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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라희 Oct 30. 2022

[영화&커피] 손끝에 전해진 따뜻한 위로, 탄자니아AA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The Furthest End Awaits>

아픔을 보듬는 따뜻한 커피 한 잔

<The Furthest End Awaits>(2015) © Toki Entertainment


“천천히, 가늘게. 안에서 밖으로 원을 그리듯 부어요… 누군가가 끓여주는 커피, 참 좋구나.”

마음에 상처를 입은 두 여자, 따뜻하고 향이 그윽한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며 돌발 사건으로 인해 놀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서로에 대한 경계심은 어느새 사라지고, 기다림 속에 섬세한 손길로 내린 탄자니아 AA 핸드드립 커피는 두 여자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은 해안가 땅끝 마을에서 각자의 아픔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커피를 계기로 서로 가까워지고 함께 새로운 삶을 꾸려 감으로써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실종된 아버지를 기다리며 홀로 고향에 돌아와 ‘요다카 카페’를 연 미사키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커피콩을 주종으로, 로스팅부터 블랜딩, 그라인딩까지 직접 해 커피를 만든다. 미사키의 탄자니아 커피는 땅끝마을에서 도시로 주문하는 고객들의 요청이 잇따를 정도. 한편 이웃에 사는 두 아이 누나 아리사와 동생 쇼타는 엄마 에리코가 일하러 나간 동안 방치되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미사키는 아리사를 카페 보조로 고용해 커피를 가르쳐주며 여러 가지 도움을 준다. 

커피에 대해 문외한인 에리코는 미사키를 경계하며 오히려 적대적으로 대하는데, 에리코를 이용만 하던 나쁜 남자가 급기야 미사키를 범하려 한 사건을 겪고, 두 사람은 커피 한 잔을 나누며 마음의 벽을 허문다. 이 작품에서 탄자니아 AA 핸드드립 커피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계기이자, 서로에게 위로를 전하고 힘이 되는 수단이 된다.

<The Furthest End Awaits>(2015) © Toki Entertainment


커피는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에서 극 중 인물 미사키와 에리코에게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린 시절, 가족이 해체된 아픔을 겪고 외롭게 자란 미사키에게 커피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온전히 서게 하는 힘이자, 바탕이다. 카페를 땅끝마을에 연 것도 세상의 끝에 내몰린 자신이지만, 여전히 세상 안에 속해 살고 싶은 의지를 표현한다.

미사키가 직접 만든 탄자니아 커피 블랜드 3종에 여름 철새 이름을 붙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블랜드에 ‘쏙독새’라는 뜻의 ‘요다카’, ‘벌새’를 의미하는 ‘하치 스즈메’, ‘물총새’를 말하는 ‘가와 세미’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3종 철새들은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는데, 세상 어느 곳에 발 딛지 못하고 떠 있는 자신을 나타낸 것이다. 나아가 이솝 우화에서는 고독을 상징하는 새라서 미사키의 외로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미혼모라고 가족에게서 버림 당한 후 배움을 중단해 뚜렷한 일자리가 없는 에리코는 미사키의 요다카 카페에서 일하며 커피를 배우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찾는다. 나쁜 남자에게 사랑을 갈구하며 관심과 애정을 필요로 하는 두 아이에게는 오히려 사랑을 주지 못했던 에리코는 미사코와 실종자 가족들과의 교류를 통해 세상을 향해 한발 나아가는 정신적 성장을 이룬다.

이렇듯 작품 속 각자의 아픔을 가진 이들은 섬세한 정성과 차분한 기다림으로 내린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서로를 보듬는다. 그들의 슬픔과 눈물, 서로를 향한 위로와 격려가 보는 이에게도 작은 힘으로 전해지는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커피 한 잔을 음미하듯 영화가 주는 여운을 천천히 음미해보자.


오늘의 커피 : 탄자니아 AA 핸드드립 – 왜 이렇게 마셔야 할까?

<The Furthest End Awaits>(2015) © Toki Entertainment


‘킬리만자로’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진 탄자니아 AA(Tanzania AA)는 ‘영국 왕실의 커피’로 불릴 만큼 부드럽고 깔끔한 맛으로 사랑받는다.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탄자니아에서는 킬리만자로산과 빅토리아 호수 근처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화산재 토양과 고산 지대의 장점을 살린 양질의 커피가 생산된다.

탄자니아 AA는 미묘한 열대 과일향이 나면서 상쾌한 산미가 느껴지고 다크 초콜릿의 깊고 복잡한 쓴맛이 어우러져 있어 와인에 비견될 만큼 고급스럽다. 신맛과 단맛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렇게 섬세한 맛과 향의 탄자니아 AA를 즐기기에는 핸드드립 기법이 적절하다. 중력의 원리로 커피를 내리는 핸드드립은 뜨거운 물이 커피층이 지나는 동안 원두 고유의 맛과 향을 부드럽고 깔끔하게 추출해준다. 같은 원두여도 원두의 분쇄도와 추출 시간, 물 온도와 물줄기 조절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에 핸드드립은 무한한 매력을 지닌다.

핸드 드립에서 중요한 기구인 드리퍼와 종이 필터는 평소 커피를 즐기던 평범한 주부의 신선한 발상으로 만들어졌다. 1908년 독일, 멜리타 벤츠는 커피 찌꺼기가 완전히 걸러지지 않아 아린 맛이 나는 커피를 두고 가족에게 맛있는 커피를 대접할 방법을 고민했다. 이에 황동 냄비의 바닥에 구멍을 여러 개 뚫고 아이의 공책을 뜯어 동그랗게 오린 다음 커피 가루를 넣고 물을 부어보았다. 커피 찌꺼기 없이 맑은 커피가 내려졌고 맛과 풍미도 훨씬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그는 원뿔형 드립퍼와 서버, 포트, 종이 필터 등 핸드드립에 필요한 기구 세트를 1937년 최초로 출시하고 이 기법을 전 세계적으로 알렸다. 나만의 취향으로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핸드드립은 오늘날까지도 커피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추출법으로써 자리 잡았다.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전하는 따뜻한 위로

<The Furthest End Awaits>(2015) © Toki Entertainment


아야코: 이런 일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어요. 신원 불명 시신이 바다에 떠오를 때마다 

           혹시나 하면서 아버지가 아닐까 두려워했죠. 그러니 미사키 씨 마음은 잘 알아요.

           하지만 아버지가 맞다면 돌아오게 해드리고 싶어요. 차가운 바닷속에서 얼마나 돌아오고           

           싶으셨겠어요.

미사키: 다른 분이 어떻게 하시든, 저는 계속 기다릴 거예요.

아야코: 하지만 돌아오셨어요. 어떤 모습이든 간에. 

           돌아오신 거예요, 우리가 기다리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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