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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라희 Oct 30. 2022

[도서&강연] 정답은 없어, 자신만의 방식으로-한비야

- 한비야, 안톤 반 주트펀의 도서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마음의 우선순위가 향하는 곳

한비야 님과 남편 안톤 © 한비야 / 출판사 푸른숲


“엇! 한비야 님이 온다고? 별마당도서관에?”

현수막에 나붙은 그 이름은 날 설레게 했다. 한때 내게 멘토와 같았던 사람, 한비야.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책을 참 재밌게 읽었더랬다. 진정한 이야기꾼이었다. 책을 한번 잡으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놓을 수 없었다. 그녀만이 가진 유머러스함으로 열악한 상황을 이겨내고 사람과 세상을 크게 끌어안는 마음과 태도는 멋져 보였다. 강한 의지로 원했던 결과를 결국 이뤄냈다. 20대 푸릇했던 나 또한 그와 같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하는 세계 여행을 꿈꿨고, 그처럼 열정과 열망이 가득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게 세상에 나아간 그녀는 오지여행가에서 국제구호 전문가로 보다 확장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의 책이 나오면 서점으로 달려가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꼭꼭 챙겨보던 내가 한비야라는 이름에 다소 시큰둥해진 건. 언제부턴가 한비야 논란 등의 구설수가 따랐다. 세계 여행이 보다 일반화되면서 그녀가 갔던 오지에 다녀온 이들이 뒷말을 만들어냈다. 책 속에 묘사된 내용이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상황이라는 말부터 육로로 국경을 통과할 수 없는 곳에 들어가 범법을 저지르고 영웅담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는 비난까지. 본명이라고 했던 특이한 이름 은 실은 세례명을 따서 개명한 거라는 등 크게 중요치 않는 것들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들이었다. 흘려들었다 해도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는지 한동안 한비야 이름을 잊고 지냈다.

현수막에는 ‘별마당도서관 명사초청 특강’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30년간 오지여행가, 국제구호 전문가, 세계시민학교 교장으로서 ‘어떻게 가슴 뛰는 일을 찾고 몰두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쓰여있었다. 그런데 무려 ‘불금, 불타는 금요일’이었다. 게다가 저녁 7시. 한주 업무를 마치고 휴식 모드로 돌아가는 시간, 여타 약속을 잡거나 어디론가 이동하기에 알맞은 시점에 강연을 연다는 건 추최 측 입장에서는 어쩌면 일종의 도전이자, 강한 자신감일 수 있다. 한비야 님의 강연은 금요일 저녁 7시였다. 그걸 알고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다는 건 마음의 우선순위가 그쪽을 향했다는 뜻일 것이다.


여전한 그리고 건재한 그만의 삶의 방식

한비야 © 한비야 / 출판사 푸른숲


퇴근 후 찾은 강연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소개를 받고 등장한 한비야 님은 청바지에 티셔츠, 얇은 재킷을 걸친 캐주얼한 차림이었다. 커트 머리에 엷은 화장을 한 얼굴에 주름살은 살짝 늘어난 듯했지만 활동적인 모습만큼이나 탄력적인 체형은 여전했다. 마이크를 든 손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코로나 이후 여러분과 직접 만나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사이 제 삶에도 꽤 변화가 있었어요. 하나는 제가 박사가 되었고요, 또 다른 하나는 제가 결혼을 했습니다..”

한비야 님은 60세가 되는 2017년에 네덜란드인 안톤 반 주트펀이라는 분과 결혼을 했다. 국제구호 활동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을 때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의 보스였고, 각자 다른 국가에서 구호 활동을 이어가면서 간간이 도움을 주고받으며 친구가 되었고, 인연을 이어가며 연인이 되었으며 연애 4년 만에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강연에서 한비야 님이 강조한 말은 ‘혼자 서는 힘’에 관한 것이었다. 혼자의 힘이 있어야 함께 하는 힘도 있다는 것. 혼자로서 완성되어 있어야 함께로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그녀가 살아온 삶의 방식만큼 부부로서의 삶도 그답게 꾸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다르게 살아온 시간과 방식을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았다. 남편 안톤과는 3-3-6원칙을 세워 3개월마다 서로의 나라에 살고 6개월은 타국에서 살며 따로 또 같이의 삶을 살아간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촘촘히 계획을 세워 빠르고 바쁘게 사는 한비야 님의 방식대로, 네덜란드에서는 무계획으로 느리고 여유롭게 사는 안톤의 방식대로 살아보면서 이전과 다른 자신을 만나는 시공간으로 만들어간다고 한다. 

그의 표현대로 ‘과일 칵테일 식 결혼 생활’이다. 여러 과일이 제 맛을 지닌 채 조화를 이뤄 맛있는 칵테일이 만들어진 것처럼, 섞여 있어서 존재감이 더 또렷해지는 부부가 되는 것. 그 과정에서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보다 확실하게 알게 됐다고. 재미로 본 사주궁합에서도 뜨거운 불 같은 비야와 흐르는 물 같은 안톤이 만났다는데, 그럼에도 세상이 말하는 정답을 찾기보다 그들만의 특성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며 존재감을 유지할 방향과 방법을 찾아가는 가운데 시너지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한비야 님과 남편 안톤 © 한비야 / 월드비전


더불어 한비야 님이 전한 또 하나의 이야기는 견디어 내는 힘에 대한 것이었다. 그간 역동적이지만 그만큼 위기와 힘겨움도 많았던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배경이도 했다. 견디어 낸다는 건, ‘눈 딱 감고 한 발짝 더 내딛는 것’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화여대 국제학 박사 과정에 임할 때도 구호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던 실질적인 구호 방식과는 달리, 이론에 치중한 학계의 현실에 괴리감을 느껴 몇 번이고 그만두려 했었다. 그래서 종이에 해야 할 이유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적어봤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는데 해야 할 이유 단 한 가지 때문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고. 

고심 끝에 박사과정을 택한 이유도 정부 차원에서 구호 현장의 목소리를 원한다고 해서 자문을 해도 그것이 정책적으로 반영되지는 못하는 현실의 벽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제 자신이 ‘햇박사’로서 구호 정책에 보다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방향과 역할을 찾고 있다고 했다. 

나아가 한비야 님은 그러한 자신의 DNA를 알고 마음을 뜨겁게 하는 일을 찾으려면 자기 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기를 쓰는 습관을 통해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려 늘 노력한다고.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 정리가 잘 되려면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생각하는 힘의 도구는 책이다, 생각은 반드시 적어야 한다, 자신의 기록은 개인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로 나누어 분석해보아야 한다’라는 게 자신을 움직이는 힘을 만들어내는 핵심이었다. 

강연을 통해 그야말로 내가 알던 ‘한비야만의 삶의 방식과 그만의 돌파력’이 건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불금’의 유혹을 뒤로하고 마음의 우선순위를 따랐던 나 자신에게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꺼졌던 마음의 불씨가 다시금 지펴지는 느낌이었다. 한비야 님은 내게 한때의 멘토가 아니라, 여전히 영원한 멘토로 남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로서 바로 서는 힘

도서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 한비야 / 출판사 푸른숲


강연을 듣고 한비야-안톤 부부가 살아가는 방식을 적어 내려간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를 펴 들었다. 부부라는 존재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전해주는 책이었다. 삶이라는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동료이자, 한 가지 목표를 두고 맹렬히 달려가는 경쟁자이자,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주고 의지가 되어주는 응원단으로서 그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정의하고 있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삶을 보다 재미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가려 ‘그들만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한비야 박사 만들기 프로젝트’, ‘안톤의 한국어 프로젝트’, ‘쿠바에서 스페인어와 살사 배우기 프로젝트’, ‘산티아고 프로젝트’, ‘ABC Book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컴퓨터를 보면 각 폴더별로 프로젝트에 관한 서류와 자료, 진행사항이 한눈에 정리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체계적이면서도 도전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알차게 꾸려가고 있었다.

특히 뒤늦은 신혼여행으로 떠난 쿠바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부부가 맹렬히 스페인어를 파고들어 결국은 마스터해낸 과정을 담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포복절도했다. 벽돌 책이라 불리는 전공책을 사들고 여행 짐을 싼 안톤의 행동을 시작으로, 현지에서 스페인어 선생님을 찾아 그들만의 어학연수를 받으며 부부싸움조차 회화 실습을 통해 화해에 이른 과정, 호텔 수영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다 서로 이겨보겠다며 문법책을 펴 들고 공부한 이야기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못 말리는 두 사람이 만나 참 재미나게 살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살 수도 있지. 삶에 정답은 없어. 내가 만들어가는 삶의 방식과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는 몰라도 최소한 내 삶에는 정답이 될 수 있지. 난 세상 유일한 존재니까 유일한 정답도 곧 하나겠지.

정해진 노선으로 살지 않으려면 그만한 신념과 노력이 필요함을, 지나온 삶의 시간과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지나온 삶의 시간과 경험이 자신의 촉을 무뎌지게 하진 않는지 우린 경계해야 한다. 자신 안에 끓어 넘치는 욕망을 억누르거나 의지를 꺼지게 하진 않는지 두루 살펴야 한다. 나를 나로서 온전히 보고 세상에 혼자 서 있을 수 있게 하는 힘은 곧 나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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