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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와붕가 Sep 26. 2023

도움 아닌 충고.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복싱 편)

남자는 복싱이지.


회사 생활에 적응을 끝낸 입사 10년 차 때였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 번화가 사거리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신호등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땡'소리가 울렸다. 짧고 명확한 종소리였다. 주변을 보았다.

건너편 건물 꼭대기 4층에 'xx권투 체육관'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언제나 권투 체육관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당시에는 회사에서나 가정에서 지쳐있었던 시기였다. 생활의 활력소가 필요했다. 건너편에서 체육관을 바라보면 흔들리는 샌드백이 춤을 추고 있었다.

'복싱을 하는 사람은 누굴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용기를 내지 못하고 1년을 흘려보냈다.


당시 같은 역에  복싱에 관심을 갖고 있는 공익요원이 있었다. 기회다 싶어 같이 가자고 부추겼다. 하지만 이 녀석은 가기로 한 날 무섭다면서 약속을 어겼다. 이해는 한다. 나도 1년을 지켜보기만 했다. 회사 법인카드를 들고 체육관 4층을 올라갔다. 회사 복지 중에 체육시설을 지원하는 정책이 있었다. 지금도 있는데 직원들이 귀찮아서 많이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안타깝다.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상남자의 향기? 가 풍겨져 나왔다. 링 위에서 스파링을 하는 사람, 샌드백을 치는 사람, 거울을 보면서 연습하는 사람, 줄넘기를 하는 사람. 여성 관원은 없었다. 관장은 젊어 보였다. 알고 보니 나보다 두 살 위였다. 간단한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 찰나 이대로 가면 다시 오지 않을 거 같았다. 뒤돌아서 바로 6개월을 결제해 버렸다.


난 교대근무를 하는 역무원이다. 그래서 체육관을 언제든 갈 수 있다. 나중에는 관장이 나에게 체육관 열쇠를 하나 주었다. 관장은 술을 마시면 다음날 늦게 오는 버릇이 있었다. 기본기를 익히고 다른 관원보다 땀을 흘리며 연습했다. 아침에는 관원이 거의 없었다. 혼자 운동하기 좋았다.


저녁 운동은 퇴근 후 오는 직장인들과 학교를 마치고 오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초보시절 구석에서 존재 감 없이 샌드백을 두들기고 있었다. 관장은 대게 한 번 가르쳐주고 일주일 뒤에 다음 진도를 나갔다. 그때, 배가 툭 튀어나오고 머리숱이 적은 관원이 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따, 고렇게 밀어서 치면 어떡하냐."

'누구시죠?라고 묻고 싶었다.'


"자, 이렇게 해 보라고.."

"아.. 네.."


"자, 한 번 해봐."

'누구신데. 반말까지'


황당한 시점에 링에서 스파링을 마친 다른 관원이 오고 있었다.


"형, 그게 아니지. 이렇게 해야지. 팔을 쭉 뻗으면서."

"아.. 그래.. 그렇게 해야지.."


둘은 죽이 잘 맞았다. 알고 보니 수년째 이 체육관을 다니고 있는 오래된 관원이었다.

나는 샌드백을 계속 쳐야 할지 다른 곳을 피신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배우고 하면 할수록 오래된 관원들이 말을 걸어오고 조금만 친해지면 바로 지적질을 난사했다.

내 돈 내고 스트레스 풀면서 오는 곳이 다른 스트레스가 발생되는 경로가 된 것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이랬다.


"코와붕가씨가 열심히 하니까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이여."

"내가 복싱을 몇 년 했는 줄 알아?"

"한 가지만 말해줄게. 이것을 이렇게 바꿔보고 저것을 이렇게 바꿔보고."


물론 고수에게 받는 가르침은 좋다. 하지만 말이 많은 사람들은 대게 실력이 형편없었다.

스파링을 하는 모습을 보면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내가 배우고 싶어 하는 관원은 본인 운동만 열심히 했다.


3개월 만에 링에 올라가서 가슴 떨리는 첫 스파링을 하게 됐다. 비록 1라운드도 버티지 못했지만 기분 좋은 발전이었다. 이렇게 1년 이상을 꾸준히 해왔다. 몸무게는 급격하게 줄었고 얼굴은 동남아 사람이 돼 버렸다.

자신감이 붙었다. 충고하는 형님들과 스파링을 하고 싶어졌다. 입이 아닌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스파링은 대게 관장님이 붙이시거나, 충고충 형님들 같이 오래된 관원끼리는 알아서 하곤 했다. 샌드백을 신나게 치고 있는 어느 날, 충고충 형님 중 한 명이 다가와서 스파링을 하자고 요청이 들어왔다. 


"어휴, 어떻게 형님하고 제가 해요?"(속마음: 네, 한 판 붙어보시죠. 기다렸습니다.)

"아녀, 내가 봉께 나하고 해도 되겠어."

"그럼, 천천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땡!


총 3라운드만 하기로 결정했다. 상대 형님은 나보다 체중이 15kg 정도 더 나갔다. 당연히 경력에서 한 참 앞서는 분이라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종이 울리고 첫 라운드가 시작됐다. 형님은 갑자기 복부를 쳐 보라면서 팔을 들었다. 신나게 두들겼다. 형님의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형님은 큰 펀치를 휘둘렀다. 난 가벼운 스텝으로 요리조리 피하면서 쨉으로 한 번씩 꽂았다. 2라운드 중반에 스파링이 끝나고 말았다. 형님은 복싱경력은 오래됐지만 몸 관리는 엉망이었다. 지쳐서 중단됐다. 이건 내가 평가받을 수 없는 경기였다. 매우 실망스러웠다.


"동생, 스텝이 느려. 그러면 금방 따라 잡혀."

"네........"

"그리고 쨉 훈련을 더 하라고. 나머지는 차차 좋아지겠지.."

"네......"(속마은: 하하하... )


이후로 이 형님과 스파링은 없었다. 내게 신청을 하지 않았다. 서로 얼굴 보면 웃으며 인사만 할 뿐이었다.

말보다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게 지혜로운 길임을 깨달았다. 

'취.. 취...'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내 복싱 수련은 3년을 넘겨서 그만두었다.

주변의 만류가 컸다. 다시 살이 찌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내가 실력으로 배우고 싶었던 경찰관 형님의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어디가서 주먹 자랑 하지마라. 세상에 고수는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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