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지치기 전에, 순례길 #2. 개천에 식히자 내몸을

실감난다. 내가 걷기 시작했구나?

by 순례자 현황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2일 차,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 22km

- 개천이 보인다면, 이제 뛰어들 타이밍이다.

론세스바예스 ~ 수비리
Roncesvalles ~ Zubiri 22km

아침이 밝았다.


잠시 잠에 든 것 같았는데 벌써 아침이 왔다!!!! 오늘따라 이 사실이 왜 이리 고통스러운 걸까 ㅠ.ㅠ 전날에 피레네 산맥은 역시 오랜만에 운동한 다음날과 같은 기분을 만든다. 그래도 장하다~ 이 하루를 무사히 다치지 않고 넘긴 우리 모두가! 이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에 있는 모두가 자랑스럽다! 그만큼 힘든 하루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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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 6 천보의 걸음.

몸이 무거워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평소 즐겨하는 운동은 주 1회씩 하는 배드민턴뿐이었지 그것 말고는 취업 후부터는 운동과 멀어졌다. 겨우 하루의 피로인 걸까? 한 시간마다 피로가 쌓여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루 20-30킬로씩 걸으며 10킬로의 배낭을 메고 산을 탔던 어제 하루는 정말 피곤한 날이었다. 어제 하루 4만 6 천보를 걸었다. 어마어마한 걸음..


자 또 시작해보자!

천천히 준비하고 나와 배낭을 고쳐 메고 가슴 끈, 허리끈을 동여 멘다. 초반엔 평지기에 스틱을 접어 가방에 걸어두고 카메라 셔터를 언제든 누를 수 있게 편한 곳에 위치해둔다. 조금 앞에 나아가 내가 오늘 하루 머물었던, 우리 모두에게 평온한 하루 밤을 선물해준 이 수도원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과연 내가 평생에 이런 곳에 올 일이 있을까 싶은 곳이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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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iago De Compostela 790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본 사진이다. 아 이게 바로 여기에 있구나? 출발하기 전 어떤 사진들이 이쁘게 나올지 사전조사 겸 해시태그로 많이 봐왔다. 이 표지판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앞으로 790km? 내 앞의 여정이 영원할 것 같다. 영원이 끝나지 않고 이 일정이 매일같이 반복될 것 같았다. 이 일정이 과연 30일 만에 끝날까? 마치 갓 군 입대한 노란 병아리의 제대 날처럼 까마득하여 보이지 않았다.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이 즐거운 도전이 앞으로 한참 남았다는 사실이 설레고 기대되었다. 까미노 산티아고. 나를 설레게 하는 존재


한동안 작은 숲 속의 오솔길이 계속되었다. 길은 편안하였고 자연의 기운을 받는듯했다. 흙색의 오솔길과 적당한 높이에서 정리된 나뭇가지들, 선선한 아침 공기 모든 게 완벽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연을 맛보는 날이다. 걷다 적적해지면 음악을 틀어본다. 순례길 둘째 날 이 자연의 날에는 윤종신과 John Mayer로 함께 했다.


대체적으로 평탄한 길이 계속된다. 중간중간 마을이 멀지 않은 간격으로 등장하기에 어디서든 휴식을 갖기 좋다. 그래도 둘째 날이라고 전날보다 초보티는 덜난 듯하다. 배낭도 익숙해지고 스틱을 박자에 맞추어 탁 탁 틱 틱 하며 걸어 나가기도 한다. 무리하지 않고 50분 걷고 5-10분씩 쉬는 타이밍도 찾았으며 주변의 풍경들도 눈에 들어온다. Zubiri로 가는 마지막 길에 엄청난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이때는 몰랐기 때문에 여유로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마지막 4km는 정말...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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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6월 말, 이때는 서유럽 폭염주의보가 스멀스멀 오던 시기였다. 이 사실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처음엔 원래 스페인은 이렇게 더운 곳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조금씩 붉게 타들어가는 팔을 보며, 또 얼굴과 목을 보며 ' 내가 지금 스페인의 태양에 녹아내리고 있구나, 그래서 여기 사람들이 다 구릿빛 피부구나! ' 했다. 그러나 웬걸 점차 지나자 현지인들조차 더위에 지쳐있었다. 우연히 본 뉴스에서 서유럽 폭염주의보라 나이 많은 분들의 사망사고를 전하는 기사를 접하며 알아차렸다. " 타이밍이 썩 좋지 않구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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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끝엔 왠지 어색한 깔끔한 작은 마을이 나온다. 아스팔트로 깔끔하게 포장된 길과 마치 신축 주택과 같은 외벽, 온통 붉은 장미로 낭만적이게 꾸며놓은 울타리까지. 이쁘다 이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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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신축 빌라들인 걸까? 아니면 이 작은 마을이 이쁘게 단장된 것들일까? 숲 속 길만 걷다 이렇게 소도시 안을 걸어 나가는 기분에 벌써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마을을 하나 둘 지나가면서 이제 점심시간이 다가오는구나! 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대부분의 점심은 간단한 빵, 전날 준비한 주먹밥, 과일, 스낵바 등으로 간편하게 이루어진다. 점심을 과하게 먹으면 걷기도 힘들뿐더러 몸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계속해서 지나가다 보면서 어디선가 시냇물 소리가 졸졸졸 들려온다. 이른 아침에 신선한 공기와 함께 걷던 중 졸졸졸 거리는 이 소리는 정신을 맑게 했다. 마을 안에를 조심히 걷는 중인데 어디서 나는 소리지? 하니 이렇게 건물 앞에 작은 수로를 파서 물이 흐르게 한다. 마을의 배수시설 인가?


이렇게 흐르는 소리가 이 아침 따라 아름답게 들려온다. 고요하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소리로 어색하면서도 포옥 감싸주는 듯했다.


이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어떨까? 잠자리에 들 때 시끄러워서 짜증을 낼까, 자연 속에 함께 하는 기분으로 만족하며 살까?





어느 마을에서 점심식사. 가벼운 오믈렛과 빼놓을 수 없는 코카콜라! 순례길에서 먹는 콜라는 내 평생 가장 달콤한 콜라였다. 순례길 중반쯤 갔을 땐 콜라 지출이 지나치다 싶어서져 하루에 2-3개로 제한을 두고 지출을 줄 일정도였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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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식을 먹고 난 뒤에도 한동안은 평탄한 길이었다. 마을 가운데를 가로질러가기도 했고 오솔길을 따라 작은 언덕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한참을 간 뒤 Pass of Erro라는 곳에 있는 푸드트럭. 스페인에서 맞이하는 첫 수박이었다. 꿀수박 꿀수박


마지막 4km 정도를 남길 때 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걸을만했다. 마지막 4km가 자갈길로 된 내리막이다 보니 발목에 무리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순례길 준비물에는 반드시 등산용 중등산화가 포함되어있다. 발목 부상의 염려를 막기 위함이었다. 첫날과 둘째 날 피렌네 산맥을 오르고 내리면서 등산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순례길 준비물에는


등산용 중 등산화!! 별표 다섯 개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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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가에 풍덩... Zubiri 마을


맙소사 마을에 다다르자 물놀이하고 몸을 담그기 좋은 개천이 바로 코 앞에, 그리고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그 안에서 몸을 식히며 놀고 있었다. 당장 가야지! 알베르게부터 잡고 짐 풀고 바로 개천으로 달려갔다. 왜냐면 이 미칠듯한 서유럽 폭염주의보 속에서 몸과 발은 익을 대로 익어버렸고 더 찬물에서 몸의 열기를 어서 빼버리고 싶었다. 이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알 수 있다. 몸에 열이 차면서 그 열기가 빠지지 않을 때, 아무리 크게 숨을 몰아 쉬어도 뜨거움이 계속 느껴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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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쳐져서 걸어오던 태권브이, 즉시 입수!

많이 힘들었던지 저 뒤에서 오던 태권브이 친구는 우리가 모두 도착한 지 2시간이 지나서야 모습을 나타냈다. 이 작은 개울가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가방, 옷을 모두 던지고 바로 개울가로 들어왔다. 수비리를 지나가는 모두가 이렇게 들어오지 않았을까? 고작 이틀 차이지만 모두에게 안식을 주던 수비리의 개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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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인연, 부산 모녀

산티아고 순례길 둘째 날, 마을 안의 바에서 커피를 주문하다 우연히 한국인 모녀를 만났다. 부산에서 왔다는 걸 바로 알 수 있게끔 그들의 거친 사투리에 바로 한국인임을 알고 주문하는 것에서 헤매는 듯하여 먼저 인사하며 소개를 했다. 어린 딸과 오신 어머니께서 먼저 다가와준 것에 매우 감사했다며 저녁식사까지 대접을 받았다. 극구 사양하였지만 거절도 쉽지 않았다. 허허

그렇게 함께 식사를 하며 이틀 차에 만난 이 인연과도 걷는 중에 두고두고 만나게 되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 순례길

참 매력적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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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면 비로소 가벼워지는 것들


이틀 차가 되자 친구들이 하나 둘 짐의 양을 줄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 나가려면 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호랑이 연고, 헤드라이트, 여분의 신발끈 등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던 준비물들을 가지고 왔었다. 역시 잘 갖추어진 한국. 결국 이렇게 한데 모아 진 짐은 산티아고로 보내지게 된다. 한결 가벼워진 짐으로 내일부터 조금은 가벼워지길 바라며 행복한 잠에 들었다. 모두가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2


⭐️⭐️⭐️⭐️⭐️ 등산화는 등산을 위하기보다,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 더 중요하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1

⭐️⭐️⭐️⭐️⭐️발에 열이 찬다~ 느껴지면 한 번씩 멈춰서 신발, 양말 다 벗고 열을 식혀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발가락 사이에 밴드로 마찰을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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