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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Oct 09. 2024

이동금지령이 떨어졌다

이동금지는 테러범한테 내려야지 나한테 왜?

 지난 일요일 밤(2024.10.6.), 파키스탄 인구 최대도시 카라치 인근의 공항 근처에서 중국인을 겨냥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중국인 2명이 사망, 1명이 부상당하고, 파키스탄인 10여 명이 부상당했다. 주말 내내 정치시위 한다고 전국이 봉쇄되고 통신차단되고 최루탄 난무하는 등 엉망이었는데, 거기에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다.


https://www.seoul.co.kr/news/international/2024/10/07/20241007500073?wlog_tag3=naver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410051219001




 오늘 오전에 지사 보안 담당관해당 부서 매니저가 아주 심각한 얼굴로 내 방에 찾아왔다.



"지사장님, 긴히 보고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니, 왜 또 무섭게 심각한 표정으로 각 잡고 그래요? 편히 말해봐요."


"정부에서 이동금지령이 떨어졌어요. 파키스탄 내 모든 프로젝트 사이트 외국인 근로자 대상으로요."


"나 중국인 아닌데? 나 말하는 거 맞아요?"


"예. 이번에는 중국 프로젝트는 물론, 외국인 투자 프로젝트 모두를 다 포함하는 것 맞습니다."


"어디, 지령문서 함 봅시다."


이만코 저만코 해서 0일 부로 향후 00일간, 모든 프로젝트 사이트 내 외국인 근로자의 이동을 금지함. 비상상황이라 판단될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이동 허용. 단, 모든 이동에는 방탄차를 사용해야 하며 경호차량의 호송이 필수임. - 정부 아주 높은 사람 백 -


 아따 문서 하나 심플하네. 일 참 편하게 한다. 합의문도 근거도 규정도 없이 정말 저렇게 서너 줄이 전부임.(길지 않아 읽기는 쉽다. 물론 영어로 왔다.)

 ㅡ_ㅡ;



"이거 진짜 효력있는 문서 맞아요? 지난번처럼 또 페이크 아녜요?"


"ㅇㅇㅇ 커맨더로부터 직접 온 것 맞습니다. 확인 거쳤습니다."



[본문과 상관없는 지나가는 글 : 내가 정부 공문도 잘 안 믿는 이유]

https://brunch.co.kr/@ragony/283


 정부 긴급행정 조치라니 따르긴 따라야지. 해당 문서는 지자체는 물론, 전국의 군대와 경찰에 쫙 뿌려졌을 것이다.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따르고 말고 할 선택지가 없다. 아니, 시대가 2024년 하고도 10월인데. 의회 내각 민주주의 국가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이동금지령"이라니. 내가 정부 인질이냐고. 하아. 한숨이 나온다.


 사실, 평상시에도 운전사와 호송차량, 무장경찰을 주렁주렁 달고 무겁디 무거운 방탄차로 이동하는 게 귀찮아 아예 개인적인 외출 자체를 안 하긴 한다. 그래서 이동금지령이 내리든 말든 내게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다만, 이 조치는 그래도 기업이 해야 할 필수업무 처리는 물론, 매 주말 도시를 오가야 하는 가족동반 파견 팀장들에게 문제인건데 암튼 당분간 꼼짝없이 이산가족 만들 수밖에 없겠다. 안타깝지만, 내가 지시한 거 아님.


[지나가는 글 두 번째 : 방탄차는 불편합니다.]

https://brunch.co.kr/@ragony/432


 그것 말고도 출장자, 휴가자 일정도 조정해야 하며, 각종 대외미팅 및 행사 스케줄도 싹 다 바꿔야 한다. 한 달 전부터 촘촘하게 계획 짜 놓은 게 다 말짱 도루묵일세. 행사장 위약금 달라고 할 텐데... 불가항력이라고 우겨볼까... 아, 머리아파.


 테러가 발생하면 테러범 때려잡고, 테러범을 이동금지 시켜야지 왜 우리 같은 외국인 투자자를 꽁꽁 묶어놓고 그래. 어차피 맘대로 돌아다니라 그래도 불안해서 거의 안 나간단 말이다. 그래도 안 나가는 거랑, 못 나가는 거랑은 다르지. 다르고말고.


 며칠 전에 물, 전기, 인터넷 걱정없이 24시간 마음대로 누리고 살 수 있는 삶에 감사하자고 썼는데,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https://brunch.co.kr/@ragony/457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오늘도 평화로운... 파키스탄 라이프...







 덧붙이는 글.


 파키스탄에서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좋은 편이다.

 대한민국은 몰라도, BTS와 오징어게임은 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블랙핑크 팬도 많다. 삼성과 LG는 최고급으로 쳐 준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팔리기는 하지만 아직 토요타나 스즈키에 비해 아직 마켓셰어가 높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이미 다수의 한국 기업이 파키스탄에 진출해서 한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대한민국 기업이 추진하는 각종 투자사업도 중국처럼 자국에서 수많은 노동자를 데려오는 방식이 아닌 자금만 투자하고 현지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이라, 자국 일자리를 뺐어간다는 오해와 저항도 받지 않으며 얼마 안 되는 관리자들 역시 현지 근로자와의 유대감도 좋은 편이라서 한국인 투자자를 멸시하거나 증오하는 분위기는 거의 없다.


 다만, 세계 어딜 가나 그렇듯, 여기서도 반중감정이 있는데 지역 중 특히 발루치스탄 쪽이 심하다. 발루치스탄 사람들 중 일부는 중국에 의한 투자사업을 자원수탈로 인식해서 가급적 중국의 직접투자를 막고자 하며 투자사업을 방해하기 위한 수단이 테러인 것이다.(그렇다고 반중감정이 민심을 대변하는 대중적 감정은 또 아니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친중성향을 가지고 있고, CPEC-중파경제회랑-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문제는, 한국인의 외모가 중국인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 예전엔 옷차림이나 장신구 등으로 구분하는 팁이 있었는데 중국의 소득 수준이 올라오면서 한국인인 내가 봐도 말 걸기 전까진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장 걱정하는 것이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착각한 오인 테러"이다.



 대사관에서도 이런 이슈를 잘 아는지라, 특별히 "중국인 대상 운송서비스"를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 안내를 보내준다. 한국이 파키스탄과 수교를 맺고 각종 투자사업을 진행하면서, 여태껏 현지 테러집단이 한국인을 상대로 표적테러를 저지른 일은 없었다. 하지만, 반중감정이 자꾸 격해질수록 중국인과 외모 차이가 거의 없는 한국인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워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여간 별로 정이 안 가는 중국이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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