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나기 힘들구나..

어디로 가나?

by 코와붕가

"오늘 과외시간 늦으니까 11시 이후에 들어와."


간단히 출근 포옹을 마치고 나서 전달사항을 말해준다. "나도 오늘 약속 있어서 늦을 거야." 당연히 늦을 거라는 자신만만한 톤으로 대답했다.

"술 조금만 먹고 들어와."

"당연한지." 오랜만에 약속이라 출근길 발걸음이 가뿐하다.


1차 취소


야간조와 교대를 하자마자 열차에 타는 냄새가 난다고 확인해 보라는 관제 전화가 왔다. 부리나케 야간조와 뛰어내려 갔다. 해당칸에 타서 냄새를 맡아본다. '고무 타는 냄새가 난다!' 이때 기관사 방송이 나왔다.


"열차 고장으로 다음 역에서 모두 하차하겠습니다."


기관사에게 전호를 한다. 고장 난 열차는 다음 역에서 승객을 모두 하차시키고 정비를 받게 된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에 심호흡을 한다. 심박수를 늦춘다. 우리 역 승강장은 지하 5층에 있다. 내려갔다 올라오면 비상 훈련이 따로 없다.


오전 9시가 넘어 업무를 시작할 무렵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오늘 만나기로 한 주인공이다. 2주 전에 약속을 잡았다.


"코와붕가, 장탈(발매기 현금회수) 하는가?"

"형 오늘 만나기로 한 거 알지?"

"그런데... 오늘 아칭에 고향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거기 가봐야 할거 같아. 미안혀~"


대부분 약속 당일날 전화 오는 경우는 두 가지다.

1. 오늘 보는 거 맞냐? 약속장소는 어디냐? 또는 2. 미안하다. 다른 일이 생겼다. 다음에 보자.


후자였다. "형, 잘 다녀와. 다음에 보자." 참고로 오늘 보기로 한 사람은 날 주식세계로 인도한 회사 형이다.

나와 다르게 국내 개별종목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오랜만에 먹고 마시며 서로 투자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것도 내가 산다고 했다. 결국은 취소됐다.


2차 도전


누군가 만나야 했다. 그래서 다음 선수로 코인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제대한 사회복무요원 다빈이가 생각났다.

톡을 보냈다.


"다빈아! 삼겹살 먹자!"

"좋죠. 언제요?"

"오늘!"

"오늘은 힘들겠네요."

"ㅇㅋ"


3차 도전


전에 같이 근무한 직원이 생각났다. 한 번씩 근무 때 찾아온다. 역시 톡을 보낸다.


"(맥주) 이모티콘"을 보냈다.

"(치과 사진)"이 왔다.

"ㅇㅋ"


4차 도전


전에 노동조합을 같이한 형님이 생각났다. 이 분은 막걸리를 좋아한다. 한 번씩 톡으로 안부를 묻는다.

오늘 야간근무를 마친 비번 날이다. '잘 됐다.' 역시 톡을 보낸다.


"형님!"

"네(성격이 겸손하고, 하대하지 않는다.) 잘 계시죠?"

"어디십니까?"

"지금 운전하고 있어요."

"저녁 시간 되십니까?"


바로 전화가 왔다. 목적지에서 저녁 늦게 용무를 마치고 돌아온다고 했다.

내 근무를 물어보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나를 받아준 곳


퇴근을 하고 역 출구로 나갔다. 골목 구석에 있는 순댓국집에 들어갔다. 손님이 아무도 없다.

전체적인 풍경이 오늘 나의 모습과 비슷하다. 쓸쓸함.


집 근처 도서관에 갔다. 책을 읽는 사람보다 무언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구석에 앉아 가방에서 전자책을 꺼내 읽었다. 생각보다 집중이 잘 됐다. 언제 날 잡고 오롯이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1시간을 보낸 후 헬스장에 갔다. 다행히 11시 30분까지 영업이다. 다행이다. 계획에 없던 운동이라 다른 날보다 힘이 들었다. 늦은 시간에도 운동을 하는 회원들을 본다. 평소 운동 시간보다 늦게 와서 보지 못했던 회원이 많았다. 마음을 다잡고 입을 꽉 다물고 아령을 들었다. '힘들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이것 봐 취했네."

아내의 말을 듣고 취한 척을 했다. 그런데 아들은 바로 알아본다.


"아빠 연기하는 거야."


'역시 예리한 놈'이다. '형사를 해야 하나 아니면 검사?'

땀을 흘리고 와서일까. 홀가분했다. 꿀꿀한 기분이 풀렸다.

그리고 느꼈다.


40대 후반, 나에 대해 그리고 가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이다.


오늘도 코와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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