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소통게시판이 사라졌다

그들의 아쉬운 결정

by 코와붕가

출근 루틴


나는 주로 정시 출근시간보다 30분 먼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사무실에는 우리 조를 기다리는 주간/야간 근무조가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교대조가 오면 퇴근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남직원 침실에 들어가서 근무복으로 갈아입는다. 운동화에서 근무화로 바꿔 신으면 지하철 직원이 된다.


막내 직원보다 일찍 나오면 커다란 계산기를 들고 금고로 향한다. 이어서 계산기 자판을 힘차게 누르며 금액을 확인한다. 공용 책상에 앉은 다음 꺼져있는 모니터에 암호를 넣는다. 언제부턴가 단계가 많아졌다. 회사에서 쓰는 업무용 시스템에 접속한다. 여기서 또 암호를 넣는다. 암호천국 불신신용!


현금출납부와 금고 금액을 확인한다. 이상 없으면 탕비실에 가서 카누를 반으로 나눠 종이컵에 담아 마신다.

카누의 신선함이 사라졌다. 맛보다는 내 몸에 업무의 시작을 알리는 에너지다.


업무용 시스템에 들어가서 우선 역무일지를 본다. 다른 조에서 무슨 일을 했고 인계사항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전체문서함에 들어가서 문서를 훑어본다. 역시 따분하다. 그리고 이제 가장 흥미로운 곳으로 향한다. 바로 회사 내 '소통 게시판'이다. 아니 그런데 마우스가 향한 그곳이 텅 비어있었다.


소통 게시판이 사라지다


소통 게시판은 자유로운 닉네임으로 글을 올리고 답변을 다는 곳이다. 직원들이 궁금해하는 업무에 대한 궁금증부터 사적인 고민까지 나누는 곳이다. 업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직원, 여러 재테크 지식과 성공담을 들려주는 부자 직원, 전국 맛집을 알려주는 현자, 뛰어난 사진 실력으로 건조한 눈을 정화시켜 주는 사진사, 시리즈로 만화와 글을 올리는 작가 등이 있는 곳이다.


물론 소통 게시판이 익명으로 운용되다 보니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회사 내에 벌어지는 각종 이슈를 과대포장해서 글을 올리는 자도 있고, 특정 직원을 비난하는 내용도 있고, 정치색을 드러내며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직원도 있다.


소통 게시판을 없애기로 결정한 곳은 사측(회사)과 대표노조였다. 이 회사는 1,2,3 노조가 있는 곳이다. 아무래도 서로가 경쟁을 하다 보니 소통 게시판에서 노조와 노조가 서로 헐뜯고 비판할 때가 있다. 사측의 입장과 대표노조 간에 이해가 맞았다고 본다.


직원들의 원성이 크다. 사실 그들만의 리그에 동참하고 싶은 직원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소통 게시판에서 다양한 정보를 나누고 얻는다. 가끔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한 닉네임을 발견할 때면 우리 회사의 희망을 본다.


귀를 닫았다. 그동안 누군가는 듣기 싫은 글이 많았나 보다. 대부분의 직원은 조합 간부나 사측 임원에게 솔직한 얘기를 하지 못한다. 부담스럽고 아무래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블라인드'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곳에 들어가 보지 않았다. 주로 본인이 속한 회사를 뒷담 화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소통 게시판이 없어졌다고 '블라인드'까지 가고 싶지는 않다. 그 정도의 열의는 없다.


아무튼...


"노조는 귀를 열어야 새로운 정책을 발견할 것이고,

회사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직원을 가둬놓지 말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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