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지치기 전에, 순례길 #1-2.
9:40도착?피레네

마지막 날에 다시 만났던 그분, 존경합니다.

by 순례자 현황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1일 차, 프랑스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 25km (2)

- 구름보다 더 위에. 평생에 남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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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25.2 km
프랑스 생장 ~ 론세스바예스 25.2km



구름 위에 올라온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내 기억이 맞다면 이번 경험이 처음 겪어보는 일이다. 와우... 이 모든 것이 구름이고 내가 그 위를 뚫고 올라왔다는 것을 깨닫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고 너무 아름다운 그 모습에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스틱을 내려놓고 카메라 셔트를 누르면서도 눈 깜빡이는 순간도 아까워 열심히 눈에 담았다.


6월 말의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계선. 이렇게 경이로운 풍경이 첫날부터 펼쳐지다니, 엄청나다!

첫날 일정의 1/3 정도인 오리손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 풍경에 멈춰버리다니.


구름 따라 콧노래를 부르다 보면 금세 오리손 마을에 도착한다. 안개인지 구름 일지 모를 것들 사이에서는 왠지 우중충한 분위기 가득이지만, 그 위로 올라오면 마치 천상계의 느낌을 맛보게 된다.


하늘 위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앞으로 조금 나서자 저 멀리서 오리손 마을이 보인다. 두 시간여 지나자 배고프고 첫날의 설렘을 저곳에 멈춰서 서로 나누고 싶었다. 다들 입이 근질근질, 그리고 체내에 모아둔 물을 내보내고 싶기도 했다.


오리손 마을로 다가가자 완전히 구름 위로 올라올 수 있었고 세상은 다시 밝아졌다. 저 멀리 산장 하나가 보이고 그 앞에 테라스 같은 쉼터가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와 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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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의 보호자.

오리손 마을은 그런 곳이라 생각한다. 고도가 1000m 이상 높아지는 피레네 산맥을 앞에 두고 누군가는 단 하루 만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을 수 있다. 분명 쉽지 않은 길이고 실제로 2,30대들도 당일에 론세스바예스까지 도착하는데 최소 8시간 정도는 소요되었다. 장년층이나 첫날에 무리한 탓에 물집이나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그 소요시간은 기약 없이 늘어질 것이다. 실제로 중간에 구조요청을 한 경우도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더욱 내가 올랐던 그 날에 어느 분은 밤 10시 가까워져서야 도착하셨다. 분명 나보다 먼저 나가셔서 지나가다 인사한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피레네 산맥은 그런 곳이다. 누구나 넘볼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팔 벌려 환영하진 않던 곳. 조금만 방심하면 다치기 십상인 곳이었다. 그 산맥의 중턱에 있는 이 마을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중요한 곳이다. 조금이라도 무리가 될 것이라 보인다면 하루쯤 이곳에서 머물고 가도 되는 마을. 이날 저녁에 알베르게에 누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오리손이라 물리는 이 알베르게는 절대로 없어지면 안 되는 곳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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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선 한 가지 룰이 있다.

모두가 똑같은 km의 거리를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힘들면 적게 걸어도 되고, 도전하고 싶으면 더 걸어도 된다. 또한 누구보다 빨라야 하고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 이런 법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로 남을 정죄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각자의 속도와 목표가 있는데, 그걸 나의 기준으로 ' 저 사람은 겨우 저거 걷고 저기서 쉬어?' 이런 건 아~주 위험한 발언이 될 수 있다. 이곳의 본질이 훼손되어버리는 것이다.


산장 앞에 펼쳐진 테라스에 짐을 내려놓고 시원한 콜라 한잔을 시켰다. 반대편을 바라보니 이곳은 그냥 낭떠러지다. 즉슨, 이 앞이 뻥 뚫려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아-주 속 시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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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옆에 구름을 나란히 두고 콜라 한잔을, 맥주 한 잔을 마셔본 적 있을까?

첫날의 기억은 모두 이곳에 멈추어있다. 추억도 기억도 그리고 아련했던 순간을 뽑으라면 바로 이 순간이다. 흐릿하게 보이는 건너편의 산들과 바로 내 옆에 그리고 밑에 펼쳐져있는 새하얀 구름들.


이 집 강아지인가?

못생긴 강아지가 반겨준다. 여기저기 쫄래쫄래 따라다니면서 특히 밥 먹는 테이블 옆에. 짬밥 맛을 봤나 보다. 하긴 이곳은 매일매일 사람들이 지나갈 테니 영업하기 정말 좋은 곳이겠다!


콜라 한 잔에 샌드위치. 구름 위를 휴식하다가 다시 출발하려니 몸이 무겁다. 이제 다음 휴식 구간은 가다 보면 언젠가 나올 푸드트럭이다. 설마 남은 17km 곧장 걸어가라 하진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출발해본다.



이 이후부터는 상당히 지루해진다. 끝없는 완만한 경사길, 종종 나오는 내리막길. 다행인 것은 아직 프랑스령이고 이곳은 포장된 길이라고 한다 깨끗하게 포장된 길이라 상대적으로 걷기 편한 편이니 스틱도 필요 없이 다닐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다음 푸드트럭이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다음 목적지가 얼마나 뒤일지 모른 채 일단 걸어 나간다. 1시간, 2시간.. 똑같은 풍경만 계속 보며 걷는다. 걷다 보니 일행들과도 모두 찢어져 각자의 속도로 걷게 되고 길이 아닌 다른 길로 퍼져서 걷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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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것 같았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스스로 걷는 시간이고 각자의 시간을 갖기에 너무나 좋은 순간이 왔다는 것을 말이다. 길은 한 방향으로만 펼쳐져 있으니 걷기만 하면 된다. 걸으면서 내가 품고 있던 고민, 생각들을 하면 된다. 이곳에는 바로 이런 자유가 있다.



나의 속도로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길로, 다만 방향만 같게


걸어 나가면서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쉬고 싶을 때 멈추어서 주변을 바라보며 쉰다.






충분히 지루할 수 있지만, 충분히 무언가를 하기에 평온한 시간이 된다.

마치 윈도우 배경화면과도 같은 평온함이 찾아온다.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걸어 나가면 된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계속 걷게 된다.


계속 걷고

더우면 멈추고

다리가 아프면 잠시 드러눕고.

사실 아픈 것보다 발바닥이 뜨거워진다. 무게와 열에 발바닥에 열이 차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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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손으로부터 약 2시간가량 걸어가면 본격적으로 돌길, 산길이 시작된다.

그전에 이 평탄한 길을 실컷 즐겨두어야 했다.. 이후부터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고 여러 가지의 험한 말들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순례길이 아니라 고행길이라고... 처음 갈 때는 정말 조사한 것 없이 사전 지식 없이 무식하게 갔으니 걸을 수 있었지, 이제 알고 똑같이 행동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아는 게 힘이라고 이전보단 좀 더 현명하게 체력을 분배하고 길을 즐기며 가고 싶다. 그리고.. 돌길 위 수 km를, 수십 km를 걷는 경험은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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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걸어 나가다 보면~

산도 넘고 내리막길도 걷고 오르막길도 걷고 어~~ 쩌다 한번 평지도 나오겠지~

하늘 위를 걷는 기분으로 계속 걷는다. 분명 산인데, 상당히 높은 지대라 고산병 증상도 나타나기도 하고



끝까지 포기만 하지 않으면, 우린 모두 할 수 있다.

이 첫날밤에 , 순례길을 마칠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한 가지 있다.

저녁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던 중 문득 생각이 들었다. 생장에서 출발해 멈출 곳은 오리손 마을과 론세스바예스. 단 두 곳이다. 오리온 이후로 만났던 순례자 친구들은 모두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나야만 했다.

첫날 걷던 중 매우 지쳐 보이는 한 분을 만났다. 중년의 여성분이었는데, 지나치게 무거운 배낭, 산을 오르며 많이 버거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중간중간 만날 때 말동무도 하곤 했었는데, 그래도 계속 웃으시며 걸으셨다. 한 번은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혹시 필요하시면 도와드릴까요? 했는데, 자기 힘으로 한번 끝가지 해보겠다고 괜찮다 하셨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쉬고 천천히 가면 괜찮을 거란 말과 함께.


오후 5시쯤 알베르게에 도착해 돌아다니며 오는 중에 만난 친구들이 다들 잘 왔나 인사도 하고 저녁식사도 하고 하다 보니 어느덧 8시 9시가 넘어갔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만났지만 그 큰누님께선 아직 보이지 않았다. 혹여나 다른 한국인들이 마주쳤을까 보는 사람마다 물어봤지만 다들 지나쳐온 기억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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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일일까, 혹시 오다 무슨 일 생기신 거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9시가 넘어서 괜히 알베르게 주변 둘러보며 가벼운 산책과 바람도 쐬고 하며 서성여봤다. 알베르게는 정확히 10시에 취침모드로 변경되어 모두 소등되는데, 10시까지도 못 오시면 큰일 날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루의 끝을 향하는 9시 40분 조금 넘었을까, 여름의 서유럽은 조금씩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건물 외등은 하나 둘 불이 들어오고 산책로를 밝히는 불이 켜졌다. 그리고 켜진 불길 뒤로 저벅저벅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누님이 오시는 소리다! 바로 앞으로 달려 나가 반기며 하나 둘 배낭을 나눠 들고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는 듯 바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을 흘리시던 그 모습, 그 옆에서 한 서양인이 말동무하며 같이 걸어와 주었다.


이 누님에게 오늘 하루는 어떠셨을까? 아침 6시부터 시작한 걸음이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멈출 수 있었다. 피레네 산맥을 건너는 그 산길이 이분에겐 얼마나 무서웠을까? 중간에 포기하면 안 되는 그 상황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싶었지만 씩씩하게 끝까지 걸어온 모습에 오히려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분은 나에게 얘기했던 데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덕에 이곳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기까지 성공하였다.


순례길을 걷고 마지막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까지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었다. 이날 이후 마주치지 못했고 걷는 동안에도 특징을 설명하며 만난 사람이 있을지 수소문하였지만 단지 특징만으로는 소식을 듣기 쉽지 않았다. 내내 걱정이 되었다, 부디 이 누님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올 수 있기를. 왠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으로 작은 기도를 했었다. 이 순례길의 여정 중에서.


피레네 산맥. 이 길은 바로 이런 길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밤 9시 40분이 다 되어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길.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걸어가면 결국은 도착할 수 있는 길이었다.


정말 행복하고 다행이게도, 산티아고에 머물던 마지막 날 이 누님을 재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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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꿀팁 1


⭐️⭐️⭐️⭐️⭐️발에 열이 찬다~ 느껴지면 한 번씩 멈춰서 신발, 양말 다 벗고 열을 식혀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발가락 사이에 밴드로 마찰을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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