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걸음을 왜 시작했을까? 이게 맞는 걸까..? 아니 이게 맞았구나
- 내가 미쳤다고 여길 왜 왔을까
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25.2 km
프랑스 생장 ~ 론세스발레스 25.2km
시작부터 지각
내 여권을 주워준 친구, 해태
사무소에서 만나 직원의 영어를 통역해준, 태권보이
바욘 앞에서 담배 뺏기던 동생들, 노래하는 윤생과 찬물을 잘 챙기는 고태
아침 6시, 전날의 친구들과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지난밤,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내가 지금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에 와 있구나...라는 느낌을 즐겼다.
군대 내무실 같은 분위기, 이리저리 놓여있는 2층 침대. 남녀노소 상관없이 한 방에 모여 각자의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이 어색한 밤.
어르신들은 일찍부터 코 골며 잠이 드셨다. 2,30대 친구들뿐 아니라 첫 순례길로 추정되는 사람들 모두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들 쉽게 잠이 들지 못하는 밤일 것이다. 이 방 안에 대략 15명 정도가 있다. 다들 어떤 마음과 목표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이런 잡생각들을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밤 12시가 넘어간다.
6시에 모이기로 했지만, 눈 뜬 시간은 5:50. 전날 영어 설명해주고 알베르게로 데려온 태권보이에게 미안하지만 먼저 출발하겠니..? 나는 좀 걸릴 거 같아..라는 슬픈 말을 전했다. 대략 준비하고 출발하자 6시 40분. 알베르게에 있던 순례자들은 대부분 이미 출발했다. 배낭과 보조가방, 스틱, 카메라, 등산모자를 어설프게 몸에 메달았다.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필요할 선크림, 현금, 순례자 여권을 보조가방에 챙겼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느린 발걸음으로 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안녕, 생장..
어색한 배낭
걸치적 거리는 스틱
어떻게 메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는 카메라
어색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저벅저벅 걸어 나가며 사람들을 지나며 전날 연습한 "부엔 까미노 Buen Camino"를 말해본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웃으며 그리고 큰 소리로 부엔 까미노! 하며 답하는 것이 아닌가? 신이 났다. 왠지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계속 걸어 나가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건네본다. 늦게 출발해서 그런지 걸어가는 족족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금방 인사할 수 있게 된다. 이때부터였나 보다... 누구보다 늦게 출발하는 습관이.
저벅저벅 30분 걸었을까, 앞사람의 종아리에 순례길 시작점에서 받는 가리비 문양의 타투가 눈에 들어온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이거 혹시 까미노 타투가 맞는지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이전에 한번 다녀온 순례길이 자신에게 매우 감동적인 기억이라 돌아가서 바로 그림을 그렸고 다시 한번 오게 되었다고...
이 길을 마칠 때, 나도 이곳에 특별하게 느껴질까?
궁금해졌다. 나에게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게 될까? 한 달 뒤에 나는 이 길이 좋아질까 아니면 도중에 힘들어 포기하게 될까? 내가 원하는 데로 이 길을 걷다 보면 복잡한 내 마음속을 한결 가볍게 정리해나갈 수 있을까? 혹시나 그러지 못한다면... 어떤 좌절감을 만나게 될까.
전날 순례자 사무실에서 강조했다. 매우 경사가 심하고 첫날부터 체력적으로 힘들 테니 오리손 마을에서 쉬고, 하루 머물러도 좋다고. 7.5km 정도면 순례길 체험판으로 생각하고 시작해보았다. 순례길을 걷고 있구나, 800km의 외로운 그 길을 걷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고 빠르게 걸어가다 보니 앞서간 순례자들을 만나고 인사한다. 약 한 시간쯤 걸었을 때,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분명 늦게 나온 양반이 어떻게 벌써 따라왔냐고 경보했냐고 장난을 친다. 아.. 내가 조금 빨리 걸었나? 하하
조금 걷다 보니 바닥에 숫자가 카운팅 된다. 1,2,3..... 10,11 아! 시작한 킬로미터를 카운팅 해주는구나? 내가 지금 어디쯤 왔는지 알 수 있게끔 해주는 거구나?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가는 길에서 이런 것과 같은 계량기가 있으면 어떨까?
현, 너 지금 너의 인생 여정에서 50% 지점에 와 있어!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단순히 나이라는 척도가 아니라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서 넌 이 정도에 이르렀어. 아마 늘 가지고 있는 불안감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이 방향이 맞는 것일지, 어디쯤 와 있을지...
한국에서 좋은 기업 들어가놓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퇴사한 과거의 나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곳곳에서 이곳이 순례길임을 표시하고 있다. 이건 그냥 길이 아니야, 여긴 너희를 위한 순례길이야 라고 온 길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런 마킹을 한 사람이 이곳의 주민들 일지, 나라에서 한 것일지 혹은 이 길을 먼저 걸어 나간 순례자들이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정말 친절한 길이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첫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온통 신기하고 사진 찍고 싶은 것들 투성이다.
어제의 친구들과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고, 또 각자 속도가 달라질 때는 각자의 속도에 맞춰 걸어 나간다. 오며 가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아까 헤어졌던 친구를 조금 후 다시 만나기도 한다. 이곳은 하나의 길을 각자의 속도로 가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결국은 모두 만나게 된다. 신기하다, 누가 앞서 나가는 것과 상관없이 결국 각자의 속도에 맞추고 휴식을 취하다 보면 다시 만나게 된다니!
아무 경쟁도 없이 오롯이 내 속도에만 맞출 수 있다는 걸 이때 느끼고 있었다.
나만의 속도에 집중하다
걷다 보니 어느새 주변이 안개로 자욱해진다.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걷는 시기인데 안개가 짙어지면서 주변의 경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스틱이 바닥을 찍는 소리만 들리기 시작한다. 걷기 시작한 지 1,2시간이 지나자 다들 말이 줄어들고 점점 높아지는 경사에 숨소리만 들려온다.
6월 말인데도 태양이 점차 뜨거워진다. 지대가 높은 만큼 태양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거겟지? 정열의 스페인이니 이렇게 뜨거운것일거야! 오전 9시인데도 따가움이 느껴진다. 여름의 순례길은 꼭 토시나 선크림을 잔뜩 챙겨가라고 추천해줘야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던 중 집과 비슷하게 생긴 것이 나온다. 저것은 집인가 집처럼 생긴 다른 것인가 하여 가까이 다가가보니 또잉..!! 이것은 왠 한글이 여기에?
어딜가나 관광지 유명한 장소 이런곳엔 각국 사람들이 이렇게 낙서를 하고 다니는구나... 참 철 없다고 느껴지면서도 과연 내가 어릴때 나는 안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엇다. 나 역시도 철부지 시절에 남들이 손가락질 할만한 잘못들을 분명 했을것이다. 그저 자라나며 기억속에 미화되거나 기억나지 않는 것일 뿐이지. 철 없는 어린이 시절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오리손이라는 다음 마을을 목적지로 한다.
약 8km 정도 가고, 컨디션을 보고 머물거나 남은 17km를 가라고 했다. 처음 가는 길에 무리하지 말고 선배님들의 말씀을 잘 따라야지 남은 30일의 여정을 소화할 수 있다.
1,2시간 걸어가자 짙어진 안개, 급격히 어두워진 하늘, 짧아진 가시거리는 조금씩 초조하게 했고 몸이 풀리지 않은 채 시작한 걸음은 몸 한 구석에 불편함을 가져왔다.
아직 어색한 등산화와 배낭은 맘처럼 따라오지 않았다. 오늘 일정을 마치고 신발에 넣어둔 깔창을 조정해야겠다 생각할 때 쯔음, 지나가던 독일인 할아버지가 나를 부른다. 지금 배낭을 잘못 메고 있는데 그러면 오래 못해~ 하면서 내 배낭을 만진다. 읍후! 하는 소리를 내며 " 뭐 이렇게 무거워? 하하하 " 나는 거기에 어색해서 "하하하"
먼저 배낭에 있는 많은 끈을 정리하고 몸에 맞추게끔 도와준다. 어깨끈도 조절해주고 가슴 끈 허리끈의 용도를 알려준다.
등산용 배낭이란 것을 처음 메고서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았었다. 다른 가방들처럼 어깨에 메고 다른 끈은 대충 필요하면 달고 아니면 풀어놓고 있었다. 용도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사용해왔으니 계속 불편함을 가지고 원래 이러나 보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보. 감사한 독일인 할아버지 덕에 남은 일정 내내 한결 편안한 배낭을 멜 수 있었다. 그렇지 못했다면 진즉에 낙오자가 되었을지도....
어깨와 허리가 편안해지자 주변의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오리손에 다 와간다! 그리고 내 옆에는!! 어마어마한 풍경이 펼쳐진다.
지금껏 봐오던 것들이 안개가 아닌 구름이었다. 구름을 뚫고 올라 피레네 산맥을 타고 있던 것이다. 내 발 옆에 놓인 구름들을 보니 마치 저 위에 폭신하게 누울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을 가득하게 채운 구름 그리고 그 위에 올라선 우리들이 자랑스러웠다. 지금껏 이 길을 올라온 것이었구나. 안개라고 생각했던이 모든 것들이 올라와서 보니 구름들이었구나.
나는 지금 피레네 산맥의 구름 위에 올라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