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스파링

by 코와붕가

복싱을 배우고 싶던 어느 날


30대 시절,

우리 집을 전세 주고 대출을 갚기 위해 본가로 들어갔다. 내가 내리 결정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내가 대화 중에 결정을 했고, 바로 살고 있던 집을 전세로 내놨다.

어머니께서는 3년 동안 최소 생활비만 받을 테니 알뜰살뜰 돈 모아서 대출금을 갚으라고 하셨다.


막상 살아보니 어머니와 아내의 관계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서로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내게 불평을 했다.

이 시기에 내가 잘한 점은 서로의 말에 듣기만 하고, 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회식을 마치고 컴컴한 저녁과 밝게 빛나는 별을 보며 어머니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거리 건물 꼭대기에 있는 복싱장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문득 '배워 볼 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땡~!'

복싱장은 5층에 있다. 계단을 올라가는 중에 크고 짧은 종소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렸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복싱장은 올라가는 자체로도 훈련이었다.

이곳에 등록하기 위해 1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쳤다.


첫 스파링


6개월을 등록했다. 관장은 한 달 해보고 결정하라며 결제를 미뤘다. 난 한 달을 하면 다니고 싶지 않을 거 같았다. 6개월을 밀어붙였다. 서비스로 검은색 밴디지를 받았다. 관장에게 밴디지 감는 법을 배우고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교대근무 특성상 아침에 운동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관장은 내 사정을 듣고 체육관 열쇠를 줬다.


복싱을 배우는 동안 누구보다 성실히 했다. 가정과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풀렸다. 어느새 체중은 군입대 시절 몸무게로 바뀌어 있었다. 난 몰랐다. 주변에서 어디 아프냐며 물을 정도였다. 복싱에서 줄넘기는 시작과 끝이다. 끊임없이 스텝을 밟고 움직이며 샌드백을 쳤다. 지치고 넘어져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났을까. 관장이 나를 불렀다. "마우스 피스 하나 파자."

그 뜻은 저 링 위에 올라가 보자라는 의미였다. 내가 연습하는 동안 링 위에서 벌이는 스파링을 힐끗힐끗 보며 구경했다. 난 속으로 '저거 밖에 못하나?'라는 교만한 마음이 들었다.


마우스 피스를 맞추자마자 관장은 링 위에 올라오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나와 체격이 비슷한 체대출신 관원을 불렀다.


"이 형 오늘 스파링 처음이니까, 네가 알아서 잘해줘라."


내게는

"배운 대로 해 봐. 알았지? 긴장 풀고."


난 처음으로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끼고 시작 종소리를 기다렸다.

헤드기어에서 퀴퀴한 땀냄새와 젖은 상태가 느껴졌다. 글러브는 시간이 갈수록 무거웠다.


"땡!"


생각과는 달랐다. 상대방은 익숙한 듯 다가와서 한 번 때려보라는 시늉을 했다. 그동안 배운 잽과 훅은 상대방에게 닿지도 않았다. 옆에서 보던 스파링과 직접 하는 스파링의 차이는 컸다. 상대방은 보다 못해 천천히 잽으로 툭툭 쳤다. 그러고 나서 복부에 어퍼를 꽂았다.


"악!!"


난 1분 30초 만에 쓰러졌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내게 겸손함을 주는 펀치였다.

1라운드를 버티지 못하다니.... 너무도 창피해서 샤워도 하지 않고 도망가고 싶었다.

스파링을 마치고 링에 내려왔다. 전신이 땀에 젖었다. 복부의 통증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형님, 잘 배우셨네요. 자세 좋은데요. 다음에 다시 해요."

내 첫 파트너는 예의상 칭찬을 해 줬다. 다음에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놈이 무서웠다.

"한 수 가르쳐 주셔서 고마워요. 보는 거랑 확실히 다르네요."


가끔 복싱장을 지나칠 때가 있다. 정통 복싱장에서 다이어트 복싱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새롭다.

3년을 넘게 복싱장에서 있었다. 하면 할수록 부족한 점이 보였다. 본격적으로 스파링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친해졌다. 역시 싸워야 친해지는 걸까?.


그중 미술 강사를 하면서 복싱을 오래 해온 형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뽀얀 피부를 갖고 뿔테 안경을 썼다.

말과 행동이 신사였다. 본업을 하면서 프로복서 라이선스까지 땄다. 나와 스파링도 여러 번 했고, 부상(갈비에 실금)까지 선물로 받았다. 체육관 회식을 하면서 형님이 내게 해줬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복싱 배웠다고 어디서 주먹자랑 하면 안 된다. 고수는 지천에 깔렸다. 겸손해야 해."


그럼에도 난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불량배와 싸워 이기는 상상을 종종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베프에게 차단당함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