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
민화, 어느새 우리 곁에 존재했던 그림
성파, 수기 맹호도, 2012, 패널에 옻칠, 162X570cm, 작가 소장 © MMCAKOREA
민화는 우리 삶 속 곳곳에 조용히 녹아 있다. 새해가 시작될 때나 집안 경조사가 있을 때 대문이나 벽장문에 민화를 붙여둔 광경을 봤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혼례식이나 회갑, 돌잔치 등에서 병풍 등으로도 쓰였던 걸 본 적이 있다. 하다못해 한옥마을에 방문했을 때나 사극의 한 장면에서도 스쳐갔던 광경이다.
그렇게 민화는 한국인에게는 문화와 생활 속에서 늘 곁에서 존재하고 있던 그림이다. 사군자나 수묵화처럼 격식을 차려야 하는 그림이 아니라 자유롭고 솔직하며 천진난만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그림인 것이다. 관련 지식이 있어야 보이는 그림이 아니라, 삶 속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의미를 갖고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그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화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또한 문화적 변화를 겪으며 우리 곁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기도 했었다.
최근 들어 민화를 본격적으로 주목하는 행보가 보인다. 특히 다소 거리를 두었던 미술계에서 민화를 적극적으로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민화라는 명칭을 두고 고찰을 통해 이를 ‘한국 채색화’라고 지칭하며 한국 미술사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리매김시키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올해 상반기에 국공립미술관에서 한국 채색화를 조명하는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다. 국립진주박물관과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의 <한국 채색화의 흐름>(22.03.22~06.16), 조선민화박물관의 <한국의 민화: 이야기전>(22.07.01~09.27), 한국민화뮤지엄의 <동백 하영 핀 날>(22.04.01~08.31)<유쾌한 일상전>(22.07.01~08.31) 등이 그러하다. 사설 갤러리에서도 현대 민화를 주제로 참신한 작품을 내놓는 개인전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MZ세대의 참여가 활발한 커뮤니티 플랫폼에서도 한국 민화를 접하는 원데이 클래스부터 월 단위 클래스 등이 인기리에 진행된다.
민화를 둘러싼 이러한 흐름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전 세계적으로 전통과 근현대를 아우르는 한국 문화가 다양한 콘텐츠로 확산되면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것을 더 잘 알아야겠다는 의식이 자리 잡게 된 건 아닐지. 또한 스스로 가진 문화적 자산을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외부의 주목으로 인해 그에 대한 가치를 깨닫고 인식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전시가 주목하는 한국 채색화의 면면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MMCAKOREA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전시 <한국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22.06.01~09.25)를 다녀왔다. 이번 전시는 우리 삶 속에 자리했던 한국 채색화의 전통적인 역할을 생각해보고 21세기 현재, 우리 삶의 희로애락에는 전통 민화 또는 한국 채색화를 대신한 어떤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는지 유추해보는 자리였다.
특히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는 그간 우리가 ‘민화’로 불러왔던 ‘한국 채색화’를 중심에 두고 한국 채색화의 경계 혹은 한계를 넘어선 시도를 주목했다는 점에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채색화의 소재와 표현에서의 확장과 재해석을 더한 작품들로 선별됐다.
전시 <한국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에서 말하는 한국 채색화의 전통적인 역할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삶 속에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부귀영화와 장수를 성취하는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며, 학문을 숭상하며 명심해야 할 문구를 마음에 새기도록 하는 것. 또한 개인과 나라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동시에 이상적인 산수풍경을 통해 문화적 의식을 높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시의 섹션도 ‘마중’, ‘문 앞에서:벽사’, ‘정원에서: 십장생과 화조화’, ‘오방색’, ‘서가에서: 문자도와 책가도, 기록화’, ‘담 너머, 저산: 산수화’로 구성됐다. 작품도 한국 채색화를 전통, 현대, 영상, 설치, 디지털 미디어아트 등으로 해석한 새로운 시도들이 눈에 띄었다.
Stone Johnston, Sublimation (2021) © MMCAKOREA
마중 섹션에서는 역신을 쫒는다는 처용의 춤을 주제로 한 비주얼 아티스트 스톤 존스턴의 영상 작품 ‘승화’가 내걸렸다. 한국 채색화를 현대 도시 곳곳에 출연한 처용의 춤과 색색깔의 의상을 통해 영상적 형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벽사 섹션에서는 아프리카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도예가 신상호 작가의 ‘Totem(토템상)’이 전시됐는데, 한국 민화에서 주로 활용된 동물 소재를 장승과 같은 수호신으로 해석했다. 개인적으로는 성파 작가의 ‘수기 맹호도’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좋았는데, ‘대호도’를 재해석해 대형 옻칠 화면로 제작한 그림으로 호랑이의 털오라기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표현해내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십장생과 화조화 섹션에서는 사다리꼴 모양의 9폭 병풍에 동서양 그림을 차용해 생의 주기를 표현한 나오미 작가의 ‘용오름’이라는 작품이 흥미로웠다. 오방색 섹션에는 설치 작품인 네 마리 호랑이를 두고 앞면은 흰 화선지에 그린 형상으로, 뒷면은 오방색 픽셀 문양으로 표현한 이정교 작가의 ‘사. 방. 호’가 이색적이었다. 책가도 섹션에서는 일제 강점기 이후 유원지로 몰락한 창경궁의 역사를 책가도에 놓인 다양한 도상으로 의미화한 김유진 작가의 ‘창경궁 책가도’가 주목을 끌었다. 산수화 섹션에서는 역동적인 산세를 동판에 안료를 얹은 407점 패널로 대형 작품화한 이종상 작가의 ‘원형상 89117-흙에서’가 넘치는 기운을 자랑하고 있었다.
미술 평론가 중 누군가는 이번 전시가 한국 채색화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린 정체불명의 전시라고 폄하하기도 했지만, 관람객 중 한 사람으로서 본 해당 전시는 충분히 의미 있고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좋은 시도였다. 그간 한국 채색화를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던 미술계에 환기를 불러일으키고 시공간을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을 공식적인 자리에 끌어모음으로써 대중의 주목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민화, 내 삶에 천천히 스며들다
신상호, <토템상>(2004), 석기에 유약 © MMCAKOREA
민화에 대해 내가 처음부터 관심이 있거나 잘 알던 건 아니다. 내 삶 전반에 걸쳐 민화는 천천히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민화가 비로소 내게 의미로 다가온 건 우연히 집어 든 책 한 권을 통해서였다. 내 나이 스물셋쯤 출간된 오주석 저자의 도서 <한국의 미 특강>은 민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오주석 저자는 그림 속 요소의 배치나 구도, 여백의 기능과 묘미, 시공간의 축약, 대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 등을 내 곁에 앉아서 손으로 일일이 짚어주며 이야기해주는 듯했다.
그 이래로 오주석 저자의 팬이 되어서 그분 책이라면 항상 설렘을 갖고 서점에 달려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 읽었다. 오주석 저자님의 얼굴은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내게는 마음의 스승과 같았다. 지난 2005년, 건강상의 이유로 오주석 저자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참 마음이 아팠다. 그분처럼 옛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줄 분이 또 있을까 싶어 아쉬움이 컸다.
이후 민화와의 접점은 대학 때 교수님의 추천이자, 과제의 일환으로 갔던 마니프국제아트페어에서 만난 한국화였다. 박꽃 화가 김혜진 선생님 작품으로 한지에 먹과 채색으로 그린 박꽃이었는데, 색이 마른 뒤에 덧칠하는 진채로 그려서인지 무척 몽환적이고 아득한 느낌이라 좋았다. 그림을 한참 보고 있으려니 누군가 말을 걸어왔고 느낌을 주고받았는데 알고 보니 김혜진 작가님이었다.
이후 작가님을 주인공으로 한 인물 다큐멘터리 작업도 수락해주셔서 작업실에 가 그림 작업 과정을 지켜보는 영광도 얻으며 그 인연은 계속되었다. 김혜진 선생님 덕분에 한국 채색화에 대한 개념을 깨달았고 한국화의 작업이 오랜 시간 집중력과 인내심,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하는 일임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다른 접점은 문화재단 매거진 에디터로서 인터뷰로 만나뵀던 현대 민화작가 서공임 선생님을 통해서였다. ‘호랑이 100마리 그리는 여자’로 유명한 서공임 작가님은 일상의 모든 순간이 민화를 그리는데 맞춰져 있을 정도로 마치 수행자처럼 삶을 바치는 분이었다. 그러한 정신력과 집중력에 감동해 그간 내 삶에서 민화를 접해온 동안 쌓여온 애정만큼 서공임 선생님의 삶과 작품세계를 온전히 담아내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마감 시간까지 최대한 민화에 대해 공부하고 작가님의 삶이 투영된 작품을 면밀히 보면서 표현해내려 애썼다. 그 마음이 담겼는지 서공임 화백께서 매거진을 받아보시고 잘 표현해주어 고맙다며 기뻐하셔서 감사한 마음이 더해졌다.
그렇게 민화는 내 삶의 시간 속에서 천천히 스며들고 녹아들었다. 민화를 처음부터 좋아한 건 아니었고 제대로 배우거나 흔히 접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민화만의 색채와 대상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그 매력에 점차 빠져들었다.
민화가 한국 채색화로 불리기 위해서는
이종상, <원형상 89117-흙에서>, 동유화, 370*1230,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안타깝게도 나를 비롯한 우리는 교육과정 속에서 민화를 제대로 배워보지 못했다. 삶 속 곳곳에 보였던 그 그림들이 민화로 불려진 이유도 잘 몰랐고, 민화가 미술계에서 다소 외면받고 정규 미술 교육과정에서도 소외되어 온 배경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역사적 자료에 따르면, 백성 민(民) 자를 사용하는 ‘민화’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 때 천황의 백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 민’ 학교도 초등학교로 바뀐 것이므로 이제는 우리가 붙인 명칭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이에 ‘한국 채색화’ 또는 ‘한국 전통 채색화’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므로, 보다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민화로 불려 온 한국 채색화가 그간 한국 회화사에서 서양화 분야에 비해 배제되어온 역사적 배경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해방 이후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을 1949년부터 1981년까지 국가 주도로 개최했다. 이는 일본의 공기관에서 주관한 전시회인 조선 미술전람회를 모방해 만든 행사였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은 내용면에서 예술성과는 별개로, ‘일본화’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한국 채색화를 배제해왔다.
그러나 한국 채색화는 ‘일월오봉도’와 같이 왕의 병풍으로 자리한 궁중회화와 더불어 돌잔치와 환갑잔치, 혼례식과 장례식 등 민중들의 삶 속에서 의미를 가지고 쓰인 민예 회화로서 한 축을 이끌어왔다. 때문에 그간 미술계에서 배제한 한국 채색화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조명하고 연구해야 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미술계나 정책적 차원에서 나아가 대중으로서 우리는 민화라 불렸던 한국 채색화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문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개인이나 집단이 습득하고 체화해온 산물이라고 할 때, 앞으로도 한국 채색화는 우리가 습득하고 체화할 부분이 많다. 하위 장르 정도로만 바라봤던 인식을 개선하고 후대에 한국 채색화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민화를 접하고 배우고 눈으로 익히며 애정을 갖게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한국 채색화를 접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그 변화를 지켜본다면, 변두리로 밀쳐졌던 한국 채색화가 제자리를 찾을 날이 다가오지 않을까.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들고 아우른 한국 채색화의 길을 찾아 나간다면, 지난 역사 속에서 잃어버렸던 문화적 자존감은 대중인 우리가 의식하고 노력하며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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