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Sep 12. 2024

파키스탄에서 잔치국수 해 먹기

쉽지만 쉽지 않은...

 사실 잔치국수는 요리 난이도가 크게 높지 않은 음식.


 육수만 잘 내고 간 맞추고 적당히 고명만 얹으면, 아니, 고명이 없으면 고명을 얹지 않아도 육수맛과 국수맛으로 먹을 수 있는 적당히 딱 설계한 맛이 날 수밖에 없는, 별로 실패할 이유가 없는 요리.


 나는 파키스탄 지사 파견 한국인.

 참 다행히도, 이곳 파키스탄 지사에는 한국인 파견자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주시는 현지 파키스탄 국적의 조리사님이 계셔서,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의 식사를 한식 비슷하게 챙겨주신다. 파견 오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현지식으로 적응하며 먹겠다고 각오하고 왔는데, 100% 똑같은 한식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요리재료로 한식 분위기를 내어 만들어주시는 식사에 감동해하며 감사히 먹고 있는 중이다.


 오늘 요리는 어쩌다 특식. 잔치국수.


 "조리사님, 그간 유튜브 보며 힘들게 한식 만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오늘은 간단히 잔치국수 해주세요. 제가 지난번 한국 휴가 때, 국수도 적당히 업어왔어요."


 적당히 조잘조잘 육수는 이렇게 내고, 간은 너무 짜지 않게 국간장으로 살콤 간하면 된다고 알려주고, 계란 지단 만들어 샥샥 고명 만들고, 애호박 어슷썰기 해서 데쳐 올리면 된다고 조리법 교육 완료.



 오~ 비주얼 비슷하고~


 몸은 멀리 있지만, 그래도 한국 분위기 납니다. 나름 김치도 있어요.


 행복한 마음으로 앙~ 국수 한 젓가락 옹큼 집어 입에 넣는데....


 이게 뭥미. ㅡ_ㅡ;


 아니 비주얼은 그럴싸한데, 이게 무슨 맛인감....

 맛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맛이 무맛(無味)일세.... 이상하다 비주얼은 비슷한데?


 "저기, 조리사님. 이거... 어떻게 만드셨나요? 왜 육수가 아무 맛이 안 나죠? 제가 알려드린 대로 한 거 맞나요?"


 "네. 그럼요. 알려주시는 대로 드라이 앤초비(멸치)로 국물내고 소이 빈 소스(간장)로 간 맞추고 다 했어요."


 "이상하다... 그럼, 맛이 안 날 리가 없는데....? 혹시 육수용 멸치는 얼마나 쓰신 건가요?"


 "3인분이니까, 세 마리 넣고 끓였어요. 앤초비(건멸치)는 귀한 식자재니 함부로 쓸 수 없잖아요."


 ".................................................. ㅡㅡ;;;;"


 어쩐지. 그래서 멸치가 헤엄치다 간 맛이었구나...... ㅠㅠ


 "조리사님. 멸치 다 떨어졌다고 뭐라 안 할 테니까, 다음에는 냄비 바닥이 소복이 쌓일 정도로 넣고 육수 만드셔야 해요..... ㅠㅠ"


 건멸치가 이곳 파키스탄 카슈미르에서 매우매우 귀한 식재료긴 하지. 귀한 게 뭐야. 아예 구할 수도 없다. 건멸치 만져본 적도 없는 현지 조리사님이니까 고이고이 아껴 쓰신 거.

 어쨌든, 잔치국수 안 만들어본 외국인 조리사님께 손수 시범을 보였어야 했는데 설명을 너무 대충 했다.

 암튼 그날 잔치국수는 간장맛 김치맛으로 먹긴 했지만 아쉬움이 매우 컸음. ㅠㅠ


 그렇다고 매번 건멸치를 식수 인원수대로 한국에서 업어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대책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해물 육수코인"을 업어오는 걸로.


 "자, 조리사님. 이제 1인분에 요거 코인 한 알씩이에요. 이젠 아끼지 마세요~"


 ^_^


 그래. 이 맛이지. 이제 좀 잔치국수 맛이 나는구나.


 요즘엔 해물 육수 코인덕에 꽤나 비슷하게 잔치국수 맛 내어 먹고살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육수 코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