실어 나르는 모습을 매우 흔하게 자주 볼 수 있다. 당연히 안전벨트 같은 건 있을 리가 없고 저렇게 차량 외부에 매달려 가면 경찰이 잡을 것 같지만 아무도 안 잡는다.


 여긴 우리나라보다 남여칠세부동석이 훨씬 심한 나라라서, 대중교통을 타도 남녀가 같은 좌석에 나란히 앉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저 스쿨버스에도 실내에 안전한 좌석 여유가 몇 개 보이는데도 남학생들이 차 바깥으로 매달려 가는 이유는 아마도 여학생과 같이 앉는 것이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내가 주로 애용하는 서민 이발소 저스틴 헤어 살롱.

 그래도 행사 가는 길인데, 깔끔하게 가야지.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외모가 너무 추레하면 조직 전체가 망신이 될 수 있다.

 300 파키스탄 루피면 이발할 수 있다. 2023년 환율로 한화 1천 500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다. 가게는 조금 허름하긴 하지만 이발사는 친절하고 깔끔하게 잘 깎아준다. 나는 이미 이 물가에 적응되어 있어서 한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이발을 해야 할지 벌써 걱정이 된다. 이발비만 비싼가. 모든 게 이미 다 비싼데.




 이발하러 들어갈 때는 해가 있었는데 마치고 나오니 벌써 깜깜해져 버렸다.

 밥이나 먹고 들어가야겠다.

 저녁은 통상 가볍게 먹는 편이라서 노천 스낵바에 가기로 했다.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듯 보이는 깔끔한 집. 파키스탄은 요즘 가을철이라 이렇게 밖에서 상을 펼쳐도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딱 선선하니 좋다.

 뭘 먹나. 언제나 듬직한 나 태워주시는 기사님과 함께 샌드위치, 감자튀김, Hot & Sour Soup(뜨겁고 신 중국식 수프)를 먹기로 했다. 가격은  샌드위치 250루피*2인분, 감자튀김 150루피 한 접시, 수프 150 루피 한 그릇 도합 800루피 되겠습니다. 1루피는 4.7원쯤 하니까 2인분이 4천 원이 채 안 되는 돈이다. 여긴 도심 한복판이라 좀 더 비싸지만 먹거리 물가는 외곽으로 나가면 더 싸진다.

 파키스탄 연방정부는 2023년 7월, 최저임금을 기존 월 25,000루피에서 월 32,000루피로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루피화 폭락과 물가 급등에 대한 조치사항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여생활자의 실질 구매력은 더욱 하락했다. 32,000루피는 한화로 환산하면 15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이다. 그래도 이 돈으로 근근이 먹고살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제반 물가도 워낙에 싸기 때문이다.


항상 듬직한 우리 기사님
비주얼이 썩 그리 훌륭하진 않지만 다 갓 만들어 낸 음식이라 신선하고 뜨겁고 풍미가 좋았다.


 인당 2천 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샌드위치, 갓 튀겨낸 감자튀김, 따끈한 수프를 먹을 수 있다는 건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면 축복에 가까운 가격이지만, 이 나라 소득 수준 생각하면 결코 싼 가격도 아니다. 사실 도심을 벗어나 조금만 변방으로 나가면 300 루피면 둘이 먹고 남길 정도의 비리야니를 배부르게 시켜 먹을 수도 있다.


 서비스도 음식맛도 친절도 청결도 한국 생각하고 비교하면 안 되지만, 가격만큼은 너무너무 착한 파키스탄.


 내가 파키스탄 라이프가 그래도 살 만하다고 우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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