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대 없이 킬링타임용으로 본다면 크게 나쁘지 않은 영화다. 빈약한 스토리라인 치고는 CG도 화려하고 자연풍광도 수려하며 각종 소품도 화려하다. 별점을 매기자면 5점 만점에 3점은 줄 수 있겠다.
대강의 스토리는, 돈에 팔려 매매혼을 하게 된 소왕국의 공주가 사실은 불을 뿜는 드래곤에게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매매된 인신공양 재물인데, 여차저차해서 탈출하고 복수해서 잘 산다는 이야기. 더 자세히 적어본들 개연성도 감동도 없는 스토리라 이 정도만 해도 스토리라인은 충분할 듯.
언제나 그렇듯, 판타지 영화를 이성적으로 접근해 본 영화 감상기
1. 드래곤의 수명은 무한대인가? 번식방식은 무성생식인가, 유성생식인가? 무성생식이라면 왜 재번식을 시도하지 않았나?
- 영화 중반부쯤 왜 드래곤이 인신공양 재물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배경이 나온다. 오레아 왕족의 군대가 드래곤의 마지막 새끼 드래곤 세 마리의 숨통을 끊어버렸는데, 어미 드래곤은 이에 대한 복수로 오레아 왕족의 세대가 바뀔 때마다 세 명의 딸들을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한다.
-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첫째, 최초의 사건이 발생한 지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데(최소 수백 년 이상 - 대사 중 수세기란 말이 나옴) 성체 드래곤이 죽기는커녕 팔팔하다는 거다. 드래곤은 불사인가? 나이 안 먹나?
- 둘째, 드래곤이 왜 한 마리뿐인가? 새끼 셋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걸로 봐선 암컷 같은데 어딜 봐도 수컷이 안 보인다. 드래곤의 외형을 보면 팔다리 4개에 날개까지 있으므로 날개는 다리가 진화한 것으로 치면 머리-몸통-배 + 다리 6개니까 진화 족보로 보면 곤충에 더 가깝지 싶다. 아마도 그래서 짝 없는 무성생식도 가능해서 세 마리의 새끼 출산이 가능했던 것 같은데, 그럼 또 만들면 되지. 전투 중 생식기관을 다친 것 같지도 않은데 왜 번식을 포기해 버렸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원래 무자식 상팔자 노키드 드래곤 성향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자녀를 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단 말이다.
2. 왜 드래곤은 문명 세계를 갖추지 않나?
- 드래곤이 영어를 나보다 잘한다. 발음도 찰지고, 문법도 정확하며 어려운 단어도 꺼리낌 없이 쓴다. 아무하고도 자유자재로 대화를 나누는데, 어떻게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게 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안 나온다. 독학으로 영어를 깨우친 거라면 나보다 머리가 낫다.
- 인간하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지적 수준이 되고, 앞다리를 손처럼 정교하게 쓸 수 있을 정도라면 얼마든지 도구를 만들고 기록을 하며 문명을 갖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는 건 그냥 짐승처럼 산다. 뭐, 원래 본 투 더 자연 드래곤 성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해 주자.
3. 주인공 엘로디는 어떻게 신체를 단련하고 언제 군사훈련을 받았나?
- 후반부로 갈수록 엘로디가 점점 "원더우먼"으로 각성한다.
원더우먼하고 이질감이 없음
- 영화 초중반부 묘사를 보면 엘로디는 어디서도 전투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곱디고운 공주로 길러지다 팔리는데... 장검을 처음 잡아보는 사람이 드래곤의 눈을 정확히 찌르고 드래곤의 발을 관통할 정도의 힘을 쓰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작성 후 의견 추가 : 영화 초반 장작을 패고 있는 엘로디의 모습으로 무기사용에 능하고 체력이 되는 엘로디 설명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있다(정제희 독자님 의견). 다시 생각해보니 의도한 복선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 더불어, 주인공 엘로디는 맨손등반의 달인인데다 외줄타기도 선수급이다.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받고 온 건장한 성인남성도 맨손등반이나 절벽 외줄 오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팔 근육 만으로 신체 전체를 지지할 정도의 근력훈련이 되어야만 가능한데 중세 유럽 왕가 여성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가만 매달리기 조차 할 수 없어야 현실감이 있다.
4. 엘로디 일가 가족 모두는 낙법 천재들인가?
백날 던져 봐. 나 안 죽어.
- 주인공 엘로디 및 여동생 플로리아 모두 오레아 왕국 사람들에 의해 절벽에서 냅다 바닥으로 던져진다. 그런데, 언니도 동생도 가벼운 찰과상 말고는 말짱하다. 정확히 나오진 않지만 절벽 높이는 최소 20m, 건물 높이로 7~8층 이상은 되어 보인다. 저 정도 높이에서 던져지면 즉사하거나 운 좋아 팔다리로 머리와 장기를 보호하는 낙법을 했다 할지라도 여기저기 부러져서 꼼짝도 못 하는 설정이 현실적이다.
- 엘로디 일가 가족 모두가 낙법에 매우 정통한 무술 가족이거나, 아니면 해당 동굴만 중력장 영향을 특수하게 받는 저중력 환경이라면 억지로라도 납득이 가능하다.
5. 드래곤은 어떻게 불을 뿜나? 그런데 왜 자기 불에 자기를 보호하지 못하나?
- 세상엔 온갖 종류의 신기한 생물들이 있으니 불을 뿜는 것 자체에 시비를 걸지는 말자. 전기뱀장어도 있고, 지독한 냄새를 뿜는 스컹크도 있으니, 내가 추측한 불을 뿜는 메커니즘은,
* 소화기관에서 대량의 메탄가스를 생성하고 별도의 내장 주머니에 비축한 후
* 주둥이 근처에서 전기 스파크를 만드는 생체 전기 스파크 메커니즘을 갖추면 단기 화염방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 그런데, 자기 공격수단에 자기 보호기능을 갖추지 못한 진화방식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맹독을 가진 동물들도 자기 독에 자기가 중독되지 않고, 전기뱀장어도 자기가 스스로 감전되는 일은 없다. 드래곤 피부도 두꺼워보이던데 벽에서 반사되는 화염 좀 맞았다고 바로 쿵 쓰러지는 설정은 드래곤을 너무 얕보는 것 같다.
6. 중요한 생물자원의 간과
그러니까, 저 봉지에 든 게 발광생물이자 치유생물이다. 거봐. 가져올 수도 있잖아.
- 영화에는 상처를 즉시 치료시켜 주는 신기한 발광생물이 나온다. 화상을 입고 상처 입은 주인공 엘로디 역시 이 발광생물의 도움을 받아 즉시 상처에서 회복한다.
- 사랑하는 아버지가 드래곤의 공격을 받아 숨이 넘어갈랑 말랑 하고 있는데 그냥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다. 아니, 발광생물 좀 떠다가 살려드려야 하는 거 아님?
- 뭐, 백 번 양보해서 드래곤에게 쫓기는 상황이었으니 그때는 못 그런다 치고, 그럼 나중에 드래곤하고 전투가 다 종료된 다음 집으로 돌아갈 때 이 발광생물을 사회에 알리고 자기 고향에도 가져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자기 상처만 치료 다 했으면 단가? 심지어 정치 지도자(주인공은 원래 소왕국의 공주다) 자리에 있는 사람이 식견과 판단력이 부족해 보인다.
7. 석조건물의 붕괴 이유는?
암만 봐도 외벽이 샌드위치 패널이 아님...
불타는 돌로 지었을 수도 있음
- 영화 말미에 드래곤이 빡쳐서 성에 불을 질러버린다. 그래서 성이 다 무너진다.
- 이상하다. 이 건물, 석조건물이라 모든 내력벽 구성이 돌인데? 불 좀 난다고 왜 석탑이 무너지지? 기둥이 되는 자재를 통나무나 기타 가연성 재질로 썼다면 이해가 되는데 건물 내외부 대부분이 돌로 지어진 웅장한 성이 불 좀 났다고 맥없이 화라락 무너지는 설정은 좀 이해하기 힘들다. 가연성 인테리어 물품만 타고나면 자연진화되어야 더 적합한 설정 아닐까? 밖에선 안 보이지만, 내력 자재가 가연성일 수도 있는 부실한 건물이면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해주자. 뭐, 무너질 만 하니 무너졌겠지. 잘 이해는 안 되지만.
- 새로운 가설을 세워보았다. "하얀 석탄"으로 지은 성. 그러니까, 저 돌 자체가 가연성 돌이라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석탄이 꼭 시커먼 것만 있으라는 법은 없잖아. 아니면 석탄으로 성을 짓고 하얀 페인트를 칠했을 수도 있다.
8. 아이언맨 오마주
- 주인공 엘로디에게 예식 드레스를 꼼꼼히 입혀 주는 장면은 마치 아이언맨에게 슈트를 장착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코르셋과 치마지지대 등이 입혀질 때 위잉~철컥 위잉~ 착~ 하는 전동 효과음이 배경음으로 입혀졌다면 더욱 그럴싸했을 것 같다.
- 엘로디에 입혀준 코르셋은 나중에 결국 원더우먼 짭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해 주는 소품이 되었다. 영화 제목을 "댐즐" 말고, "원더우먼 : 더 비기닝"으로 했었어도 별 이질감이 없었겠다.
어쨌든 이 영화,
스토리 라인도 매우 단순해서 한글 자막이 없어도 이해하기도 쉽고, 자연경관과 소품이 매우 화려해서 보는 맛도 괜찮다. 다만, 앞서 말했다시피 판타지 액션영화를 다큐멘터리로 보면 다 보고 좀 찜찜할 수는 있으니 감안하고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