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로연수 리스트
입사를 하고 여러 선임을 만났다. 당시에는 부역장 밑으로는 '선배님'이라 불렀다.
처음 배정받은 역에 한 달 훈련기간을 가졌다. 두 선배가 있었다. 성격이 서로 상반됐다.
한 분은 말수가 적고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다른 분은 역에서 분회장과 총무 역할을 했다.
그래서일까. 성격이 걸걸하고 호탕했다.
두 분 이름이 공로연수 명단에 보였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싶었다.
어쩌다 업무상 전화통화를 하게 되면 누구보다 반가워했다. 이제 회사 안에서 그분을 볼 수 없다.
'노후를 잘 준비하셨을까?' '자녀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문득 궁금했다.
100여 명 이상이 공로연수 명단에 있다. 다시 자세히 살펴본다. '아니, 이 분도 공로연수시네?'
나와 6호선 S역에서 3년을 근무했다. 누구와도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을 가졌다.
사람을 철저하게 가린다. 싫은 사람은 근처에 두지도 않는다.
첫 회식 날, 나는 취했고 말을 많이 했다. 시끄러웠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부역장에게 난 '투명인간'이 됐다.
그래도 업무를 해야 하기에 하나씩 일을 맡겼다. 부역장은 본인의 업무 형식에 벗어나면 혼을 냈다. 그럴 때면 사무실 안이 차디찬 얼음고 같았다.
투명 인간 취급받던 내가 부역장과 친밀해진 계기가 있었다.(사실 거의 모든 조원이 투명 인간이었다.)
누구도 부역장과 말을 섞기 싫어했다. 업무 지시를 받으면 혼날걸 예상한다. 그런데 난 조금 달랐다.
혼나면 문서를 들고 부역장실로 찾아갔다.
"이곳만 고치면 됩니까?" 난 상냥한 투로 말을 건넨다.
"그래." 부역장 얼굴에는 화와 짜증을 달고 있다.
"다른 말씀 하시면 안 됩니다."
"뭐라고?!" 황당한 듯 쳐다본다.
이렇게 나는 다른 직원과 다르게 행동했다. 그 점이 새로웠나 보다. 이후 띠동갑인 그와 저녁 식사 파트너로 내정됐다. 조원들은 내심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전담마크를 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부역장은 본사로 올라갔다. 같이 가자는 제안에 나는 아이를 핑계로 거절했다. 내가 사는 게 우선이었다.
그는 핵심부처에서 근무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면 뭐 하냐. 안 좋은 소식들이 귀에 들어왔다.
그곳에서도 말년에 성질을 버리지 못하고 다른 직원과 일이 있었다고 한다. '좀 참지.'
그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전해 들은 소식에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나와 관계를 맺었던 직원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 그들의 이름을 보면서 지난날을 추억한다.
나도 어느새 40대 후반이 됐다. 그분들의 단점은 뒤로하고 장점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잘 안된다.
"선배님들 이제 사회로 나가시는군요. 건강하시고요. 가끔 사무실 들리세요.
맛있는 커피 대접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