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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와붕가 Oct 05. 2023

도움 아닌 충고.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검도 편)

무의식에 이끌려 올라간 검도장.


5호선 종착역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한 사회복무요원이 책상에서 동영상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도복을 입은 두 사람이 죽도를 들고 대결하고 있었다. 바로 '검도'였다. 사회복무요원은 대학교 검도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었고, 관심이 많았다.


사회복무요원과 난 자유시간에 서로 검도와 복싱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나누었다. 당시에 검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검도란 딱딱하고 예의를 중시하는 거 같았다. 도복에 호구까지 쓴 모습이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복싱을 그만두고 바로 새로운 운동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잃어버렸던 체중을 모임과 술로 다시 채우고 있었다. 새해가 오고 난 동네 주변을 산책을 운동이라 여기며 꾸준히 했다. 그렇게 동네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산책을 하는 중에 나무가 부딪히며 괴상한 소리가 건물에서 들려왔다.


머리 들어보니 '검도장'에서 나는 소리였다. 지난 글에서 복싱을 1년을 지켜보다가 등록했다고 했다. 정말 하고 싶었으나 용기나 나지 않아서였다. 복싱을 3년을 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내 다리는 성큼성큼 검도장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여자 사범님이 날 맞아 주었다. 상담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범님은 내가 아닌 자녀로 상담신청을 하는 줄 알았단다. 간단한 상담을 마치고 6개월 등록을 해버렸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무겁지만 경쾌했다.

새로운 운동에 대한 기대와 떨림이 교차했다.


다시 시작.


난 교대근무라는 특성 때문에 저녁에도 출근해야 했다. 그래서 낮에 꼬맹이들과 검도를 같이 배웠다. 도복을 입는 것부터 어려웠다. 속옷을 모두 벗어야 했다. 처음에 당혹스러웠다. 이것도 적응되니 자유로웠다.

도복을 입고 죽도를 쥐고 휘두른다. 머리, 손목, 허리를 수차례 내리친다.


성인부는 저녁에 있다. 하지만 난 초보 검사여서 내가 낄자리가 없었다. 구석에서 거울을 보고 낮에 배운 것들을 연습할 뿐이었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선배 검사들이 호구를 쓰고 대련을 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어디가 어떻게 점수를 얻는지 모를 정도로 빨라 보였다. 때로는 격렬해 보였고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이상한 기합 소리들이 들렸다. "꺄오" "이 챠챠" "모랴" "이랴" 


첫 승급을 했다. 5급을 따면서 승단을 목표로 두게 됐다. 기본 동작을 마치면서 드디어 '호구'를 쓰게 됐다.

집에 호구를 가져와서 매일 쓰는 연습을 했다. 검도에는 도복부터 호구까지 끈이 달려있는 곳이 많다. 


성인부시 간에 호구를 쓰고 같이 수련에 들어갔다. 긴장되고 떨렸다. 대련을 하기 전까지 상호 연습을 한다.

연격을 시작으로 해서 머리 치기, 손목 치기, 허리 치기, 응용 동작을 마친 후 대련을 한다. 


정신이 없었다. 호구를 써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상대방이 달려들며 내 머리, 손목, 허리를 치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따뜻하게 알려주는 선배 검우도 있지만, 맹렬하게 몸으로 알려주는 차가운 검우도 있었다.


차츰차츰 적응이 됐다. 이제 상호연습과 대련은 떨림보다 재미가 있었다. 복싱에서 수차례 스파링을 해왔던 경험이 대련에 도움이 많이 됐다. 처음에는 피하다가 욕을 많이 먹었다. 복싱하던 습관이 남아 있었다. 죽도가 다가오면 고개를 젖히거나 위빙동작으로 피했다. 


관장님과 사범님께 따뜻한 지도를 받으면서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다. 복싱때와 마찬가지로 사람 없는 시간에 혼자 나와서 수련을 했다. 성인부 검우들과 동등하게 칼을 겨루고 싶었다. 같이 어우러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이곳에도 꼰대가 있었다.


뚱뚱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3단이었다. 동대문에서 의류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 검우는 대련 도중에 사람을 불러 세워서 이러쿵저러쿵 지적질을 한다. 나는 초보검객이어서 무슨 말이든 들어야 했다. 말해주는 검우가 고마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다른 검우들은 달랐다. 단수도 비슷하고 심지어 나이도 많은 분도 있었다. 초보인 내가 봐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다. 누가 보면 이 사람이 관장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실력도 없었다. 칼을 초보같이 강하게 내리쳤다. 대련하다가 욱할 때가 많았다. 피하고 싶은 상대였다.


도장에는 성인부 모임도 있어서 이들과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술 한잔 기울이면서 꼰대 검우에 대한 이야기를 아울 수 있었다. 본인들도 불만이 많았다. 관장과 사범도 알고 있었다. 이 분이 다른 곳으로 가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나도 승단을 했다. 이제 유단자가 됐다. 3단 꼰대는 4단이 됐다. 그분도 열심히 했다. 인정한다.

그분과의 마지막 수련이 있었다. 그날이 마지막이 될지는 몰랐다. 기본 연습을 하고 호구를 착용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대련이 시작됐다.


그분은 4단을 달고나서 지적질이 더 심해졌다. 대련하고 있는 와중에도 힐끔힐끔  그 분 쪽을 보게 됐다. 역시나 다른 검우를 세워놓고 가르치고 있었다. 평소 내가 좋아하고 인자한 분이었다. 나이는 도장에서 제일 많았다. 가만 볼 수 없었다.


드디어 나와의 대련 차례가 됐다. 나의 칼은 평소보다 힘을 주어 내리쳤다. 그가 힘을 더 주면 나는 점프까지 하면서 내리쳤다. 검도가 아니었다. 그분은 '이 놈 봐라'하는 눈빛이었다. 난 '어디 한번 해봅시다'이런 자세였다. 인정사정없이 몰아쳤다. 


성인부 시간이 종료되고 호구를 정리할 때 아니나 다를까 꼰대 검우가 내게 다가왔다.


"코와붕가씨, 검도를 다시 해야겠어."

"네?"

"자세가 엉망이야. 그리고 칼이 그게 뭐야. 힘이 왜 이렇게 들어있어?"

난 한 템포 쉬며 대답했다.

"아.... 그건 제가 검우님 칼을 닮고 싶어서요. 왜요? 마음에 안 드셨나요?"

"........" 


꼰대 검우는 혼자서 투덜대며 짐 싸고 가버렸다. 이후로 그분을 볼 수 없었다.

들리는 소문에 다른 도장에 등록했다고 한다. 그분은 아마도 거기에서도 꼰대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제발 지도는 관장, 사범만 하자. 

성인들은 일하고 와서 스트레스 풀고자 운동한다.

이곳에서도 꼰대 상사를 만나고 싶겠냐!

정.. 할 말 있으면 일기나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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