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펜도 쓰긴 써요
오늘 가만 책상을 물끄러미 보다가 생각난 글감 하나.
파키스탄은 한국과 또 뭐가 다를까.
오늘의 주제. 파란펜 입니다.
한국에선 회사나 관공서에서 수기 결재 또는 양식 기입 시 검정펜이 기본입니다. 튀기 싫어하고 가장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흑백 문서의 기본이죠. 흰색은 종이구나. 검은색은 글씨구나. 마음이 평온해지는 색입니다.
어쩌다 파란색을 쓰는 경우도 있고, 결재라인에서 용인되기도 합니다만, 내가 최종 결재권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지간히 강심장이 아닌 한 잘 쓰지 않습니다.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고, 괜히 튀는 것 같거든요.
파키스탄에선 도장문화가 별로 없습니다. 관공서나 회사 스탬프가 있긴 하지만, 개인의 동의나 승인을 뜻하는 문서에는 본인 자필서명만 취급합니다. 저도 제 개인도장이 있긴 하지만, 그건 대외문서에 문서 권위를 높일 때나 사용하며 그때에도 자필 서명은 꼭 따라붙습니다. 어쨌든, 파키스탄에서 자필 서명의 항상성은 중요합니다. 오른손으로만 서명을 하다 손을 다쳐 서명을 못 하면 은행 가서 체크북 서명이 안 돼서 돈을 못 뽑을지도 몰라요.(테스트는 안 해 봤습니다만.)
파키스탄에서는 검은펜을 발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구하려고 하면 안 파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관공서, 은행, 회사 등 필기하려고 주변을 살펴보면 파란펜만 있습니다. 손글씨는 파란펜이 무조건 기본입니다.
왜 그럴까요?
누가 설명해 준 건 아닌데, 손글씨를 파란펜으로만 쓰면 장점이 명확히 보입니다.
1. 어디가 프린트 한 양식이고 어디가 손글씨인지 매우 직관적으로 구분이 됩니다.
2. 흑백 복사지의 경우, 원본과 복사지의 구분이 매우 쉬워집니다. (요새 컬러 복사기는 성능이 하도 좋아서, 원본과 복사본의 구분이 어렵긴 합니다...)
3. 결재권자의 권위가 조금 더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 파견나와 문서를 접할 땐 이게 무척이나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검정펜으로 결재하려면 다시 또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질 것 같네요.
한국은 왜 파란펜을 결재문서에 사용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아마도 모난 돌이 정 맞는 꼴을 많이 봐와서 문화적으로 학습된 "튀면 안 된다" 성향으로 결재문서도 관공서 문서도 묻어묻어 묻혀 가려고 검정펜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살콤 들긴 합니다.
파란펜을 공식 수기문서로 사용하는 관행이 파키스탄만 그런건지 얼추 대충 월드 스탠다드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혹여 외국에 사시는 분들 그 나라는 어떤 문화인지 댓글로 알려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비슷한 것도 많지만 다른 점도 참 많은 파키스탄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