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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Dec 28. 2023

혼자 즐기는 바르셀로나 만찬

나도 맛있는 거 먹을 줄 안다

 힘든 하루다.

 아직 하루가 안 끝났다. 너무 일정을 빡빡하게 잡았더니, 벌써 근 20km나 걸었다.

 점심 때 물 한병 하몽 샌드위치 하나랑 치즈 타파스 하나 먹고 끝이었는데 적게 먹고 많이 걸으니 허기가 진다. 오늘 저녁은 좀 잘 먹어야겠다.


 다리가 아파서 맛집 찾아다니기도 귀찮고, 즉석에서 결정한 집. Tosca.

 구글 평점도 나쁘지 않다. Tosca는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카탈라냐 음악당 입구 바로 맞은편에 있다.


https://maps.app.goo.gl/LNcXM3KC5zCnf1Qs5



 바 있고, 식탁 있고. 여느 식당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실내.

 넓지는 않지만 인테리어 정갈하고 따뜻한 느낌이 있다.


 이제 주문을 해 봅시다.



 메뉴는 어렵다. 일단 영문 메뉴가 없다.


 한참을 보다가 눈에 들어온 아는 단어. 와사비(wasabi).

 메뉴 풀 네임 Tataki de atun con mango y wasabi.

 이게 뭔지 궁금해서 구글 검색을 하려는데, 여긴 Data가 안 터진다.(바르셀로나는 곳곳에 전파 음영지대가 많았다.)

 Tataki? 뭔지 몰라도 들어본 것 같애. 와사비 들어가 있으면 개운하니 맛있겠지. 모르겠고 일단 시켜볼래.


 다타키 하고 에스뜨레야 Estrella 맥주 한 잔 주세요~ 주문 끝.



 짜쟌~

 서빙된 메뉴.



 겉 표면을 아주 살짝 익힌 참치회구나. 와사비도 콩알만 하게 올려져 있다.

 근데 스페인 사람들도 참치회를 즐기나? 이거 스페인 요리 맞나?


 Tataki de atun con mango y wasabi는 번역기로 나중에 돌려보니 망고와 와사비가 들어간 참치 다타키라는 뜻. 참치나 소고기 등을 불판을 통하지 않고 토치를 켜서 불을 붙여 겉부분만 그을리듯이 굽고, 속살은 완전하게는 익지 않게 만든 일본식 요리를 뜻하는 말이 다타키였다.(주문 당시엔 몰랐다. 스페인까지 와서 일본식 참치회를 시켰다니. 내 기본 성향과는 좀 안 맞긴 하지만. - 오늘 작가 해외여행 가면 그 나라 고유 전통음식 향토음식만 찾아먹으려 애쓰는 사람. 거기서만 먹을 수 있는 걸 먹는 게 여행의 기회이자 경험이라 믿기 때문에.)


 식당 이름도 지중해스러운 스페인 "Tosca" 식당에서 왜 일식을 이렇게 팔고 있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시켰으니 맛있게 먹어보겠습니다.(어째 메뉴가 동양스럽네? 하면서도 먹을때까지는 이게 스페인 요리라고 생각하고 먹고 있었다. ㅋㅋㅋ)


그럼, 먹어보겠습니다.


 오, 씹기도 전에 살살 녹아 사라지는 환상적인 맛.

 참치회 고유의 고소하고 부드럽고 담백하고 촉촉한 맛에 달콤한 망고소스와 개운한 와사비까지 무언가 엄청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 겉 표면을 살짝 익힌 맛이라 생 참치회 맛이랑은 또 약간 다른 오묘한 맛. 나 앞으로 이 요리 좋아하고 싶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3초만에 녹아내려 하나를 더 집어넣는데... 가만... 이거 딸랑 회 4점 먹고 저녁 끝? 맛은 합격점을 지나 수석권을 향하지만 양이 너무 적다. 사탕처럼 혀끝에 살살 녹여먹여도 10초면 넘어간다. 4점 다 먹는데 1분이면 충분하겠다. 뭐 하나 더 시켜야겠다.


 메뉴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고, 인터넷도 안 되니, 주변을 둘러보다 괜찮아 보이는 만두 같은 게 있길래 "저도 저거 하나 만들어주세요"하고 시켰다. 외국인 관광객 많은 지역의 메뉴판은 무조건 사진이어야 한다고 오늘도 빡빡 우겨본다.




 둥근 왕만두처럼 생겼던 저 메뉴는 Empanada ce cebolia(양파 파이. 엠파나다 세 세볼리아).


 모르고 시키긴 했지만 저 엠파나다는 스페인 길거리 한 입 간식으로 유명한 메뉴다. 우리나라 만두처럼 생겼고 만두 속재료가 제각각이듯이, 속재료를 뭘로 채우는지는 요리사 마음. 내가 먹었던 엠파나다는 양파와 고소한 견과류 등 주로 야채 및 곡류 중심이었는데 정확한 재료는 뭘 썼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따뜻하게 갓 나온 엠파나다는 묵직하고 고소하고 든든했다. 다만, 엠파나다만 먹으면 목이 좀 메는 느낌이라 적절한 음료와 같이 마시는 것이 추천된다.


당연히 연출한 나 혼자 밥상. 웨이터한테 잠시 저 사진 좀 찍어주세요~ 했다.


 이제 좀 저녁상 같네. 누군가 같이 먹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이 집 식당엔 딱히 말 붙일 혼자 여행객이 보이질 않았다. 밥친구만 해 준다면 엠파나다 하나쯤은 얼마든지 먹으라고 권할 수 있었는데 말이지.(한 접시 먹기엔 배고프고 두 접시 다 먹기엔 양이 조금 많았다.)


한 입에 한 점씩 먹다가 아쉬워서 세 점 부터는 반점씩 나눠서 조금씩...


 또 예산 초과. 생각보다 비쌌던 스페인 만두. 7.8유로니까 약 1만 1천 원 꼴인데, 만두 하나 5천 500원이니 싸지 않다. 하지만 스페인 만두 엠파나다는 시장 노점에 가도 하나에 2~3유로씩 하는 법이니 식당 자릿세 감안하면 또 바가지 가격은 아닌 것 같고...


 어쨌든 저렴한 타파스 전문점에 가지 않는 한, 바셀에서 한 끼에 20유로 안으로 잘 먹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한 끼에 3만 원씩이라니. 돈 아끼려면 굶는 수밖에 없단 말인가. ㅠㅠ


 스페인까지 와서 다타키라는 제대로 된 일식을 먹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고 사전에 공부하고 온 건 아니지만 얼떨결에 스페인 전통만두 엠파나다도 먹고 왔으니 가이드 없이 혼자 잘 찾아먹고 왔으면 다행인거지. 여행지에선 보는 거 절반 먹는 거 절반이 기억인 건데 이 집 만찬도 내 기억에 오래 남은 걸 보면 나름 성공한 혼자만의 만찬이었다.



 밤만 되면 낮보다 훨씬 화려해지는 빛의 도시 바르셀로나.

 나는 난시에 라식수술까지 했던 사람이라 야간 맨눈의 빛번짐이 좀 심한 편이다.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맨눈의 야경은 진짜 별천지였는데(사방팔방 여기저기 다 빛번짐. 말 그대로 빛의 향연), 사진에 야경을 담으니 그 느낌을 전달할 수가 없네. 실제 가서 보면 정말 화려한데 사진은 너무 심심하게 나옴.


실제 오늘 작가가 느끼는 야경의 느낌. 빛번짐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임...


 그러니까, 저 위의 야경이 내 눈에는 다 저런 빛번짐 사진처럼 보인다면 이해가 되실라나. 암튼 그랬다.


 도로 숙소에 도착해서 오늘 총 걸은 걸음수를 체크해 보니 27,525보, 20.31km.


 아이고. 삭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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