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수 있다는 축복

251104_ 산책 예찬

by Amy


차 안도 집안도 주기적인 환기가 필요하듯, 사람에게도 환기는 필수적인 것 같다. 맘과 몸에 쌓인 다채로운 생각과 감정들을 바깥에 살포시 던져두고 새 숨을 들이쉬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걸을 수 있다는 건 말 그대로 축복이 아닌가 싶다.


속이 항상 체한 듯이 답답했던 고3 시절. 친구들과 삼삼오오 걷기도 하고 저녁시간을 쪼개 함께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 저녁을 먹고 바로 강당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기숙사에서 5분 컷 샤워를 한 후 물을 뚝뚝 흘리며 야간자습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로는 야자시간에 홀로 몰래 빠져나와 이어폰을 끼고 어둠이 꽉 찬 기숙사 뒤편 운동장을 하염없이 걸었다. 햇빛 알레르기로 낮에는 밖에 나갈 수 없는 답답함과 그럼에도 희망찬 미래를 노래하던 뮤지컬/영화 ‘태양의 노래’ 넘버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상황은 좀 달라도 답답하고 아무도 내 맘을 모르는 것 같고, 하지만 여전히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심정에 절절히 공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몰래 좀 걷고 오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어도 그나마 숨이 좀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대학시절과 사회생활을 거치면서도 항상 나는 걸었다. 공주에 있을 적엔 금강둔치공원으로, 부여에 있을 때는 궁남지로 숨 쉬러 갔다. 햇살이 물에 닿아 만들어내는 반짝거림, 바람에 산들거리는 나뭇잎. 계절에 따라 분홍으로, 푸릇푸릇한 초록으로, 빨강주황노랑으로 물드는 걸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심란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차분해지곤 했다. 이상하게도 사람이 줄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더 어릴 적엔 앙상해 보이기만 했던 겨울나무도 언젠가부터는 ‘새순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느라 바쁘더니 드디어 쉬는구나’ 싶어 안도감을 주곤 했다. 코끝이 빨갛게 시려지고 호호 불면 입김이 나오고. 머리가 띵하도록 걷는 것도 과도한 생각을 멈추게 하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학교에서도 급식을 먹고 나면 동료교사들과 늘 걸었다. 누군가의 욕이나 의미 없는 불평을 하기도 하고, 사생활을 나누기도 하고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를 했다. 교사들만의 진정한 쉬는 시간이었다. 수업 끝나는 종은 50분마다 치지만 학교 안에서 교사가 진정으로 쉴 수 있는 시공간이 없기도 했으니까. 엎드려서 잠깐 눈을 붙이는 것보다도 더 강력한 새 힘을 주는 게 점심 산책이었다.


임신을 준비하는 기간부터 임신 기간의 산책은 남편과 호흡을 더욱 맞추는 시간이었다. 시시콜콜한 일상부터 우리가 원하는 가정의 모습까지 함께 나누며 더욱 깊어지는 관계를 누렸다. 특히 입덧이 심할 때는 걸어야만 소화도 좀 되고 두통도 조금은 사라졌다. 뒤집힌 속과 띵한 머리를 신선한 바람이 씻어주는 느낌. 남편의 손을 잡고 걸으며 따뜻하고 산뜻한 산책을 했다. 산책 중 구역질하는 나를 안쓰럽게 여기기도, 내일은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좀 나을까 함께 고민해주기도 하면서 임신과정을 혼자 겪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밤산책인지라 풍경은 좀 아쉬워도 대체로 천에 있는 오리와 부리가 긴 이름 모를 새, 1년에 두 번쯤 볼 수 있는 희귀템 수달이 귀여운 구경거리가 되어주었다.


걸으면 항상 나아진다. 기분이든 마음이든 생각이든. 매번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시간의 흐름을 그 어떤 것보다 투명하게 비추는 자연이 내게 말해주는 것 같다. 다 괜찮다고. 결국 다 흘러간다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흘러간다고. 숨 한번 크게 쉬고 웃으며 또 오늘을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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