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나라가 늬들꺼냐
우연한 계기로 잔소리 빌런으로 각성한 오늘 작가.
이왕 이미지가 이렇게 된 거 평소 하고팠던 말 좀 하자고.
공개방송이나 사내발표들 듣다 말고 커억 하고 막히는 감정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단어가 있다.
아니 낮추려면 너 혼자 낮추지 왜 나까지 싸잡아서 내 허락도 안 받고 다 같이 낮추어 버리냐. 이런 무례한 일이 어딨냐. 그 방송을 듣거나 발표를 듣는 나도 그 집단의 사람이란 말이다. 공손하게 말한다고 여기저기 아무데다 다 "저희"를 남발하면 안 된다고!
"저희"는 "우리"의 낮춤말이다. 듣는 이가 동등한 집단인 한국인끼리 듣는 이까지 싸잡아 낮추어버리는 "저희나라"라는 표현은 아주 무례한 표현이다.
그럼, (한국어를 아는) 외국인과 대화할 때 "저희나라"라고 쓰는 건 괜찮은가?
이 역시 그래선 안 된다. 자기 나라와 민족은 타 국가 민족 앞에서 내 임의의 판단으로 낮추어선 안 된다. 그래서 "저희나라"은 언제나 틀린 표현이며 사용해서는 안 되는 불손하고 무례한 표현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는 공손하게 말하려고 했다는 걸 짐작하지 못하진 않으나 듣는 사람 기분은 많이 많이 나쁘다.
"저희회사"의 용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좀 있다.
항상 "우리회사"만 쓰는 것이 합당하는 쪽과 경우에 따라 듣는 사람이 구분될 때 "저희회사"를 써야 한다는 쪽이 있지만, 애사심과 자긍심이 높은 회사 조직이라면 그냥 상관없이 언제나 항상 "우리회사"라고만 써도 나는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사내에서 발표를 할 때는 무조건 "우리회사"만을 사용해야 한다.
사장님 모시고 사내에서 실적 발표는 하는데, "지난달 저희회사 매출은 전 달 대비 10% 증가했습니다."라고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발표자가 사장님까지 다 낮추어버렸다.
대외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한 다 치고 대본을 상상해 보자.
"이번에 저희회사에서 새롭게 개발한 안드로이드 로봇 MTX-3007 모델을 소개합니다."
음. 그리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 경우 듣는 사람은 기자단을 포함한 불특정 대중이라고 가정하면 크게 어색한 문구는 아닐 것 같다.
"이번에 우리회사에서 새롭게 개발한 안드로이드 로봇 MTX-3007 모델을 소개합니다."
음. 역시 그리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다만, 불특정 대중을 상대로 하는 멘트보다는 과학기술 컨퍼런스 등 동종업계 유사직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싶다.
"우리회사"라 함은, 회사 사장을 포함한 전 직원, 좀 더 나아가서는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 및 주주까지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말하는 사람이 "저희회사"라는 표현을 할 때는 듣는 사람 앞에서 회사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내 권한으로 낮춰 불러야 할 이유가 있는지 잘 생각해 보고 말해야 한다.
자매품 "우리집"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언제라도 우리집에~ 놀러오세요~ ♪♪"
유명한 동요의 한 구절이다. "저희집"이라고 하지 않는다. "저희집"이라고 해도 안 되진 않지만, 어쩐지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이 하나도 안 난다. 이 역시 비슷한 개념인데, 우리집이라 함은 건축물의 House만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집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누나, 동생, 강아지, 고양이, 내 방 게임기, 만화책, 테라스 화분, 어항 물고기, 거실 TV, 주방 밥솥 등등 집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다. 그러니 "저희집"이라고 칭할 필요가 있을 경우는, 내가 우리집을 대표해서 집어르신들을 포함한 가족 모두를 모두 겸양의 자세로 낮출 필요가 있을 때만 "저희집"이라고 써야 이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
"사돈 어르신, 이번 일은 저희집에서 모두 부담할테니 염려 놓으시지요~"
"우리집에선 전기밥솥보다 가스 압력솥을 씁니다."
느낌 OK? 안 OK?
높임말 언급한 김에 상대높임말에 대해 썰 좀 더 풀어보겠다.
일단 논란의 압존법.
"할아버지, 아버지는 일이 있어 아까 읍내에 나갔어요. (화자가 손주)"
"김 병장님, 한 상병은 내일까지 휴가 갔습니다. (화자는 이병)"
압존법은 대화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한 존대 여부를 말하는 사람(화자)이 아닌 듣는 사람(청자)을 기준으로 하는 어법이다.(나무위키 발췌)
그러니까 화자의 기준에선 윗사람이지만, 청자의 기준에서 아랫사람을 칭하는 경우가 생길 경우 일부러 존대하지 않는 화법을 압존법이라고 하며, 화자보다 청자에 기준을 둔 화법이다.
2016년 2월 24일, 군에서 압존법 사용을 폐지하였고 한국어의 화법과 문법에 대한 표준을 관장하는 국립국어원에서는 "써도 되고 안 써도 된다는" 애매한 태도로 딱 부러지게 존폐 여부를 발표한 적이 없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쇠퇴해 가는 어문법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느끼진 못하지만 사회 곳곳에 압존법의 영향이 여전히 있는데, 신문방송 등에서 국가최고직위인 대통령을 칭할 때도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 청자가 국민인데 국민이 대통령보다 더 높다는 의미에서 방송용어로 압존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사내방송이나 사내기사를 쓸 때에는 상황이 조금 다른데, 우리회사 같은 경우는 사장에 한해서만 "사장님"이라 칭하고 존대어로 마무리한다(이건 회사마다 문화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부사장이나 전무는 사내방송, 기사에서 존대하지 않는다. 이유는 아주 단순한데, 사내방송이나 기사는 시청자가 사내 사람들로 국한되며 국민과는 다르게 시청자가 사내 회사원 다수라 할지라도 여전히 사장의 지위가 더 높은 까닭이다. 부사장을 사내방송, 기사에서 존대하지 않는 이유는 시청자에 사장도 포함되기 때문에 존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압존법은 점점 사문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압존법을 써도 안 써도 어문법에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소속한 문화와 직접 청자의 의중을 잘 살펴서 현명하게 처신해야 욕먹지 않는 미묘한 화법이다.
한국어는 이래서 어렵다.(참고로 나는 꼰대성향자라 압존법을 엄하게 지키는 편이다.)
"손님, 커피 나오셨습니다. 시럽과 빨대는 저 쪽에 계십니다."
이런 미친. 손님보다 커피와 빨대가 더 높네? 대체 왜들 이러신다냐.
문제는, 이것이 이렇게 응대하는 점주와 알바생들의 단순 실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렇게 응대하지 않으면 왜 반말하냐고 행패 부리는 손님(손놈인것 같지만...)들이 많아 황당한 어법인 줄 알면서도 시비 걸리기 싫어 일부러 저렇게 응대하는 알바생들이 많다고 한다. 이래서 공교육 사회교육은 중요하다. ㅡ_ㅡ;
암튼 아랍어와 함께 세계에서 배우기 어려운 언어 탑티어를 찍고 있는 한국어.
한국인이지만 나도 한국어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한국어 모국어 사용자라서. 이걸 제2외국어로 배웠다면 정말 머리가 아플 것 같긴 하다. 한글은 쉽지만, 한국어는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