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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Jun 04. 2024

대통령의 "석유" 브리핑이 별로 반갑지 않은 이유

 폰에서 속보 알람이 요란하게 울린다. 뭐지? 또 전쟁이라도 났나?



 으잉?

 우리나라에서 석유 발견?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 정말? 리얼리? o.O?


 설레는 마음으로 상세 기사를 읽어보니... 허탈하다 못해 쓴웃음이 난다.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시추 확인도 안 되었는데 "물리 탐사 결과"를 과연 대통령 첫 국정브리핑으로 발표할 사안인가.

 내 귀엔 그냥 "2050년에는 대한민국이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수 있습니다." 또는 "우리 아이는 똑똑하니 10년 뒤에는 서울대 의대 갈 수 있습니다." 하는 소리하고 그저 별반 다를게 없이 들리는데.


 온갖 과학적 방법으로 "물리탐사" 후 시추공 확인을 하고 실제 본 사업까지 연결되는 확률은 세계 평균 2% 남짓밖에 안 된다고 한다(정부는 이번 시추 성공 확률을 20%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나는 크게 신뢰가 안 간다).  1/50 확률(단, 정부 추산 20% 확률)이니 전혀 터무니없는 확률도 아니긴 하지만 고작 물리탐사 결과 나온 걸 가지고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할 주제는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다.




1. 주식시장


 허탈해하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주식시장은 불을 뿜는다.

 몇 해전 그래도 미래는 에너지 전쟁이지 하면서 석유 석탄 등 종합 에너지펀드에 투자했다가 -30% 물먹고 손절한 기억이 있던 나는 왜 이렇게 타이밍을 못 맞힐까 투자하면 안 되는 마이너스의 손인가 다시 한번 의심하게 만든다. 흥구석유, 한국석유 등 국내 유수의 석유기업이 상한가(+30%)로 장을 마감했고 전기가스업종 평균이 무려 7.84%나 올랐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대형주도 덩달아 분위기 타서 3~5%씩 막 올랐다. 아니, 세계평균 시추 성공 가능성 2%래두요. 그런데 대통령이 한 마디 했다고 시총 2,000조 원이 넘는 한국 증시가 들썩들썩한다. 내 이래서 주식 가치분석이 별 의미가 없다고 하는 거다...


 계좌에 수집용처럼 모은 온갖 잡동주식은 많기도 한데, 에너지 주식 관련이라곤 한 주도 없는 나는 또 의심이 든다. 과연, 이 엠바고는 어디까지 지켜졌을까. 이 발표를 하는 당국과 정보취급자는 정말 석유주를 사전에 한 주도 매입하지 않았을까. "물리탐사" 조사를 하고 보고를 하고 브리핑 자료를 준비하던 관계자들이 아무리 적게 추산해도 수백 명은 되지 싶은데 과연 이 따끈한 정보를 친척, 친구에게 일체 함구하고 석유주를 단 한 주도 사지 않았을까? - 그럴리가 없잖아. 정보라인에 관계된 누군가는 오늘 따끈따끈한 증권계좌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자기 이름만 피하면 되지. 그거 뭐 크게 어려운 일이라고. 왜 내 주변에는 이런 고급정보 알려주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물론 정보를 미리 안다고 주식 살 돈도 없긴 하지만... 암튼 상한가 가 있는 석유주를 바라보고 있으니 배는 아프다. 아이고 배야.


 오늘 발표를 보고 있자니 과거의 한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아는 지인 중 한 명이 연료전지 유관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뻔질나게 산업부를 들락날락하는 거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허구한 날 정부청사를 가는 거냐 물어보니, 정부에서 수소 관련해서 큰 정책을 준비 중인데 산업 실무자의 조언이 필요해서 하루를 머다 하고 사무관에게 불려 가는 거란다. 아이구, 피곤하겠네. 돈도 안 줄텐데 힘들겠네. 그러고 말았는데, 한 달쯤 뒤 정말 초대형 수소경제 진흥정책이 발표되고 국내 수소 관련주는 모조리 급등을 했다. 아... 쓰.... 나는 뭐 했지. 아휴 이 ㅂㅅ....

 암튼 정책발표 선상에 누군가 고의로 정보를 누설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저런 식으로 어떻게든 주변 지인들에게 정보가 샐 텐데, 미리 알고 떡고물 챙긴 사람들은 좋겠다. 떳떳한 소득이든 말든 나는 그냥 부럽다.


 여기서 스쳐지나가는 소설같은 의심.

 이거, 정부가 정치 비자금 만들려고 거국적인 작전주 만드는 거 아닐까? 마침 도이치모터스....



2. 언론 동향

 대통령 국정 브리핑을 언론들은 어떤 자세로 전달하나 살펴보자.


 먼저 KBS.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1734018?cds=news_media_pc

 별 사족 없이 딱 브리핑 내용만 전달하고 있다.


 이번엔 중앙일보.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364545

 정부의 기대찬 어조에 힘주어 전달했지만 야당의 비판적 시선도 살짝 같이 실었다. 긍정:부정 = 5:1 정도의 느낌.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4/06/03/5BECBHPCLBBKFCYRU4MHGAM4IY/?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비판목소리는 일절 없고 정부 브리핑 요약만 담았다. 역시 정부 나팔수.


 매일경제.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313494?cds=news_media_pc

 아주 내일 당장 산유국 등재할 기세다. 성공 시 경제효과를 매우 자세히 추산했으며, 성공률이 20%에 달한다며 정부랑 같이 기대에 들떴다.


 오마이뉴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35496?cds=news_media_pc

 왜 이걸 "대통령"이 발표하는지, 정말 신빙성은 있는지, 다른 꼼수는 없는지 의심하는 비판조의 기사.


 어쩜 같은 기사를 보도하는데 이렇게 색깔들이 다를까나.



3. 데자뷔

 나는 오늘 발표가 1976년 박정희 대통령 영일만 석유발표의 판박이처럼 느껴진다.



 그때 대통령이 정말 "석유시추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보고 받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 연두 기자회견에서 직접 밝힌 건지, 아니면 떨어져 가는 대통령 지지율을 반전시키고자 작심하고 기획발표를 한 건지 작전주 세력에게 속은 건지 어떤 건지 나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오늘 대통령의 석유 발표는 어째 48년 전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이래놓고 석유 안 나오면 또 똑같은 해명을 내놓겠지. "석유 탐사는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고 기다려달라"고 살살 눈치를 보며 간을 보다가 국민의 관심이 멀어질 때 쯤 "포항 석유는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돼 시추를 중단했다"고 단신으로 숨겨서 어물쩍 넘어가겠지.


 



 아니, 대통령이 거짓말 하는것도 아니고 왜 그리 부정적이요?


 하실수도 있겠다. 누가 거짓말 하신댔나. 그냥 내 눈엔 데자뷔로 보인다는 것뿐인데.


 나도 우리나라가 산유국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한때 동해 가스전에서 가스 생산을 할 때 누군가가 우리나라를 지칭해서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라고 표현하면, 내가 콕콕콕 꼬집어서 "우리나라, 국제에너지기구에 등재된 산유국입니다. 지금도 천연가스 뽑고 있구요, 소량이지만 원유도 같이 나와요."하고 고쳐줬다(사실정보에 매우 민감한 성격임). 동해가스전이 상업시추를 중단할 때 나도 마음이 아팠다. 땅에 빨대만 꽂으면 돈이 나왔는데 그거 조금 빨았다고 벌써 고갈이라니. 나라가 부강해야 나도 잘 살 텐데.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우리나라가 산유국이길 바란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나는 정책발표는 "급"이 있고 "급"을 직책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인데, 오늘 발표가 대통령발 정책 브리핑이라 너무 뜬금없이 느껴질 뿐이다. 국정 방향을 발표하는 담대한 전략도 아니고 국민 통합의 메시지도 아니고 시추 시작도 안 한 단순 가능성의 "물리탐사" 결과를 가지고 대통령 발표라니.


 그럼,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세계 최고 효율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광 발전소자 개발 논문을 발표했다고 대통령이 "우리나라는 10년 내 태양광 일류국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발표하거나 해외개발사에서 타당성 조사를 완료했다고 "고창에서 금광 개발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발표하는 건 어떤가. 다 거짓말은 아니고 사실에 근거한 희망찬 발표 아닌가. 아니면 "우리 국민들이 술담배를 줄이고 건강식을 먹는다면 성인병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는 또 어떤가. 계몽적이고 희망적이지 않은가.


 후술한 단락에서의 예가 "대통령"의 "브리핑" 자료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 급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적이지만 계산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정책이라기보담 단순 정보전달. 이런 류의 정보는 대통령의 브리핑 자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대통령 브리핑 자료는 신빙성이 높아야 하며 국가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거나 국민 신뢰를 제고할 수 있는 중차대한 급으로 선정되어야 맞다고 생각한다. 그게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직무이자 의무 아닌가. 아니 저런 "카더라" "있더라" 류의 아주 낮은 확률의 정보 발표를 대통령이 직접 한다는 게 나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러다 "아님 말고" 할거 아닌가.


 내가 산업부 장관이라면 절대 저 브리핑을 대통령에게 건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관이 발표할 급도 되어 보이지 않는다. 잘해야 산업부 대변인 정도가 단신으로 짧게 보도하고 시추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너무 높이지 않는 선에서 정보전달 정도로 끝냈어야 할 브리핑이라고 생각한다. "물리탐사 결과, 가능성을 타진할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 시추를 통해 조심스럽게 확인해보겠다(안 나와도 실망하지 마시라)" 정도의 어투가 적절하다.


 크게 신뢰도 가지 않는 대통령 브리핑 한 마디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들썩하는 모양새가 영 불편해서 내가 느끼는 바를 꺼내봤다.


 우리나라 대통령님은 대체 왜 이런 급 낮은 브리핑을 직접 하겠다고 하셨을까?

 지지도가 낮아서? 주식시장이 한국만 안 올라서? 채상병 특검 덮으려고? 힘든 국민들에게 그래도 며칠이라도 희망을 주려고? 기쁜 소식을 온 방만에 빠짐없이 전하고 싶어서?


 난 정말 모르겠다.


 아마 며느리도 모를거다.(아참. 아직 아들이 어려서 며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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