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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Dec 27. 2023

카탈라냐 음악당에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감상하기

세계문화유산에서 즐기는 오페라의 맛

(이전 이야기에서 계속)


https://brunch.co.kr/@ragony/358




 다음 행선지는 카탈라냐 음악당.

 에스파냐 역에서 빨간 전철라인 L1을 타고 Urquinaona역에 내려 조금만 걸으면 크게 어렵지 않게 카탈라냐 음악당을 찾을 수 있다.


 아니 그런데 정말 이 도시는 스프레이 낙서가 많아도 너무 많아 가는 곳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처음에는 그래 이런 게 유럽 갬성이지~ 했다가 거리가 가진 고유의 멋도 돌 표면이 가진 고유의 질감도 주변과의 조화도 아무 고려도 없이 그냥 훼손해 놓은 꼬락서닐 보곤 낙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괜히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우리나라도 "거리의 예술가" 그래피티 작가를 인정해 줄 시기가 되었다느니 어쩌느니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오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정말 이 바르셀로나 와서 딱 사흘만 있어보라지. 불법 그래피티를 용인하면 도시가 무슨 꼴이 나는지. 내가 느끼는 기분이 어떤 감정인지 이해가 되실 거다. 남의 집 담벼락에 허락없이 스프레이 그림을 그리는 건 그냥 범죄행위다. 설혹 그것이 자기 집 담벼락이라 할지라도 주변과의 경관조화와 어울리고 예술성을 인정받을 만한 실력이 될 때만 "거리의 예술가"로 인정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표면이 페인트도 아닌, 오래된 돌 그 자체인 건물에 저런 식으로 스프레이를 뿌려두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번에 우리나라도 경복궁 담벼락 스프레이 낙서 테러 복구 비용을 수 억대로 추산한다는데, 정말 저런 낙서는 돌을 파내지 않는 이상 복구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옛 건물이 밀집한 고딕지구는 스프레이 테러가 그나마 덜한 편인데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이 위치한 쪽인 라발 지구는 구역감이 날 정도로 훼손 정도가 매우 심했다. 거리에 스프레이 낙서가 아무렇게나 되어 있으면 주변 분위기가 어떤 탈법적 행위를 해도 용인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 대신 "스프레이 낙서의 법칙"이라고 해도 전혀 다른 느낌이 아니다.


 어쨌건 저 눈살 찌푸려지는 스프레이 낙서를 보니 다시금 기분이 안 좋아져서 한 소리 해봤다.



 잘 찾아온 카탈라냐 음악당. 다행히도 이 빨간 벽돌 건물은 아직까지는 스프레이 테러를 당하지 않고 고상한 자태 그대로의 고고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설치되어 있어 연말 분위기가 난다.


 외관부터가 벌써 요란하게 화려하다. "나 좀 잘나가는 교양있는 집" 분위기가 물씬 물씬 풍긴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56695&cid=40942&categoryId=40299



 음악당 내부를 설명해 주는 미니어처인 모양이다. 이 또한 정교하고 예쁘다.



 건물 외부 마감도 이렇게 곳곳에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마무리되어있다. 타일을 쪼개 모자이크로 표현하는 이 기법은 가우디 전매특허처럼 알려져 있지만, 이 건축물은 바르셀로나의 또 다른 천재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에 의해 설계되고 지어진 건물이다. 이 건물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는 가우디의 건축학교 스승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이는 가우디보다 겨우 2살 더 많으며 스승이라기보다 실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동료 건축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는 가우디에 빛에 가려 덜 조망을 받는 느낌이 있지만, 이 카탈라냐 음악당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원이라는 칭송을 받는 산 파우 병원을 설계한 사람이기도 하다.(바르셀로나는 복도 많지. 천재 건축가들이 한둘 거쳐간 도시가 아니다. 덕분에 후손들은 그들의 유산을 관광상품으로 팔아먹으며 잘 산다.)



 계단 난간도 대리석에 핸드레일 기둥 하나하나까지 다 금도금 되어있는 화려함의 극치.



 샹들리에도 고풍스러우면서도 무게감 있고 화려하다.



 자금사정의 압박으로 나는 어쩔 수 없이 꼭대기 층 티켓을 구매해서 입장했지만, 느낌이라도 알고 싶어 공연 시작 전 1층 투어를 잽싸게 다녀왔다. 나도 다음 생애에는 돈 같은 거 계산하지 않고 VIP석 앉아서 공연 볼 수 있는 재력가면 좋겠다.(이번 생애 안에 실현된다면 더 좋겠지만서도...ㅠㅠ)



 그 어디를 바라보아도 화려하다. 역시 무대는... 1층 가까운 자리에서 보는 것이 가장 시야가 좋다.



 2층에서 보면 당연히 1층 보단 멀어지며,



 3층 꼭대기에서 보면... 무대가 멀어서 등장인물들 표정까지 감상하긴 힘들어진다. ㅠㅠ



 그래도 나보다 뒤에 더 많음...



 스마트폰 바우처 만으로도 입장은 가능하지만 혹시 몰라 출력해 간 입장 바우처.

 오늘 공연 작품은 이탈리아인 주세페 베르디가 1853년에 작곡한 "라 트라비아타"라는 오페라이다.


 공연은 당연히 원어(스페인어였는지 카탈루냐어였는지 진짜 원작 이탈리아어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영어는 아니었음)로 진행되었다.

 오케스트라 연주도 훌륭하며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지만...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모르겠다.

 "라 트라비아타" 번역 대본을 스마트폰에 다운받아서 원어와 매치시키며 이해해보려고도 해 봤으나, "폰딧불이" 될까 봐 걱정도 되고 공연도 스토리도 모두 다 놓치겠다. 그냥 무대에만 집중하자.



 공연 중에는 촬영할 수 없었지만, 막간이나 박수타임, 무대인사 진행 시 이 날의 공연느낌을 남기고 싶어 조심스레 몇 장 건져왔다.


 공연 관람 소감.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된 화려함 끝판왕 음악당에서 직접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연주의 오페라를 봤으니 그 어찌 안 좋을 수가 있겠냐마는... 일단, 라 트리비아타 배경지식이 전혀 없어서 스토리를 하나도 따라갈 수 없었고(미리 줄거리라도 공부해서 갈 걸 그랬다.) 오페라를 즐기려면 무대 위 배우들의 표정하나 손동작 하나 몰입해서 감상해야 하는데 3층 관객석은 너무 멀어서... 감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왜 돈 더 주고 비싼 좌석에 앉는 건지 이해가 쏙쏙 되고 온 관람 체험.


 그건 그거고, 이렇게나 화려한 공간에서 음악당 본연의 목적에 맞는 오페라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즐기고 올 수 있어서 인생에서 또 한 번의 럭셔리한 체험으로 기억될 것 같다.



 "어이, 거기 아저씨. 문 닫아야 하니 빨리 나가세요~"



 공연이 마치면 카탈라냐 음악당은 좀 매몰차다. 내부 관람 시간을 조금만 줘도 좋겠구만 금방 쫓겨났다.





 나는 이 줄이 뭔가 했는데, 외화에서 가끔 보던, 공연장에서 외투를 보관해주는 서비스였다.

 공연이 끝나고 본인 외투를 찾으러 가는 줄. 번호표를 돌려주면 직원이 내부에서 옷을 찾아다 돌려준다.

 이런 것도 알아야 다음에 활용하지. 이런 것도 있구나.


 한국에서도 "관크" 및 "시체관극"이 민감한 사회 이슈인데, 겨울에 특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심한 파카류 외투는 일찌감치 외투보관 서비스를 요청하는 것이 본인에게나 타인에게나 모두 좋겠다.



 예술의 공간답게 음악당 앞에는 예술적 조형물도 있었다.

 밤거리 음악당을 비추는 조명도 화려함 그 자체였다.




 하루종일 많이도 쏘다니고 무사히 공연도 마치고 했으니, 이제 늦은 저녁을 먹어야지.

 그런데, 스페인에서 저녁 9시는 저녁식사를 하기 늦은 시간이 아니다. 원래 가장 붐비는 시간이다.


(다음 이야기 : 혼자 즐기는 저녁 만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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