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지 않는 순례자, 그에 대한 고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21일 차, 호스피탈 데 오르비고 아스트로가 그리고 폰세바돈
순례자의 자격
아침 8시
이젠 고정되어버린 내 출발 시간이다. 늘 조금만 더... 이러며 미적거리다 누구보다 제일 늦게 일어나 준비하고 나온다. 걸음을 막 시작하려는 찰나, 수비리(Zubiri) 에서 알게 된 모녀를 만났다. 부산에서 온 이 모녀는 우리에게 누구보다 사근 하게 대해주셨고, 함께 식사도 종종 하며 레온에서 에어비엔비를 잡았을 때 초대하여 같이 어울려 놀기도 했었다. 이들은 얼마 전 한 차례 큰 시련을 겪었다. :-(
걷는 중 동키 서비스 ( 짐 운반 서비스)를 이용하여 가방을 보냈었는데, 문제는 그 가방이 분실되어버렸다. 순례자의 전부인 그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상황은 이전에 들어본 적도 없는 사고였다. 어찌 보면 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자체를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산 모녀는 포기하지 않고 근처 대도시에서 당장 필요한 것들만 구비하여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고 한다!! 참 황당한 경우인데, 영어가 쉽게 통하지 않는 스페인 환경과 순례길에서 있을 다양한 상황은 이 어이없는 경우가 가능하기도 한가보다. ( 사실 여전히 이해되진 않는다 )
따라서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보내는 곳, 받는 곳의 주소지와 연락처를 확실히 확인하여야 하고 운반되는 가방의 사진, 영수증 사진 등 흔적이 될만한 것은 최대한 남겨두어야겠다. 사실 어디서 어떻게 분실되었을지를 생각해봐도 도저히 가늠되지 않는다. 도난 사고가 아니고선 말이지.
부산 모녀는 의지를 잃지 않고 순례길을 걷던 중이었으나, 와중에 조금 지치는 시기였나 보다. 오늘 이곳 [ 호스피탈 데 오르비고 ] 에선 아스트로가 까지 버스로 이동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같이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가서 밥을 먹자는 어머니의 친절한 그 말씀에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ㅠㅠ). 어찌 어머니의 말씀을! 하며 ( 하지만 사실 뜻밖에 찾아온 행운이자 게으름이 맞았다) 내 발걸음은 순례길이 아닌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때는 이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고 각자의 삶을 나누는 게 더 즐거웠다. 이 또한 순례길의 묘미라고 애써 자신을 합리화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 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쉬운 결정이다. 이후 여정에서도 만날 일은 많았고 심지어 한국에 돌아와서도 재회할 수 있었다. 오늘따라 왠지 게으름 피우고 싶었던 그런 날, 마침 기회가 생겼을 때 바로 탑승해버렸다.
순례자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이 길을 시작하며 택시, 버스, 기차 그리고 마차까지. 모든 운송수단을 모두 체험해보았다. 이게 비록 산 페르민 축제를 위해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더라도 결국 모든 운송수단을 사용하며 과거의 순례자들에 비해 편리하게 이동한 것은 사실이다. 까미노 단톡방이나 블로그 글을 보면 종종 "점프"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온전히 두 발로 이 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마치는 것만이 진정한 순례라느니, 동키 서비스는 인정되지 않는다느니 등의 말들. 사실 어디까지나 모두 개인의 의견이기에 존중받아야겠지만 오늘 나는 나의 결정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 버스를 타고 도시 몇 개를 이동해 덜 힘들고 편리하게 이동했다는 점이 아쉬운 게 아니다.
내가 아쉬운 점은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들, 예를 들어 중간중간 나오는 바, 오며 가며 만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동지들 ( 그들과 나누는 부엔 까미노 그리고 스몰 톡 포함) 그리고 무엇보다 각 구역을 대표하는 쎄요(도장) 까지. 20분의 버스 이동으로 이것들을 놓쳤다. 그리고 그 길에서만 남길 수 있는 여러 사진들. 요즘도 난 이때 사진들 보며 종종 추억에 잠기곤 한다. 모두들 마찬가지겠지요?
수단과 상관없이 이 길 위에 있었다면 우린 모두 순례자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통과해왔을 뿐 그 안에서 만들 수 있었던 우리의 추억, 동지들 그리고 고이 간직된 산티아고 순례길 사진들까지. 놓친 부분도 존재할 것이고 체력을 보충하여 끝까지 완주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수 있다. 부디 어디선가 이를 주제로 또 다른 논쟁이 펼쳐지지 않았으면 한다.
20분과 4시간
버스를 타고 아스트로가에 도착했다. 16km의 거리가 약 20분 만에 도착한 것이다. 동화 같은 마을 아스트로가에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출발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약 4시간을 걸어온 걸음. 나의 나약함으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인간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4시간이 걸려 걸어올 거리를 바퀴 4개 달린 운송 수단으로 몇 배의 시간을 단축하여 이렇게 오게 된다니. 참...
아스트로가는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 같았다. 곳곳에 칠해질 벽화부터 가우디의 흔적들이 있었고, 마을 자체가 참 이쁘게 꾸며져 있었다. 마을을 구경하며 우연히 어제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렀던 프랑스 친구들을 만났다. 유독 캐나다에서도 프렌치 친구들이 많아서인지 이들을 보면 더 반갑게 느껴진다. 아쉽게도 이 친구들의 여정은 아스트로가에서 마친다. 일주일 동안 순례길에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친구들. 여전히 이름을 발음하긴 어려웠지만 이들과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나길 바라며 웃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난 또다시 버스를 탔다...
정말 정말 왜 그랬을까...
아스트로가에서 한참을 머물며 박물관도 둘러보고 성당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을이 워낙 이뻐 곳곳에 사진 찍을 곳 투성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을 만나니 이미 결정된듯한 이야길 했다. "터미널"로 가자고. 으응,,,? r u serius? 아스트로가까지 걸어온 길이 워낙 지루했다고 한다. 그리고 왜인지 다들 걷고자 하는 의욕이 없었다. 일종의 권태기 같은 느낌이었을까? 어처구니없게도 버스로 2차를 했다. 오늘 걸음이라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걸음과 마을 구경하는 걸음이 전부라니.
혹여 아직 순례길을 걷기 전이라면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내가 지금 버스를 타면, 나중에 후회 안 할까?"
반드시 걷는 것만이 순례길이라는 말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놓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은 순례길을 마친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다. 아마 다음 순례길에선 이동수단에 대한 미련은 더 이상 없을듯하다. 바퀴는 물론 말까지 타봤으니 이쯤이면 정말 처음 목적 그대로 "할 수 있는 한 모든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이 아닐까?
폰세바돈엔 요리가 가능한 알베르게가 없었다.
중후반부 넘어가면 어느 정도 경제적 이유로 돈을 아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일 텐데 이렇게 되면 강제 외식이다. 오늘은 돈 쓰는 날! 대신 가능하면 알베르게에서 간단한 요리 혹은 인스턴트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후 여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외식을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알베르게를 향한 언덕길을 오르던 중... 아주 달콤한 피자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 냄새는 거스를 수 없었고 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자집 문 앞에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이 피자를 즐겨야 했다. 문을 닫기 전에 반드시 오늘 저녁 이 피자를 먹어야 할 사명감이 생겼다. 너무 짜지도 달지도 않은 이 화덕 피자는 더운 날 순례길의 이후라 그런지 몰라도 정말 맛있었다. 오죽하면 다 먹고 2판을 더 시켜서 또 먹었다. 고된 노동 뒤에 오는 기쁨이었을까? 해가 지는 중에 노을을 바라보며 야외 테이블에서 피자를 먹던 그날 밤. 선선한 바람까지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폰세바돈. 이 마을의 마켓에선 이쁜 기념품을 발견했다. 대개의 경우 비슷하게 생긴 기념품들이 가득한데, 이곳에서 뱃치와 팔찌만 여러 개를 사버렸다. 충동구매인가!! 했는데 이 중 몇 개는 산티아고 도착할 때까지 내 팔에 달려있었다. 아쉽게도 저 무지개 팔찌는 어디선가 잃어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너무 아쉽고 슬프게도 어디서 잃어버린 것인지 조차 알 수 없다. 걸음이란 이런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