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하며 먹었던 인생 쌀국수
(전편에서 계속)
https://brunch.co.kr/@ragony/471
2024년 11월 9일 토요일, 런던에서의 이야기.
런던 히쓰로 공항(Heathrow Airport)에 무사 도착하고 친누나도 무탈히 만났습니다.
혹여 길이 엇갈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출국심사 후 나오는 길이 어차피 짐 찾는 곳이라 크게 엇갈릴 일 없었어요.
이제 숙소를 찾아갑니다.
숙소는 부킹닷컴에서 찾은 원룸입니다. Jubilee 회색라인의 Swiss Cottage역 근처에 있어요.
히쓰로 익스프레스를 타면 런던 시내까지는 20여 분 만에 빨리 오지만 어차피 또 전철을 갈아타야 해서 그냥 처음부터 엘리자베쓰 라인을 탔습니다. 가격도 훨씬 싸고요.
주의할 점은, 히쓰로 익스프레스와 엘리자베쓰 라인은 승차 플랫폼이 똑같기 때문에 무슨 기차가 오는지 유심히 잘 보고 타야 한다는 점이에요. 오는 거 아무거나 탔다간 무단승차로 걸려 벌금낼 수 있습니다.
Bond Street역까지 가서 역 이름 확인하고 환승합니다. 스크린 도어도 없고 한국보다 좀 더 낡고 지저분한 느낌이 있지만, 한국 지하철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영국 지하철은 1호선 2호선 숫자로 부르지 않고 라인마다 고유 명칭이 있습니다. 미리 자주 이용하는 호선 이름을 숙지하고 있으면 이용하기 더 편리할 것 같습니다. 은근히 헷갈리거든요. 영국 지하철은 Tube라고 불립니다. 호선마다 열차 모양과 크기가 다른 게 신기하군요. 왜 Tube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 지하철에 비해 상당히 열차 크기가 작구요, 열차 플랫폼도 열차도 다 파이프마냥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서 Subway란 말보단 Tube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에요.
Swiss Cottage역에 잘 내렸습니다. 역 이름 재미나네요. 런던에서 "스위스 오두막 역"이라니.
런던 중심지는 아니지만 무서운 느낌 안 듭니다. 그냥 평범한 변두리 마을 같습니다.
원룸에 바로 갈 거니까 근처 마트에 들러 물이랑 요거트랑 사과 샐러드 패키지 등 기본적인 먹거리 조금 사구요,
이제 5일간 묵을 집 찾아갑니다. 집주인은 제가 런던 오기 전부터 왓츠앱으로 원격 체크인 안내를 꼼꼼히 해 줍니다. 친절했어요.
https://maps.app.goo.gl/uXW1qcawXd6YRH487
거의 똑같이 생긴 집들이 한 블록 가득히 있었어요. 외관도 깔끔한 편.
건물 전체를 임대를 염두에 두고 지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키 박스에 미리 알려준 번호를 맞추면 실물 키를 꺼낼 수 있었어요. 저희는 32호실에 배정. 디지털 시스템 같으면서도 결국은 아날로그. 한국처럼 방문마다 디지털 키를 설치하면 서로서로 훨씬 편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없고 가파른 계단길입니다. 트렁크가 무겁다면 힘들겠어요.
생각했던 것보단 조금 좁긴 했지만, 어차피 잠만 자고 나올 집이라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욕실도 깨끗했고 냄새도 안 났고 포크, 스푼, 접시, 냄비, 컵, 인덕션 레인지, 싱크대 등 기본적인 취사도구 다 갖춘 올인원 룸이라 가격대비 만족하고 지냈습니다. 라디에이터 난방도 잘 되어서 밤에 춥지도 않았구요. 라디에이터는 속옷 손빨래하고 건조대로 요긴하게 잘 활용했습니다. 밤에 빨아놓고 자면 다음날 잘 말라 있었지요. 기타 기본적인 타월, 화장실 휴지, 싱크대 설거지 세제도 비치되어 있었지만, 세탁기용 세제는 따로 가져가야 했습니다.
세탁실은 1층에 공용으로 있었지만, 대충 속옷만 손빨래하고 살아서 퇴실할 때까지 이용해보진 않았어요.
전철역이랑도 가깝고 근처에 마트와 식당도 많고 도심지에서 약간 거리가 있다는 거 빼면 괜찮은 숙소였습니다. 깔끔하고 온수도 잘 나오고 수압도 시원시원.
다만, 저는 초겨울에 방문해서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에어컨디셔너가 없는 방이니 여름에 가실 분들은 무지무지 더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Charmstay Swiss Cottage 숙소 소개는 대충 끝.
여름에 가실 거 아니라면 가성비 숙소로 추천드리고 싶네요.
숙소도 찾고 짐도 풀고 했으니, 저녁 먹으러 갑니다.
근처에 봐 둔 평점 좋은 쌀국수집 가기로 했어요.
영국까지 와서 무슨 쌀국수? 그치만 런던에 5일 동안 있을 거니 영국 시그니처 메뉴는 천천히 먹고 일단 국물 있는 뜨끈한 요리가 먹고 싶었습니다.
[구글평점 4.7점의 Pho Ta 베트남 식당]
https://maps.app.goo.gl/pWXsYUVDZnRaMGst6
구글 평점 높은 식당답게 늦은 시각이었음에도(대충 밤 9시) 손님이 많았습니다.
웨이터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아 메뉴를 찬찬히 봅니다.
메뉴판은 안 찍어왔군요. Pho가 쌀국수란 건 알겠는데 Pho가 너무 많습니다. 기본 메뉴인 Beef Pho 두 개를 시키려다가 Pho Special 어쩌고가 있길래 이게 기본 Pho와 뭐가 다르냐 물어보니 Pho에 쌀밥(Steamed Rice)도 같이 준다고 합니다. 국수만 먹으면 혹시 배고플까 봐 하나는 기본 Pho를 시키고 하나는 스페셜 Pho로 시켰는데 소통 오류입니다. 내가 영어발음이 안 좋았나? 베트남 현지인 웨이터가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그래서, 외국인을 상대하는 모든 식당은 제발 좀 메뉴명+사진으로 구성된 메뉴판을 제공해달라고 울부짖고 싶습니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이던가요?
암튼 하나는 익숙한 쌀국수가 맞는데 Pho Special 어쩌고는 쌀국수가 아닙니다. 익힌 쇠고기에 양념한 요리가 나옵니다. 양념은 맵지 않고 달고 짠 스테이크 소스 맛. 오히려 좋아. 한국인 입에 거부감 없이 잘 맞는 훌륭한 맛입니다. 여기에 고봉밥 한 그릇도 따라 나오네요. 아니 이걸 어케 다 먹어. 2인분이라 해도 양이 너무 많습니다.
쌀국수에 이렇게 고기를 잔뜩 넣어 주는 집은 처음입니다. 국수보다 고기가 양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고기 양이 줄지가 않습니다. 마감시간에 갔다고 그날 남은 거 다 줬나 싶을 만큼 많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쇠고기 쌀국수 하나만 시켜 둘이 나눠 먹어도 충분했겠다 싶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배가 터질때까지 포식하고 왔습니다.
고기 먹다 보니 고봉밥은 손도 못 대서, 포장해 달라고 해서 들고 왔습니다. 냉장고 뒀다가 며칠 뒤에 라면 말아먹었죠.
요리 두 개에 31.3파운드 결제하고 왔습니다. 한화 약 5만 6천 원.
한화로 환산하면 2인분에 비싼 느낌이 없진 않지만 런던에서 식당 한 끼 15파운드 밑으로는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맛과 양, 아늑한 분위기 생각하면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베트남 상징이 된 삿갓 모자 농라도 여기저기 걸려있고 벽에 베트남 그림도 있네요. 오래된 나무 중심의 인테리어에 분홍 벚꽃으로 중앙홀이 인테리어 된 것도 특색이 있습니다. 음식 맛있고 그리 안 비싸고(영국 물가 생각하면) 인테리어 아늑하니 맛집으로 추천할 만합니다.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어 살짝 들렀습니다.
오오오~ 신기하게 한국 라면을 잔뜩 파는군요.
끓여 먹기는 좀 귀찮고, 컵라면을 샀습니다. 진라면 순한맛은 없고 매운맛만 있길래 아마도 진라면 순한맛이 수출하면 매운맛이 되나 보다 하며 샀는데 진짜 매운맛 맞았습니다. 신라면보다 더 매웠어요.
진라면 매운맛 가격은 개당 2.29파운드였습니다. 한화로 4,120원... 한국에서 천 원대 초반이면 살 수 있는 가격 생각하면 무시무시합니다만 파는 게 어디냐며 두 개 샀습니다. 500cc 오리지널 기네스 맥주는 1.99 파운드, 한화 3,600원 하는군요. 런던 생활물가는 비쌉니다. 많이 비쌉니다.
암튼 배가 터져라 든든하게 먹고, 비상식량도 잘 꿍쳐놓고, 든든한 마음으로 런던에서의 첫날을 마감했네요.
※ 다음 이야기 : 스톤헨지(Stonehenge) 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