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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라희 Dec 08. 2022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 현대인을 위한 우화

소리로 풀어낸 현대인을 위한 우화

소리로 풀어낸 현대인을 위한 우화

국립창극단의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


이 땅의 토끼와 자라를 위한 응원가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 중 수국 장면 © 국립극장


“창극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 몰랐어요. 수궁가를 이렇게 풀어내다니, 감탄했어요. 충격이에요.”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을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판소리를 몰라도 가슴이 뻥 뚫리는 밝은 창극’이라는 평단의 반응도 뒤를 이었다. 국립창극단이 또 한 편의 새로운 창극을 세상에 내놓았다. 관객들은 이제 ‘믿고 보는 국립창극단’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 소리, 무대, 의상 모든 것이 새롭지만 또한 너무도 자연스럽게 오늘 우리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원전 ‘수궁가’의 끝에서 시작한다. 자라의 꾐에 용궁에 갔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온 토끼 ‘토부’는 아내 ‘토모’와 아들 ‘토부’에게 돌아온다. 해후의 기쁨도 잠시, 독수리의 습격에 몰린 토부는 목숨을 잃고 곧이어 사냥꾼의 포획에 사로잡힌 토모 또한 세상을 뜬다. 토부와 토모는 유언과 같이 토끼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여덟 가지 환란에 대해 읊어주고 떠난다. 졸지에 고아된 토자는 살아갈 길이 멀고 험한 뭍에서의 삶 대신 물에서의 삶을 선망하고, 병에 걸린 용왕께 바칠 간을 다시금 찾아 나선 별주부 자라와 만난다.

파격적인 재해석과 예상을 뛰어넘는 구성으로 유명한 연출가 고선웅이 만든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은 <변강쇠 점찍고 옹녀>, <흥보씨>에 이은 세 번째 창극이다. 작창가 한승석과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며 다시금 그의 천부적인 창작력을 드러냈다. 예술감독 유수정도 작창에 힘을 보탰다. 2021년 초연을 거쳐 2022년 재연을 마친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은 해를 넘기고 공연 횟수를 거듭할수록 작품성과 흥행성,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았다.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하고 싶은 것일까. 연출가 고선웅은 ‘딛고 선 땅에서 춤을 추자’는 주제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유토피아는 내 안에 있다’는 메시지는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파랑새’의 주제와도 상통한다.

 

어른으로 거듭난 토자의 성장 서사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 중 수국 장면 © 국립극장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을 왜 주목하는 것일까. 창극은 판소리의 옷을 차려입은 현대극이다. 극 중 토자의 가족이 겪는 환란은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내는 우리네 모습과 닮아 있다. 토자가 먼발치 뭍에서 보고 환상을 가졌던 수국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간 힘든 삶이 아니다. 권력욕에 취한 용왕은 물러설 기미가 없고 그 아래 살아가는 바다 생물들은 보호받지 못한 채 온갖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권력에 납작 엎드린 넙치와 달리 병마사 주꾸미는 체제 전복을 꿈꾼다. 

동물에 빗대어 인간의 삶을 묘사한 우화가 갖는 힘은 발랄하고 생기 넘치지만 그 안에 웃음을 실은 날 선 비판과 묵직한 울림이 있다는 것이다.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은 그러한 측면에서 가볍지만 경박하지 않은, 진정 어른을 위한 동화다.

연출가 고선웅은 <변강쇠 점찍고 옹녀>, <흥보씨>, <귀토-토끼의 팔란>을 거치며 그 자신 또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전에 제작된 창극과의 연장 선상에서 보았을 때 그는 창극의 한계를 벗어나 점차 자유로워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장기인 언어유희를 자유자재로 구사함과 동시에 원전 판소리를 작품에 온전히 담아내야 한다는 강박 또한 없는 것으로 보인다. 창극 무대에 LED를 설치해 다양한 무대적 그림을 구현하기도 하고, 의상 또한 바닷속 생물을 나타내는 데 있어 한국 고유의 매듭을 보다 현대적으로 활용해 도입하는 등 실험적인 자세를 보여줬다. 연출가 고선웅 또한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자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계기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은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그것을 담아내기 위해 토자와 별주부, 주꾸미의 행동이 달라졌음이 보인다. 

뭍에서의 삶이 온통 불행과 불만이었던 토자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수국으로 향했다. 별주부 또한 다른 이를 지지대로 삼아 자신의 충정을 표하고 그로써 인정받고 싶어 했다. 주꾸미는 앞에서는 용왕에게 충직한 듯 하지만 토자를 이용해 불만이었던 용왕 체제를 뒤집고 싶어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계도 마찬가지로 극 속 인물들이 팔란을 이겨내고 살아가듯 저마다의 방식과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작품을 통해 투영해볼 수 있다.


우화지만 현대적이고 시사적인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 중 마지막 장면 © 국립극장


작품 제목인 ‘귀토’에는 2가지 의미가 있다. 귀토는 거북이(龜)와 토끼(兔), 물과 뭍의 다른 세계에 사는 두 존재가 만나 서로를 이해하게 됨을 의미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돌아올 귀(歸)에 땅 토(土)라 하여 살던 땅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안락한 집을 나서 세상을 경험하며 한층 성숙해져 돌아온다는 의미가 있다.

극 후반부 토자가 자라의 등에 업혀 다시 뭍으로 돌아왔을 때 장면은 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 팔란 장면을 거치면서 별주부는 뭍에 사는 토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고 토자 또한 물에 사는 이들의 삶 또한 그들만의 팔란이 있음을 알게 됐다. 서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을 담아내고자 한 제작의도가 보이는 지점이다.

토자는 넓은 들판에 앉아 혼자 읊조린다. ‘살던 땅으로 다시 돌아왔네’. 그때 자신이 뭍에서 감당하기 힘든 팔란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그를 스쳐간다. 독수리의 습격과 사냥꾼과 사냥개, 내리는 눈발 등이 이제는 그 자체로 아름다워 보인다. 토자는 수국에서의 팔란을 거쳐 한층 성숙해졌고 자신이 속한 뭍에서의 삶과 그 소중함을 이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국립창극단과 한국 음악극의 미래

창극 <귀토-토끼의 팔란> 중 한 장면 © 국립극장


창극이란 판소리를 극화해 무대로 올린 것이다. 오늘날 관객이 원하는 창극은 전통문화 보호 차원에서 국가적 지원을 바탕으로 의무적으로 제작된 작품이 아니라, 작품 자체만으로도 독립성과 완결성, 작품성을 갖춘 새로운 창극이야말로 관객이 기대하는 창극이다. 우리의 소리와 악기로 만든 음악극이 이토록 신나고 즐겁다는 새로운 발견을 관객에게 선사해야 할 것이다.

보는 눈, ‘안목’이란 어린 시절의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길러진다. 창극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바탕이 된다. 또한 관객의 감동이 곧 새로운 작품이 탄생되는 배경이 된다. 국악 교육이 공교육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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