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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라희 Dec 08. 2022

음악 <누드 Nxde>와 영화 <블론드>의 간극

누드와 블론드의 간극

누드와 블론드의 간극

-그룹 (여자)아이들의 신곡 <누드 Nxde>와 넷플릭스 영화 <블론드>



같은 인물을 보는 다른 시선

그룹 (여자)아이들 <누드> © 큐브엔터테인먼트


메릴린 먼로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아이콘이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보진 않았어도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스치듯 본 적이 있다. 컬을 넣은 황금빛 헤어와 나른한 듯 내리깐 눈빛,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살짝 벌어진 입, 오뚝한 코 옆에 점까지 박힌 인상적인 그녀의 얼굴. 게다가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환풍기 위에 서서 날리는 치마를 부여잡은 이미지나 오프 숄더의 핫핑크 드레스를 입고 남성 댄서들 사이에서 춤추는 장면 등은 짧게 봤어도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다. 

그러한 이미지에서 우리가 전달받는 메시지는 꽤 공격적이고 위압적이다. ‘블론드 헤어를 한 여자는 멍청하고 남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인기에만 집착하고 돈만 추구하는 캐릭터’라는 정의와 지속적으로 주입된 고정관념이다.

넷플릭스 영화 <블론드 Blonde>가 이와 같은 고정관념에 기반해 철저히 상업적 이익을 노리고 만든 작품이라면, (여자)아이들의 신곡 <누드 Nxde>는 기존의 관점을 뒤엎는 ‘혁신적’인 시선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대중음악 <누드>와 영화 <블론드>는 메릴린 먼로라는 같은 인물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에 대한 관점은 전혀 다르다. 음악 <누드>가 영화 <블론드>와는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는 배경은 우선 발화의 주체가 바뀌었고 그에 따라 입장과 시선이 달라진 때문이다. <누드>라는 곡은 단순히 음악적 범주에만 가둘 수 없는, 하나의 사회 현상과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아이돌, 우린 더 이상 인형이 아니야

그룹 (여자)아이들 <누드> © 큐브엔터테인먼트


(여자)아이들의 곡 <누드 Nxde>는 올해 10월 17일 공개한 미니앨범 <아이 러브(I love)>의 타이틀곡이다. 발매 직후 전 세계 40개 지역에서 아이튠즈 톱 앨범 1위를 차지하고,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인기 급상승 음악’ 1위로 올라서며 10월 31일 기준 9042만 회의 조회수를 달성하고 있다. 대중이 왜 이토록 이들의 음악과 뮤직비디오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는 그룹 (여자)아이들이 음악에 실어낸 노랫말과 샘플링 음원, 상징으로 가득한 뮤직비디오가 총체적으로 결합되면서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때문에 <누드 Nxde>는 이러한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우선 노랫말을 한 줄씩 짚어보자. 리더 전소연이 영어 랩으로 포문을 연다. 이 곡을 통해 ‘누드’라는 단어의 정의와 의미를 새로 제시하겠다는 출사표다. 


(소연) Why you think that 'bout nude (왜 누드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

'Cause your view's so rude (네 견해가 너무 무례하니까)

Think outside the box (틀에서 벗어나 생각해 봐)

Then you'll like it (그럼 너도 좋아하게 될 거야)


아래 가사부터는 뮤직비디오도 같이 봐야 한다. 메인 보컬의 민니가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메릴린 먼로가 연기한 쇼걸 로렐라이의 장면을 선보이는데, 대중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나른한 눈빛과 말투, 멍청한 이미지를 재현한다. 이에 대중은 흔히 강아지에 붙였던 이름으로 그녀를 부르며 무시하고 하대하는 태도를 짚어낸다. 연이어 메인 댄서 겸 서브보컬 중국인 우기가 이를 강력히 비판하고, 리더 소연은 메릴린 먼로의 실제적 성격과 행동을 외면하는 대중의 모습을 포착한다. 또 다른 섹시 스타인 마돈나를 상징하는 파워붑 의상을 입고서 메릴린 먼로가 좋아했다는 휘트먼의 시집 <풀잎>을 읽는 모습이 전하는 의미가 그러하다.


(민니) Hello my name is 예삐 예삐요

말투는 멍청한 듯 몸매는 섹시 섹시요

그럼 다이아 박힌 티아라 하나에

(우기) 내가 퍽이나 웃게 퍽이나 웃게

(소연) 뒤틀려버린 로렐라이 Don't need no man (난 남자가 필요치 않아)

철학에 미친 독서광 Self-made woman (자수성가한 여성)

싸가지없는 이 Story에 무지 황당한

야유하는 관객들 You tricked me you're a liar (날 속였어, 거짓말쟁이야)


그룹 (여자)아이들 <누드> 뮤직비디오 중 © 큐브엔터테인먼트


<누드 Nxde> 뮤직비디오에는 다양한 상징적 이미지가 제시된다. 18세기 쇼비즈니스의 정점을 뜻하는 영화 <물랑루즈>의 한 장면을 재현하며 의상과 분장을 한 그룹 아이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7년 만의 외출>에서의 메릴린 먼로를 상징하는 흰 드레스를 입은 우기의 모습과 샤넬 바지 정장을 입고 워킹하며 노래하는 상반된 모습을 교차한다. 또한 곡 제목이기도 한 ‘nude’라는 핵심 단어에는 지퍼를 내리는 듯한 동작으로 포인트 안무를 붙였다.

여기에 노랫말의 내용은 이러하다. 메인 보컬 미연이 가십에 휘둘리는 스타로서의 피로를 토로함과 동시에 대중이 원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자신이 설사 사랑받지 못해도 ‘누드’로서의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바로 서겠다는 의미를 멤버 우기와 슈화의 입을 통해 전한다. 인간이 태어날 때 발가벗은 채 세상에 나온 것과 같이 겉껍질을 벗어던진 자신으로 세상을 마주하겠다는 선전포고다. ‘아리따운 나 자신을 입었다’는 의미가 그룹 아이들이 제시한 ‘누드’의 새 정의다.


(미연)아 발가벗겨져 버린 Movie star

아 별빛이 깨져버린 밤

(우기) 꼴이 볼품없대도 망가진다 해도

다신 사랑받지 못한대도

(슈화) Yes I'm a nude

(미연/슈화) Baby how do I look, how do I look

아리따운 날 입고 따따랏따라


뮤직비디오의 정점은 리더 소연이 진주가 박힌 의상을 입고 쇼케이스에 전시되어 품평질을 당하고 경매 낙찰을 받는 장면과 거대 금액으로 낙찰된 동시에 분쇄기에 갈려 나간 퍼포먼스로 유명한 뱅크시의 작품 <러브 인 더 빈 Love in the Bin>을 오마주한 장면에 찍힌다. 제멋대로 품평하는 대중에게 정면으로 대응하고 동시에 야한 그림을 기대한 이들에게 ‘변태는 너’라며 따끔한 말을 쏘아붙이는 모습에서는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쇼케이스에 선 리더 소연이 착용한 의상이 조개가 토해낸 고통의 결정체인 진주가 알알이 박힌 의상이라는 점에 있어서도 상징적이다. 예술가들이 발표한 작품들이란 결국 고통을 승화한 결정체가 아니었던가. 


(소연) 실례합니다 여기 계신 모두

야한 작품을 기대하셨다면

Oh I'm sorry 그딴 건 없어요

환불은 저쪽 대중은 흥미 없는 정보

그 팝콘을 던져도 덤덤

행복과 반비례 평점

But my 정점

멋대로 낸 편견은 토할 거 같지


Now I draw a luxury nude (난 이제 최고급 누드를 그려)

아리따운 나의 누드
 아름다운 나의 누드
 I'm born nude (나는 나체로 태어났어)
 변태는 너야
 Rude
 Nude


간주에는 오페라 <카르멘>의 아리아 ‘하바네라’가 샘플링 음원으로 도입됐는데, 이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는 카르멘이 돈 호세를 유혹하려고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지만 누구도 자신을 길들일 수 없고 사랑은 자신이 선택한다는 당돌한 입장을 표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누드 Nxde>를 작사/작곡/프로듀싱한 그룹 아이들 리더 전소연은 메릴린 먼로라는 인물에 대중에게 조명받는 삶을 사는 자신을 이입하고 이 곡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전소연의 프로듀싱 능력도 인정받지만 전 멤버 수진의 일진 논란과 탈퇴 후 보다 단단해진 팀워크, 재도약에 대한 굳은 결기도 그룹 아이들의 성공요인으로 생각된다.

리더 소연은 음악적 표현뿐 아니라 무대와 의상, 분장까지도 총체적으로 프로듀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속사에서 공모로 받은 타 작곡가들의 음악과 자신이 작사/작곡한 곡을 동시에 경쟁 PT에 붙여 최종 선택받고, 곡 콘셉트부터 제작 진행, 최종 컨펌을 받기 위해 PPT까지 준비해서 기획제작팀의 회의를 주관하는 모습이 이미 공개된 바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누드 Nxde>라는 곡이 총체적인 종합예술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본다.

대중은 생각보다 영악해서 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알아본다. 그룹 아이들의 음악을 그저 흘려듣는 대중음악으로 치부하고 음악적 소비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 그들이 전달하려는 음악적 메시지를 읽고 그에 반응하고 있다.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 여태 벗어나지 못한 영화 블론드

영화 <블론드> © 넷플릭스


이와 다른 대척점에 넷플릭스 영화 <블론드>가 있다. 이 작품은 조이스 캐럴 오츠의 동명 소설 <블론드>를 토대로 제작됐다. 메릴린 먼로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 영화의 형식을 띠지만, 사실 그녀의 사생활에 관해 과한 상상력을 더한 픽션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미국의 영화 평론가 레이스 랜돌프가 ‘전기 영화인 척하는 강간 판타지’ 라며 평론을 거부할 만큼 논란이 많다.

앤드류 도미닉 감독이 연출한 영화 <블론드>는 감독 특유의 앵글로 관음적이고 포르노를 넘어선 자극적 연출이 가득하다. 영화상에 제작자에게 당한 강간, 케네디 대통령 형제와의 육체적 관계, ‘스리섬’ 등에 관한 소문에 이르기까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처럼 묘사했다. 

이 작품에는 ‘클리쉐(cliché)’라고 말하는, 지속적으로 주입받아 온 메릴린 먼로에 대한 이미지에 관한 진부하고 상투적인 영상적 서술만이 그저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감독은 메릴린 먼로의 캐릭터를 멍청하고 신경질적인 애정결핍 환자로 그렸고, 그녀의 모든 행동의 원인을 엘렉트라 콤플렉스 하나로 뭉뚱그렸다. 메릴린 먼로라는 한 인간에 대한 연구나 깊이는 전혀 없이 말초적인 감각에만 기대서 그녀를 제멋대로 재단해버렸다.

메릴린 먼로는 감정 기복이 심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지적이고 탐구적인 면모가 있는 인물이었다. 철학책과 시집을 찾아 읽었고 지적인 대화를 즐겼다는 면도 알려져 있다. 그녀는 자신이 배우로서 어떻게 입지를 다져나가야 할지 고민하며 연기 활동에 진심을 쏟았고,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꾸미고 어떻게 대중에게 선보여야 할지, 어떤 인맥을 만들어갈지 연구했던 똑똑한 여인이었다. 

바로 이것이 리더 전소연을 필두로 한 그룹 아이들이 그린 메릴린 먼로와 앤드류 도미닉 감독이 그린 인물이 다른 지점이다. 앤드류 도미닉 감독은 남성주의적 관점에서 성적 환상으로 가득 채운 허상의 메릴린 먼로를 그렸고, 그를 통해 한몫 크게 돈 좀 벌어보려는 얄퍅한 수를 썼다. 그는 넷플릭스의 지원비를 받고 감독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출연한 배우나 애쓴 스태프에게는 안타깝지만 그런 각박한 평가를 받아도 무방할 만큼의 영화다.


차세대 아티스트에게 요구되는 대중과 제작사의 역할

그룹 (여자)아이들 <누드> 뮤직비디오 중 © 큐브엔터테인먼트

 

케이팝 문화는 이제 단순한 음악적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보이 그룹이 대세였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실력파 걸그룹이 온갖 차트를 평정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 엔터테인먼트사의 체계적 훈련을 받고 데뷔한 예술인이다. 노래와 춤, 연기에 토크까지 모든 재능을 갖추고 무대에 나선다. 무대 안팎으로 대중의 예리한 눈과 귀를 벗어날 수 없다. 라이브 실력은 기본이다. 각 소속사의 아이돌은 러싱 머신에서 전속력으로 뛰면서 노래하는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에 MR제거 음원이 영상으로 뜨고 이른바 ‘직캠’이라고 불리는 1인 팔로우 영상까지 공유되는 마당에 실력이 없는 아이돌은 버티고 설 수가 없다.

이전 세대 비주얼 가수처럼 예쁘게 웃고 춤추고 입만 벙긋대는 오락거리가 아니라, 제대로 실력을 갖추고 예술적 기량을 뽐내는 진정한 아티스트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수많은 예술 장르에서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노래와 춤, 무대적 연기를 표현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제 한국 아이돌은 진정한 아티스트로서 스스로를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세대와 시대가 달라졌다는 신호다. 현세대 아이돌은 작사/작곡가에게서 일방적으로 수급받은 곡을 부르고 춤을 추는 눈요기를 선보이는 게 아니라, 음악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고수하고 이를 총체적인 무대 연출적으로도 내보이는 역량을 갖췄다. 

이러한 지점에서 대중과 제작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중은 그들의 언어인 음악과 춤, 메시지를 존중해야 한다. 문학이나 미술계의 작가에 대한 대우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상시하고 스스로 굽실대는 형상을 보이는 반면, 대중음악계 아티스트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게 무시하고 모멸하며 낮춰보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들이 예술적 역량을 쌓기 위해 노력해온 시간과 노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스스로 발화할 수 있도록 존중해야 한다.

또한 엔터테인먼트 제작사 등은 차세대 아이돌이 보다 더 뛰어나고 다양하게 자신을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육성하기 위한 방안을 고려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것이 케이팝과 케이팝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데에 대한 보답이자, 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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